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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The King of Limbs | XL/TBD, 2011

 

라디오헤드적인 것

[The King of Limbs](2011)는 뜬금없었다. 2011년 2월 14일, 라디오헤드(Radiohead)는 아무런 예고 없이 웹사이트를 만들어 자신들의 새 앨범이 2월 19일에 디지털 음원으로 판매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어찌 보면 [In Rainbows](2007) 때보다도 더 강하게 뒤통수를 치는 뉴스였다. 그 주 토요일까지 인터넷에서는 온갖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The Bends](1995)와 [OK Computer](1997) 시절의 음악을 다시 선보일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도 있었고, 커버가 구리다는 반응도 있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라디오헤드 따위는 대단할 게 없다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대다수는 과연 이들이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 귀에 걸리는 트랙이 거의 없었다. “Lotus Flower”가 인상에 남긴 했지만, 그 이유가 정말로 곡이 좋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디오에서 본 톰 요크(Thom Yorke)의 괴상한 춤사위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시 꼼꼼히, 몇 번을 더 듣고 난 뒤에야 이 앨범이 [OK Computer]나 [Kid A](2000)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다 확실한 비교를 위해 이들의 예전 앨범들을 재차 들어 보고 나서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결론은 [The King of Limbs]가 라디오헤드의 커리어 사상 첫 실패작이라는 것이었다. 라디오헤드도 언젠가는 이와 같은 앨범을 내놓게 되리라는 예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접하게 되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 앨범은 그저 단순히 못 만든 앨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The King of Limbs]에서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탈밴드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드럼은 어딘가에서 샘플을 따온 것처럼 똑같은 리듬을 반복하고, 기타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단순히 연주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악곡상의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대체로 수록곡들은 그 전개에 있어 극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반복적인 선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이제까지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심지어 톰 요크의 [The Eraser](2006)보다도 비트가 곡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앨범 전반부의 네 곡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번 앨범은 [Kid A]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더 일렉트로니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Kid A]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그 자체보다 [OK Computer]의 안티테제적인 상징성이라는 점에서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The National Anthem”이나 “Optimistic” 같은 곡을 보면, [Kid A]는 온전한 의미의 일렉트로닉 앨범은 아니었다. [Kid A] 이후로도 라디오헤드는 꾸준히 일렉트로닉 음악의 요소를 도입해 왔지만, 그 점이 앨범을 장악할 정도로 전면에 드러난 경우는 없었다. 요컨대 [The King of Limbs]를 ‘라디오헤드 최초의 일렉트로닉 앨범’이라고 칭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껏 라디오헤드의 음악에는 항상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이 바란 누군가가 될 수 있었더라면’이라는 가사일 수도 있다(“Fake Plastic Trees”). 우울할 정도로 처연하면서 아름다운 톰 요크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No Surprises”). 신경질적으로 고막을 긁어대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소리일 수도 있다(“Idioteque”).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드럼 비트와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베이스 음향일 수도 있다(“Weird Fishes/Arpeggi”).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늘 라디오헤드다웠던 이유는, 그처럼 감정적이고 극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계산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런 영리함이 이들의 음악을 식상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늘 한결같게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다.

[The King of Limbs]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하다. 특별히 감정적으로 고양되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지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이 음반이 ‘일렉트로닉 앨범’이라는 데 있을지 모른다. 반복적인 구성의 음악에는 그만큼 악센트를 집어넣기 어려운 법이다. 본격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라디오헤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증거,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설명조차 실은 변명에 가깝다. 장르/스타일적 특성과는 관계없이, 이 앨범은 그냥 안이한 앨범이며 대충 만든 앨범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전 곡들과 비교해 보자. “Morning Mr. Magpie”의 단순한 비트와 높낮이 없는 구조가 “Backdrifts”나 “Myxomatosis”보다 참신하다고 볼 수 있는가? “Little By Little”의 불협화음을 들으면서 “Packt Like Sardines In A Crushd Tin Box”와 “Pulk/Pull Revolving Doors”의 음산함을 떠올리는 게 가능한가? “Codex”나 “Give Up The Ghost”처럼 ‘빼먹는 게 아쉬워서 집어넣은 듯한 라디오헤드표 발라드’를 “House Of Cards”나 “Pyramid Song”에 견줄 수나 있을까? 마음만 먹었으면 이 앨범은 얼마든지 괜찮은 앨범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선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The Eraser]에서 톰 요크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괜찮은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Lotus Flower”는 톰 요크가 여전히 좋은 보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깔끔하고 담백한 “Separator”는, 완벽한 마무리다. 이 앨범이 라디오헤드가 만들지 않았다면 나쁘지만은 않은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앨범은 만족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왜 라디오헤드를 듣는가? 우리는 왜 라디오헤드와 비슷한 아티스트를 놔두고 굳이 라디오헤드를 듣는가? 개별적인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도 평가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맥락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라디오헤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The King of Limbs]는 대단히 안이한 방식으로 위의 질문에 답하는 앨범이다. 나는 처음으로 라디오헤드에게 실망감을 느꼈다. | 정구원 lacelet@gmail.com

 

ratings: 5/10

 

수록곡
1. Bloom
2. Morning Mr. Magpie
3. Little by Little
4. Feral
5. Lotus Flower
6. Codex
7. Give Up the Ghost
8. Sepa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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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Radiohead 공식 사이트
http://www.radiohead.com

 


 “Lotus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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