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에는 벨 앤 세바스찬과 함께 90년대가 뻘쭘하게 불려나오기도 했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매시브 어택의 비주얼 쇼가 관객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도 했다. 누군가는 펫 샵 보이스를 따라 부르며 20세기의 추억에 잠겼을지 모를 일이고 또 누군가 뱀파이어 위켄드와 함께 21세기의 추억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다음은 [weiv] 필자들이 지독히 사적으로 고른 올해의 공연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당신의 베스트가 궁금하다. 20100812

[7월 29일: 벨 앤 세바스찬]
Xdyljs2nep

벨 앤 세바스찬이 보여준 공연에 태그를 딱 하나 단다면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선택될 것 같다. 스튜어트 머독의 나긋한 목소리에 바이올린, 플룻, 첼로 등 어쿠스틱 악기들의 음색, 그리고 “행복하세요. 사랑해요.” 같은 멘트들이 더해졌으니 다른 설명을 해 무엇하랴. 공연의 최고조는 “The boy with the arab strap”에서 이뤄졌다. “저랑 춤추실래요?”라는 서툰 한국말에 이어 5명의 관객이 무대로 초대되었다. 어색하지만 즐거운, 이 사람의 표정과 저 사람의 몸짓이 공연에 더해졌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울던 관객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자, 순간 관객들의 입에서는 공감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공감. 아, 이것이야말로 록 페스티벌의 맛.
이수연 | contributor

돌이켜 생각해봐도 나는 벨 앤 세바스찬을 좋아한 적이 없다. 그게 1990년대 ‘모던’한 소년 소녀들의 비밀스런 암호 같은 의미의 음악이었음에도. 그러니 반쯤은 ‘보이니 본다’는 마음으로 스튜어트 머독을 쳐다봤다. 보는 동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인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인지 잠깐 헛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뒤 나는 내가 아트 록 공연에 간 중장년의 ‘선배님’들이 지었을 법한 미소 비슷한 것을 얼굴에 띠며 무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벨 앤 세바스찬의 ‘의미’라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좋았느냐 싫었느냐와는 사실상 큰 관련이 없었던 셈이다. 해변에 사는 사람이 바다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해도 얼굴에는 소금기가 배게 마련이듯.
최민우 | editor

[7월 29일: 뱀파이어 위켄드]
XGcDlaF0dJ

그들의 공연은 [Vampire Weekend](2008)와 [Contra](2010) 레코드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아프로 팝 선율과 리듬을 기반으로 둔 록 음악은 자연스레 관객들을 흥겹고 신나는 분위기로 인도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변칙적인 박자의 곡들로 진행된 셋 리스트 덕분에 쉴 틈 없이 바쁜 공연이었다. 얼마나 뛰고 놀았는지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온 몸이 땀에 절어있을 정도 였으니까. 역시 누가 뭐래도 뱀파이어 위켄드는 즐겁고 발랄한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 밴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을 앞으로도 한국에서 또 볼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김민영 | contributor

뱀파이어 위켄드는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 중 가장 ‘핫’하고 ‘영’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그중 한 장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려 놓은 이 ‘인디’ 밴드는, 동시에 페스티벌의 라인업 중에서 가장 ‘똑똑한’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 곁에 와서 ‘저기 내가 인디 록과 아프리카 리듬을 결합하려고 하는데……’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똑똑해 뵈지 않는가 말이다.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밴드는 빈틈없이 연주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만드는 아기자기한 로큰롤 사운드를 지산의 더위 속에서 한껏 즐겼다. ‘우리는 뱀파이어 위켄드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할 때는 조나스 브라더스 같은 ‘아이돌 밴드’ 생각도 잠깐 났다. 음악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귀여웠다는 소리다.
최민우 | editor

[7월 30일: 매시브 어택]
XJNpFsBJay

만약 시간이 흘러 ‘2010년 지산 록페스티벌’을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매시브 어택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끼친 영향력은 정말로 ‘매시브’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첫 날 헤드라이너였지만 거의 마지막 헤드라이너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또한 그들은 내게 ‘매시브 어택의 공연도 다 봤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까’라는 유혹을 주기도 했다. 음습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덕분에 그 때만큼 모두가 공연에 압도당했던 적은 없었으며 폭염이나 열대야 따위 또한 완벽하게 잊을 수 있었던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음반으로는 모두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음악을 이번 공연을 통해 새로운 느낌으로 들을 수 있었다.
김민영 | contributor

트립합의 대명사인 매시브어택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흥분으로, 지산의 라인업은 1차 발표부터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최근작인 [Heligoland](2010)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들의 공연에 대한 기대는 더욱 배가되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음악과 완벽히 조응하는 시각적 연출이었다. 이는 2003년부터 매시브 어택과 협업해온 ‘United Visual Artists’의 작업으로, 탁월하게 결합된 조명과 연기는 트립합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이수연 | contributor

[7월 30일: 장기하와 얼굴들]
XItFx5Dy1h

“저는 뭐 이 순간 여러분들이 가장 행복하고 모든 슬픔을 잊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말은 잘 못합니다. 뭐 슬픔이 이런다고 없어지겠습니까? 그냥 다 슬픈 거 알면서 노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칙칙한 노래 하나 더 할게요. 싸구려커피.” 지산에 섰던 한국 뮤지션 중에 가장 영리했던 건 단연코 장기하였다. 그는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을 포섭할 줄 아는 뮤지션이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싸구려커피”, “우리 지금 만나” 등의 세트리스트는 디씨갤을 점령하고, 청년 문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수용자층의 외연을 넓히며 달려왔던 지난 2년을 함축하고 있었다. 완급 조절과 무대 장악력 또한 돋보였다. 3개월간 금주하며 준비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공연이었다. 영리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하면 당할 사람이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수연 | contributor

장기하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 그것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 공연에 비해 훨씬 매끄러워진 매너와 연주를 선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인디 ‘록 스타’로서의 자의식과 ‘인디’ 음악가로서의 태도를 병행하는 데 능숙하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찌질한 청춘의 단면’을 묘사하는 데에는 따라갈 자가 없다. 아련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주는 신곡 “TV를 봤네”의 후렴구를 그새 따라 부르며 든 생각이다. 그는 지금 21세기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차우진 | editor

[7월 30일: 펫 샵 보이스]
XeJIabx5Cv

지산에 오기 전에 펫 샵 보이스의 [Yes] 투어를 담은 라이브 음반 [Pandemonium] DVD로 예습을 했다. 당연하게도, 지산의 무대에서 이들은 이 DVD와 똑같은 무대를 연출했고, 세트리스트도 거의 똑같았다. 그래서 비교적 마음 편하게 공연을 관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 경이로운 듀오에 대한 오래 된 사랑을 한 시간 반의 공연으로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즐겼다. 눈앞에서 “Being Boring”을 실제로 듣는 짜릿함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잘 관리된 테넌트의 목소리는 환상적이었고, 크리스 로우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에 난초 비슷하게 생긴 풀을 잔뜩 꽂고 나왔으니, 그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최민우 | editor

펫 샵 보이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쇼 비디오자키] 덕분이었다(김광환 아저씨에게 감사!). 하지만 내가 꽤 오랫동안 좋아했던 그룹은 모던토킹과 런던보이스였다(그때 인천에선 그게 대세였다). 어린 마음에 펫 샵 보이스는 너무 ‘대중적’이라 싫었던 것이다. 최근 펫 샵 보이스에 대한 간증이 물결치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몇 분 뒤에 내가 이들을 그리워했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도 흘렸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괜히 잘난 척 쿨한 척하지 말자… 뭐 이딴 걸 깨달은 ‘의미심장한’ 공연이었다.
차우진 | editor

[8월 1일: 코린 베일리 래]
XSMSTNyswc

조금 늦게 도착한 공연장에서 이미 가득한 사람들을 뚫고 올라가 처음으로 시야에 그녀가 들어왔을 때 든 생각은, 그린 스테이지의 음향 문제를 극복하고 공간을 장악할 수 있었던 유일한 뮤지션이라는 것이었다. 꽉 들어찬 관중의 집중도는 높았다. 그리고 그러한 집중을 얻어내는 힘은 빡센 카리스마가 아니라 힘이 들어가지 않은, 유유히 흐르는, 그리고 스스로 공언하는 바와 같이 “대기처럼 떠 있으며 소울 감성이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이수연 | contributor

올 초 [씨네21]에 [The Sea]에 대해 쓰긴 했지만 내가 그 앨범을 특별히 좋아한 건 아니었다. 물론 코린 베일리 래는 좋은 보컬이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대로 가는 동안 서브 스테이지를 가득 채우다 못해 미어터진 관객들에 일단 놀랐고, 그들이 너무나 조용해서 또 놀랐고, 그 가운데 노래하는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잡혀서 더 놀랐다. 그건 단지 목소리나 흡입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의 온 감각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 탁월했다. 보통의 여자 가수들의 공연을 예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올해 지산에서 가장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차우진 | editor

[8월 1일: 뮤즈]
XNB86AzqeD

벌써 네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뮤즈에게 있어 한국 관객들은 이미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최고의 공연 파트너일 것이다. 아마 이는 뮤즈에게도 한국을 자주 찾게 만드는 큰 매력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공연 중 특별한 박수 유도 없이도 모두가 충분히 하나가 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뮤즈는 국내에서 알려진 곡들이 많은 까닭인지 아니면 그들의 공연 레퍼토리가 일정한 탓인지 소위 말하는 ‘떼창’이나 곡 중 특정 부분에 맞춰 치는 리듬 박수를 치는 등 뮤즈 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에 취할 수 있었다. 또한 덕분에 그들의 음악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뮤즈는 페스티벌의 피날레로서 ‘2010년 지산 록페스티벌에 왔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해준 밴드 중 하나였다.
김민영 | contributor

뮤즈를 보는 게 벌써 세 번째였다. 공연준비로 분주한 무대를 보는 동안 문득 뮤즈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무대 가까이 가려고 기를 썼다. 덩치가 커다란 외국인과 어깨동무도 하고 물세례도 받으면서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두 번째 공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소리도 질렀다. 이번엔? 무대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인지 늙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쳤기 때문인지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했다. 덩치 큰 외국인과 어깨동무는 못했지만 담배는 마음껏 피웠다. 근처에선 중학생 정도의 소년들이 저들끼리 소심한 슬램을 하고 있었다. 그때 새삼 깨달았다. 뮤즈의 음악은 ‘어쨌든’ 헤비메탈이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싫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우진 | editor

[8월 1일: 무한도전 게릴라콘서트]
XLqUXGG9ic

쟁쟁한 뮤지션이 강림하는 빅탑 스테이지를 위해 우리는 미리 가서 펜스 앞에 돗자리를 펴야하지만, 불이 꺼진 그린스테이지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찾아왔다’. 매튜 벨라미의 꽃미모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도 유혹적이긴 했지만, 돗자리 자리싸움에 좀 지친 나는 동네 바보형의 “Time Is Running Out”을 선택하고 말았다. 빨강 라이더 자켓 안에 입은 흰 티셔츠 사이로 삐죽 나온 러브핸들이, 가사는 다 먹어버리고 아아아아아~만 반복하는 기절초풍 라이브 실력이, 노력하는 남자의 ‘큰 그륵’을 보여주어서 감동받았다(!)
boree | guest contributor

관련 글
2010 여름 록페스티벌: intro [vol.12/no.14]
2010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이것은 좋아서 하는 얘기 [vol.12/no.14]
2010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더 라이크부터 이언 브라운까지 [vol.12/no.14]
2010 지산 록페스티벌: 음악과 비주얼 아트의 종합적인 경험 [vol.12/no.14]
2010 지산 록페스티벌: 벨 앤 세바스찬부터 [무한도전] 게릴라 콘서트까지 [vol.12/no.14]

관련 사이트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포토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