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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히 – Mingle – Tube Amp, 2010

 

 

여기서 브라질 음악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소히(Sorri)는 ‘슈게이징 밴드 잠(Zam)의 베이스 연주자 최소희’의 제 2의 삶에 관한 새로운 이름이다. 그런 점에서 수년 전 발표한 그녀의 데뷔 앨범이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으로 시작했을 때 당황하지 않기란 힘들었다. 타이틀곡 “앵두”가 예상된 상큼함으로 ‘CF 삽입곡’이 되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능숙한 편곡과 매끄러운 프로듀싱은 진지한 리뷰를 사절하는 것 같았다.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나온 2집 앨범 [Mingle](2010)의 표지에서 그녀는 전작의 표지에서보다 화장기가 적다. 이한철이 운영하는 레이블 튜브앰프 소속이라는 점도 ‘이번은 이전과 다르다’고 말하는 듯하다. 첫 번째 곡 “좋아”에서 들썩거리는 리듬 위에 아무 걱정 없는 상상을 은근하게 조잘대고, 두 번째 곡 “산책”에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살랑거리며 읊조리고, 전자음향을 뒤섞은 사운드 사이로 “그럼 그렇지”라고 흥겹게 체념을 노래한다. 몸을 움직이는 리듬도 있고, 마음을 파고 드는 멜로디도 있고, 머리를 사용하게 만드는 가사도 있다.

그런데 이상의 감상을 말로 표현하려면 ‘브라질 음악을 소화해서 다양한 스타일로 빚어낸 좋은 한국어 가요(팝)’라는 평 이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세 곡들은 여러 번 들을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재미가 있다). 이러한 평은 그 뒤에 등장하는 나른하고 도취적인 사랑 노래 “짜릿한 입맞춤”이나 롤러코스터와 윈터플레이를 섞은 듯한 사운드로 연인의 재회를 노래하는 “Re-load”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다. “Boa Trade(좋은 오후)”는 (개인적으로는 장필순의 “TV, 돼지, 벌레” 이후 오랜만에) TV가 안겨주는 일상의 무료함을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왠지 묻혀버린 명곡이 될 것만 같다.

맹숭맹숭하다는 말인가. 그런 얘긴 아니다. 게다가 이 앨범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른바 ‘진한 감동’ 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너무 좋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트랙들이 없지 않다. 삼바 리듬을 마음껏 구사한 “거짓말”은 볼륨을 크게 올리지 않는 묘미를 느끼기 힘들고, ‘브라질 리듬’과 ‘쿠바 리듬’이 교대로 등장하는 “나나나”는 공간이동의 감각까지 선사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음반의 주인공인 작은 한국 여자가 음악적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지구상의 여러 곳을 상상 속에서 여행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건 그저 수십 년 전의 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음악적 자원을 찾으려는 최근의 다소 집단적으로 보이는 경향보다 훨씬 흥미롭다.

살고 있는 곳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려면 차라리 더 멀리 올라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강강수월래”와 “비온 뒤”는 별다른 해설이 필요 없이 듣는 이의 몸을 흔들어댄다. 앞의 곡이 한국 민요풍의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거나 뒤의 곡에 자진모리 장단이 들어 있다고 해설하는 것은 그저 사족이다. 브라질에서 리듬을 수입하여 재연(再演)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유래한 음악의 신체성은 역설적으로 브라질 음악의 영향이 명시적이지 않은 이 두 곡들에서 가장 잘 구현되고 있다. 소히는 이 곡들에서 자신의 몸에 영향을 주는 소리와 그 전부터 몸에 배어 있던 무언가를 뒤섞기 시작한 것 같다. 앨범 타이틀 ‘밍글(mingle)’의 의미에는 이런 것도 포함될 것 같다.

따라서 이 앨범의 가치를 ‘한국적 보싸 노바의 구현’이라든가 ‘브라질 음악과 한국 음악의 조화’라는 식의 기준으로 찾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거나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그 수용에 ‘제대로’, ‘정통의’ 등의 수식어를 덧붙이면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브라질이든 다른 무엇이든 음악하는 사람들이 찾아 해매는 것은 의외로 자신의 내부에 있던 무엇과 그리 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음반의 주인공은 그걸 찾아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으로선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든 그녀의 작사, 작곡 능력을 고려한다면, 소히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무언가를 계속 찾아 다니면서 음악활동을 오래오래 할 것만 같다. 아쉬운 게 있다면 ‘녹음을 조금 더 잘 했으면…’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건 아직도 한국의 ‘로컬’ 음악 씬의 인적, 물적 자원으로는 조금 곤란한 모양이다. 리우 데자네이루의 해변과 양화대교밑 강변이 똑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20100601 | 신호미 homey81@gmail.com

7/10

수록곡
1. 좋아
2. 산책
3. 그럼 그렇지
4. 거짓말
5. 집으로 가는 길
6. 짜릿한 입맞춤
7. Boa Tarde
8. Re-Love
9. 강강수월래
10. 비온 뒤
11. 나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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