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315360-사운드홀릭, 2010 그녀의 보편적인 노래 앞에 선 개인의 사정 김윤아가 2004년 내놓았던 [유리가면]은, 앨범명에서 드러나듯이 설정된 무대 안에 자신을 던져 놓고 연기하듯 노래하는 곡들로 들어찬 앨범이었다. ‘공작부인’으로서의 김윤아는 비극적인 파국의 주인공이었으며 그 표현은 위악 혹은 위선 같은 것들로 갈음되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장했다는 것이 곧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그 연기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 혹은 그렇게 가면을 써야만 하는 유약한 자아의 사정에 누군가 동감하느냐의 문제일 테고, 나는 그 연기에 공감하는 편이 될 수 없었을 뿐이다. 그것은 설득력을 결여한, 디테일 없이 스타일을 부각하는 이미지로서의 음악에 가까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같은 가사들은 아우라를 가장하며 겉돌았고, “야상곡”의 노련하고 매력적인 창법 같은 외면할 수 없는 미덕들은 결국 앨범 전체의 지나친 스타일에 가려졌다. 그 후 6년 만에 세 번째 솔로 앨범인 [315360](2010)이 나왔다. “전곡을 경험담을 담은 노래로 꾸민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라고 그녀는 밝히고 있으며, 이는 이 앨범이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결론은, 그녀가 픽션보다는 논픽션의 재현 쪽에 더 재능을 가진 연출가라는 것이다. 이 앨범은 우선 음악적인 방법론에 있어 스타일을 과시하기보다는 치밀하고 탄탄한 소리에 집중한다. 전체적으로 허술한 소리 하나 없는 사운드메이킹이다. 피아노와 스트링이 주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는 김윤아가 솔로로서 이제까지 만들어왔던 음악의 맥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배킹 보컬과 악기가 곡 전체를 휘감기보다 의도된 부분에서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채집되거나 만들어진 다양한 소리들이 맥락에 맞게 다듬어진 형태로 배치되어 쓰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앨범의 첫 트랙인 “이상한 나라의 릴리스”에서부터 두드러지는데, 베이스 이외에 전형적인 악기를 거의 쓰지 않고 여러 가지 채집된 소리를 섞어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곡은 앰뷸런스의 불길한 소리에서 정점을 이룬다. 스타일보다는 사운드의 내실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이런 맥락이 극대화 된 것이 바로 타이틀곡인 “going home”이다. 모든 것이 걷히고 기본적인 구조만으로 지탱되는 이 곡은 차라리 건조한 발라드에 가깝다. 기교도, 특별한 음색도, 가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앨범에 한정된 것이 아닌 ‘김윤아’의 전체적 맥락에서는 너무나 생경한 노래다. 그러나 그녀의 어법에 익숙한 사람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님에도 마음의 바닥을 긁어대는 듯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창법, 멜로디, 가사 등 모든 측면에서 실로 맨 살갗을 그대로 눈 앞에 내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녹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노래의 대상이나 소재 혹은 그녀의 태도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생경함이다. 언제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해 노래해왔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친 살해를 노래하던 “증오는 나의 힘”이나, 행복한 가족의 허구를 가볍게 비웃고 넘어가던 “김가 만세”,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곡들을 기억한다면,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같은 가사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도자료 등에서 드러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표현하는 여성 아티스트’ 로서의 포지셔닝은 그게 진심이건 영민함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런 당황을 불편함으로 바꿔놓는 측면이 있다. 이런 변화를 변절이라며 비난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창작자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 무어라 한마디로 재단하는 것은 무엇보다 위험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윤아의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는 이를 짚지 않고 넘어가는 게 오히려 일종의 간과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녀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공감하는 형태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김윤아(그리고 자우림)의 음악을 개인화해 왔으며, 이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기보다 그녀의 음악이 수용되는 보편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앨범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아야 한다. 일단은 이 앨범을 단일한 정체성의 표현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생명이나 모성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다층적이다. 김윤아는 자궁을 뜰에 비유한 곡인 “이상한 이야기”에서 ‘잔인하고 이상한 이야기만 내 뜰에 가득하네’라고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릴리스”, “가만히 두세요”, “얼음 공주”, “착한 소녀”, “검은 강” 등 앨범에 수록된 다수의 노래들은 세상과 맞닥뜨린 소녀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생명이나 모성의 카테고리로 묶이지 않는 앨범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탄탄하고 진솔한 송라이팅을 통해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포지셔닝에 성공한 ‘보편적인 노래’, 그리고 나라는 ‘개인에게 특별한 노래’가 섞여 있는 혼합체에 가깝다. 앞으로 김윤아의 음악이 이 둘 중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는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할 일이겠지만, 아직까지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음악을 만들어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00701 | 이수연 wei.jouir@gmail.com 7/10 수록곡 1. 이상한 세상의 릴리스 2. 비밀의 정원 3. 가만히 두세요 4. going home 5. 도쿄 블루스 6. summer garden 7. 에뜨왈르 8. cat song 9. 얼음 공주 10. 착한 소녀 11. 검은 강 12. 이상한 이야기 관련 글 김윤아 [Shadow Of Your Smile] 리뷰 – vol.3/no.24 [20011216] 김윤아 [유리가면] 리뷰 – vol.6/no.6 [20040316] 자우림 [Ashes To Ashes] 리뷰 – vol.8/no.21 [20061101] 자우림 [B정규 작업] 리뷰 – vol.1/no.7 [19991116] 자우림 [The Wonder Land] 리뷰 – vol.2/no.14 [20000716] 자우림 [4] 리뷰 – vol.4/no.21 [20021101] 자우림 [All You Need Is Love] 리뷰 – vol.6/no.21 [20041101] 관련 사이트 김윤아 공식 홈페이지 http://www.loveyu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