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EP를 발표한 시와는 다수의 비평가나 음악팬으로부터 ‘1집이 기대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언급되었다. 1집 발매 후에 쏟아진 대부분의 리뷰는 이 앨범에 대해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지만 (그래서/그럼에도) 좋다’라고 평했다. 그런데 1집 발매 전부터 시와 본인과 오지은(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은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뭐가 어때!’라는 선언적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요컨대 시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정체성보다 ‘전형성’이라는 용어를 전유하고 드러내는 태도가 중요한 가수다. 그런 맥락에서 시와는 다수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포진한 인디 씬의 지형도에서 남다른 위치를 점유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반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와의 질문은 이렇다.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란 과연 무엇인가.

일시: 2010년 4월 9일
장소: 카페 <레바또>
질문: 이수연, 차우진, 최민우 | 사진: 차우진
정리: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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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향뮤직에서 4주째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시와: 전혀 아니다. 나에게는 정말 신기한 일이고, 얼떨떨해서 어린애가 처음 놀이공원 가서 둘러보는 기분이다. 그런데 또 너무 들뜨면 넘어질 것 같아서 조심하고 있기도 하고.

[weiv]: EP랑 많이 다른가.
시와: EP랑은 다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어떤 결과물을 내고 싶어서 시작을 했던 거니까. 처음 500장 찍으면서도 이게 과연 사람들 손에 쥐여 질까, 방에 쌓아놓고 맨날 내가 끌어안고 자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웃음) 이번 1집을 내면서는 내가 만든 무언가가 그냥 조용히 묻히기 보다는, 이왕이면 사람들 귀에 많이 들려졌으면 좋겠다 싶어서 더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게 아닐까.

[weiv]: 이번 앨범에 새롭게 실린 노래들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시와: 하나하나 다 사연이 있지만 한 두 개만 얘기하겠다. 재작년에 발목을 다쳐서 집에서 한 달 넘게 지낸 적이 있다. 집 밖을 더 좋아하는데 2월 말에서 3월말까지 집안에만 있으면서 창밖의 햇살만 보고, 참 우울했다. 그런데 2월에 하나은행에서 화분이랑 씨앗을 나눠준 이벤트가 있었다. 그걸 받아서 햇빛에 내놓고 그냥 물만 줬는데 싹이 나는 거다. 너무 신기했다. (웃음) 그걸 지켜보다가 만든 노래가 “작은 씨”다. 그 때 나는 사실 굉장히 우울하고 내가 못나 보이고 그래서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그냥 작은 씨 하나 심은 게 예쁘게 싹이 나고 하는 걸 보니까 나 스스로한테, 너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만들게 됐다.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밴드가 있다. 안면도 있고 대화도 많이 하는 사이여서 그날도 그 밴드 공연 끝나고 공연이 어땠다는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보아하니 그분들은 나랑 대화할 생각은 없고 자기들끼리 뭔가 하려는 분위기였다. 나는 공연의 감동을 안고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가 나한테 없다는 게 감지가 돼서 돌아서서 집에 오는데, 이게 되게 쓸쓸한 거다. 그 감정이 컸는지 집에 와서 바로 노래를 만들게 됐다.

[weiv]: 그 밴드가 누군지 물어도 되나?
시와: 말없는 라디오라고, 여성 듀오다. 이주영씨가 하는 듀오. 너무 좋다. 그분들은 내가 이 노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행복이란 말을 빼고 행복을 얘기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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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음악을 하면서 가장 좋다고 느끼는 순간 중 하나가 ‘공연하면서 조용한 가운데 관객의 집중을 느낄 때’라고 들었다. 그런 흡인력 있는 라이브가 시와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앨범에서 그걸 전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 같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그런 쪽으로 신경 썼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시와: 그게 프로듀서가 제일 많이 도와준 부분이다. 그 동안은 듣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노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래를 만든 당시의 감정이나 녹음하는 순간의 감정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들을 것인가까지 생각하도록 (오)지은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듣는 분들에게 내가 표현하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로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읊다가 중요한 지점에 터뜨리고 나중에 잡아주고 하는 방식을 의도했다. 근데 사실 그걸 잘 표현했는가 생각하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녹음실에서 긴장을 이겨내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던 편이다. 마지막 녹음 때는 흡족하게 됐는데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을 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거고. 그렇게 되기까지 (오)지은이 많이 조언을 했다.

[weiv]: 이번 앨범에서는 가사도 인상 깊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평온한 표정을 보이더라도 그 속을 어떻게 다 알까” 같은 가사들은 다층적인 가능성들을 보려는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시와: 이를테면 내가 어떤 장소에 가서 너무 행복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풍경 같은 것들을 얘기하는 거다. 뭐랄까. 행복이란 말을 빼고 행복을 얘기한달까. 규정하는 말을 안 쓰고 주변의 정황을 얘기해서, 듣는 사람이 만약 그걸 행복이라고 받아들이면 행복인거고, 그런 거다. 이건 확신이나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거기에는 굳이 확신이나 자신이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간 걸 수도 있다.

[weiv]: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뭐든지 일단 밖에 내놓게 되면 별 말을 다 듣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쓸 것도 같다.
시와: EP랑, “화양연화”가 빵 컴필레이션으로 나왔을 때. 1년 동안 그걸 못 들었다. 아휴 노래를 그렇게 하냐. (웃음) 단점만 들려가지고. 하지만 지금 앨범은 잘 들을 수 있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는 거다. 모자란 부분이 있어도 그게 내 모습이니까 받아들여야지. 내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아, 이제 자기 미운 점도 다 안고 가는 구나. 그런데 사실은 그렇질 않더라. 받아들인다는 건 어쩌면 제 자신한테 다짐을 했던 거다. 내가 그런 면에 취약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미리 다짐을 한 걸 텐데. 어떤 분이 오버 프로듀스를 얘기 한다거나, 내 음악을 오래 전부터 아끼던 분이 방명록에 와서 책 읽는 것 같다고 할 때는, 그렇게 들렸나보다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평들은 정말 핀트가 안 맞았달까. 내 음악의 존재부터 잘못 짚은 느낌이었다. 홈페이지 스크랩에 옮겨두고 소심하게나마 거기에 대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쓰고 나니 시원한 맘이 있더라. 그러고선 잊어버리고 있었다.

[weiv]: 이번 앨범은 좀 참았다는 느낌도 있다. 어릴 때 데뷔한 사람들은 이를테면 망하더라도 하고 싶은 건 시도해보는 일종의 치기가 있다. 그런데 시와는 그렇지 않다. 그건 시와가 음악을 시작한 시기, 데뷔가 늦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또 대부분의 평이 얌전하다고 지적하는데, 혹시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시와: 근데 그건 진짜 치기 아닌가. (웃음) 이를테면 애인을 잃었다고 치자. 그러면 죽을 것 같아! 못 살겠어! 꺼이꺼이! 이런 건 치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시기를 거쳐 왔을 거고, 아직 남아있기도 하겠지만 질문한 것 같은 치기는 없는 것 같다. 얌전하다는 평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텐데, 첫 번째로는 절제하면서 부른다는 거, 둘째는 편곡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거, 아니면 내 노래 자체가 원래 그런 걸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같은 곡은 가사를 더 슬프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마지막에 ‘내가 말로 표현을 안했으니까 당신이 나를 몰라주는 건 내 탓이고 어리광’이라고 얘기하면서 한 발짝 물러선다. 또 노래하는 데 있어서 얌전하다는 건, 사실 굳이 그렇게 절제하려고 의도 했다기보다는 표현이 그만큼 잘 안된 면이 있다. 편곡의 경우는, [W 코리아]의 황선우 에디터 평이 나의 그런 면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외출 준비를 하고서 거울을 봤는데, 너무 과한 것 같아서 하나 벗어놓고 나가는 느낌이라고 쓴 부분. 그 대목이 와 닿았다. 뭔가 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weiv]: 어쩌면, 1집의 좋은 반응은 시와가 그런 방향으로 작업한 것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EP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대중성을 택한 셈인데, 이는 앞으로의 방향성을 암시하는 선택인지 궁금하다. 일단 시와가 ‘성공’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혹은 성공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시와: 분명히, 내가 더 폭넓게 관심을 받고 싶기 때문에 그런 방향을 잡은 건 맞는 것 같다. 노래는 내게 있어 표현이다. 그걸 굳이 혼자 하지 않고 누군가의 앞에서 부르기 시작했다면 그건 내 표현을 누군가가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거다. 그때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덜 외로울 수 있고, 혹은 더 힘이 나고 기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성공일 수 있다. 덧붙이자면 나는 오래오래 노래하는 게 꿈이다. 오래오래 노래하려면 오래오래 사람들과 표현을 교감하고 가야한다. 그걸 지향하고 있다.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과연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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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보도자료나 프로듀서를 맡은 오지은의 ‘시와 1집 작업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전형적인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뭐가 나빠”라는 부분이다. 전형성, 특히 전형적인 여성성은 그래서 옹호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평가 절하하는 뉘앙스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게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믿으면서 작업했다는 걸 굉장히 세게 드러냈기 때문에 무척이나 좋았는데, 애초부터 사람들이 전형성 왈가왈부할 여지를 미리 막았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도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시와: 일단은, 내가 프로듀서를 참 잘 만났다. (웃음) 그리고 그건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과연 뭔지에 대한 부분부터 물어야 되는 문제라고 본다. 누군가 우리나라에 정말 전형적인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했는지 반문하는 걸 들었다. 사실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 아닌가. 나와 (오)지은은 오히려 거기서 찌르고 들어간 셈인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2008, 2009년에 발표된 여자 뮤지션들의 앨범에 대한 평론을 보면서였다. 리뷰에서는 전형적인 여성 뮤지션과는 달라서 좋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래서 나는 굉장히 기가 죽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전히 내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거고, 나는 음악 기술적인 면도 잘 몰라서 기타도 소박하게 치는 편인데 그 리뷰들이 은근히 전형성을 가진 여성 뮤지션의 가치를 낮게 보는 태도를 드러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어떡하나, 뭐 다른 걸 개발해야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가 (오)지은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마침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운운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왔다고 했다. 언니 그게 뭐 어때, 언니가 가진 게 굉장히 큰 장점이 될 수 있어. 그러니 그걸 버리거나 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자고.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었다. 또 보도자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 있게 표현을 해야 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확언을 하듯이 썼던 면도 있었다. 나도원 씨 같은 경우는 이런 반응에 대해 ‘보도자료의 성공사례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부분을 먼저 찔러서 혹시라도 그런 말을 할 사람의 입을 막고, 그렇게 생각 안 했던 사람도 한 번 더 들어보거나 관심 갖게 하는 보도자료라고. 그냥 그런 말없이 내놨을 때, 뭐 평범하네… 들을 게 있겠어? 라는 반응을 미리 막고 싶었던 것 같다.

[weiv]: 결과적으로 ‘전형적이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리뷰가 쏟아졌다. 생각해보면 평론가들이 음악보다는 보도자료가 이끄는 대로 반응한 셈이다. 아까 얘기대로, 과연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게 정말 있는가 뭐 그런 문제도 있다. 그만큼 평론하는 사람들이 ‘전형성’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와: 내가 쓴 보도자료는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오)지은의 작업기를 인용한 뒤에 내가 직접 소개를 붙이는 식으로 나오게 됐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홍대 앞 여신’ 뭐 이런 걸로 많은 얘기를 들은 분들도 다 보도자료의 희생양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전형성’이라고 쓴 게 많이 언급되는 것처럼, 회사에서 그렇게 써놓으니까 그렇게 불려지는 것.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그 틀에서 안 벗어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다.

[weiv]: 사실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 게 불가능할 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그 때문에 ‘전형적’이라는 표현은 문제적이다. 그 다양성 중에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부분만 취해서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본다. ‘여성성’도 사실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와의 경우는 그 복잡함 속에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는 게, 또 그걸 굉장히 세게 주장했다는 게 좋았다.
시와: 왜 그럴까. 나는 아무래도, 이게 설사 많은 오류가 있다고 해도, 음악 글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뭐 어때? 라고 말하는 게, 굳이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지만 혹시라도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유효한 것 같다.

[weiv]: 좋아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있나?
시와: 실은 장필순을 굉장히 좋아한다. 예전엔 “어느새”를 부르는 장필순 밖에 몰랐는데 2년 전부터 5집과 6집을 찾아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때 장필순의 목소리가 가진 결도 세세하게 알게 됐고. 나는 서교동에 살고 있는데, 부근의 성미산 마을극장 개관축제 때 공연 하러 온다고 해서 정말 버선발로 뛰어갔다. (웃음) 가서 EP도 드렸다. 1집도 드리고 싶은데 제주도에 산다고 들었다. 언젠가는 꼭 만나 전해드리고 또 많이 배우고 싶다. 내 노래를 들려드린 후에 “시와야, 너는 뭐가 좀 많이 모자라더라.” 뭐 이런 얘기를 듣고 싶은, 그런 게 있다.

[weiv]: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특별히 누군가를 언급하는 대신 ‘클래식음악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다시 물은 거다. (웃음)
시와: 사실 전형성의 틀에 갇힐까봐 그랬다. 누구를 좋아한다, 하면 ‘시와 목소리 그 사람이랑 닮은 것 같아!’ 뭐 이런 전형성의 틀에 빠질까봐. 그리고 사실은 진짜로 좋은 음악이 되게 많지만 어떤 때는 그냥 세상이 전부다 소란스럽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아무 것도 안 듣고 있거나 클래식을 듣거나 한다. 클래식을 많이 아는 건 아니고, 어디서 듣게 된 아르보페이트(Arvo Part) 그거 딱 하나? (웃음) 사실 그 커버 색깔이 이번 앨범의 커버 색과 같다. 인쇄할 때 보여주면서 이 색깔로 맞춰주세요, 이랬다. (웃음)

“내가 그 시기를 지나왔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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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처음 “길상사에서”를 들었을 때 약간 충격 같은 걸 받았다. 사람들에게 ‘뻔한데 되게 좋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도 좋다’고 소개했던 것 같다. 계속 생각해보니 그런 스타일, 그런 노래의 원형 같은 게 있었다.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느낌이기도 하다. 클리셰가 아니라 긴장을 안 놓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전체 분위기에서 여백, 쉼, 발성의 특징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긴장이 전달된다.
시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진짜 어떤 의도도 계획도 없으니까 할 수 있었다. 일전에 “불행아”를 부른 김의철 님께 “길상사에서”를 들려드릴 기회가 있었다. 듣고 나서 “이 노래는 2절이 없구나.” 하셨다. 버스(verse)가 반복되면서 끝나니까. 그 때 알았다. 아 이게 그런 노래구나. 그렇게 보면 한편,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최민우 씨가 블로그에 ‘(1집을 내면서) 어떤 것은 두고 오고 어떤 것은 가져왔다’고 썼는데, 과연 내가 두고 온 게 무엇인지 요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weiv]: 사람들이 시와 노래 중에 최고는 “길상사에서”라고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 1집 앨범에는 그 정도의 노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한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시와: 사실 “길상사에서”가 최고라고 하면 나도 그렇다고. (웃음)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그 정도의 노래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의심도 드는데 더불어 내가 그 시기를 지나왔다고도 생각한다. 그만한 노래가 1집에 없다는 건, 일부러 거기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못간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이후에 나오는 노래가 1집에 실린 노래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거다. 최근에 노래를 하나 새로 썼는데, 최민우 씨 리뷰를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아 나는 거기 뭔가를 놓고 왔나봐…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근데 이런 말을 왜 이제야 듣나 싶은 게, 그 때는 또 그게 콤플렉스였다. “길상사에서”의 코드는 C, Em, Am, F, G 이렇게 단순하다. 앨범에서는 이영훈 씨가 기타를 아름답게 쳤지만 내가 혼자 할 때는 미솔도 시미레 뭐 이렇게 치고. 딱히 부끄러워 할 것도 없는 사실인데, 클럽 빵에서 공연하면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저걸 배워야겠다고 많이 생각했다 그때는. 이번 앨범의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는 다른 곡의 코드를 따서 연습하다가 멜로디가 생각나서 코드를 변형시켜가면서 만들었다. 연습하던 곡에 플랫5(b5)가 들어가 있었는데, 요게 참 묘하고 세련된 느낌이라서 그걸 써 보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내 노래를 만들면서도 다른 노래가 더 멋지고 좋다는 마음이 많이 있었던 거다. 1집에서 내가 놓친 게 있다면, 아마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거기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게 이젠 지나갔나보다 그런 마음인 것이다.

[weiv]: 좀 더 복잡한 구성의 음악을 시도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뭔가 하고 싶단 생각은 없나? 아예 밴드를 만들거나, 누군가와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한다거나. 시와무지개 말고 말이다. (웃음)
시와: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구체적인 욕망이 생긴 적은 없었다. 만약 내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면 그건 다른 악기 연주자나 다른 장르와 만나는 정도가 아닌, 꽤 다른 의미일 것 같다. 이번 여성영화제에서 소설가 김연수 씨와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테면 그런 방식으로 드러날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영화 [경계도시2]의 홍형숙 감독님과도 유사한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 그런 제안이 오는 게 너무 좋아서 바로 하겠다고 그랬더니, 오히려 그쪽에서 경계하면서 일단 영화를 보고 얘기하자고 하더라. (웃음) 아 저는 [경계도시1]도 봤고,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그래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네마 달‘ 쪽에서는 내가 영화가 끝난 뒤에 단순히 노래하고 퇴장하는 걸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노래만 부르고 내려가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관객들이 얼마나 감독과 얘기하고 싶어할텐가. 그런데 내가 그 중간에 끼기만 해서는… (웃음) 그런데 감독님의 블로그에서 어떤 관객이 ‘2003년에 찍었는데 개봉하는 데 왜 7년이나 걸렸냐’고 묻자 ‘그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다’고 대답한 걸 봤다. 아, 그러면 나도, 영화 끝난 뒤에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들으며 분노나 답답함을 좀 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역할이 작을지라도 진행까지 같이 하면 내가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의미가 생길 것도 같았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제안했더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웃음) 물론 관객이 열의가 많아서 나는 그저 “아, 저기 계신 저분 질문하세요.”정도의 역할에만 충실했지만. (웃음)
음악적인 변화라면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션을 맡은 사람들에게 지시한다기보다 내가 모르는 면이 많아서 계속 물어보는 편이다. 코드와 멜로디는 내가 썼지만 그걸 직접 해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식으로, 노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함께. 20100421 | 이수연 wei.joui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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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시와 홈페이지
http://www.withsi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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