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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불편한 파티-로엔 엔터테인먼트, 2009

 

 

나쁜 아이들

15년이다. 크라잉 넛이 데뷔하고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이 ‘펑크’ 밴드는 홍대 앞 인디 밴드 1세대라고도 불거나 한국 대표 펑크 밴드로 불리기도 했다. 크라잉 넛에 대한 이런 수사는 그 사이에 홍대 앞이 하나의 제대로 된 씬으로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홍대 앞’의 탄생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크라잉 넛의 사운드를 규정하는 악기는 결국 아코디언과 하모니카다. 두번째 앨범 [서커스 매직 유랑단]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된 이 악기들은 [개그콘서트]의 “씁쓸한 인생” 같은 정서를 환기한다. 그러니까 삶이 아름답다는 건 대체로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추한 것도 아니다. 적당히 우습고 적당히 야비하다. 크건 작건 누구나 죄를 짓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연애도 하고 기부도 하고 가끔 남의 등도 쳐 먹고 산다. 그게 인생이다.

자, 여기서 질문이다. 90년대 중반, 홍대 앞 인디 씬의 탄생과 함께 등장한 크라잉 넛은 청춘의 울분을 직설적인 펑크 사운드에 담아서 유명해졌다. 이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내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오히려 삶의 칙칙한 모순을 제 멋대로 비틀어 보여줬기 때문에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다. 크라잉 넛의 사운드가 환기하는 정서가 ‘씁쓸함’이란 점에 주목하자. “말 달리자”가 그랬고 “블라디미르 광주로 간 사나이”도 그랬다. “지독한 노래”와 “양귀비”는 어떤가. “퀵서비스맨”과 “개가 말하네”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들의 복잡한 정서는 단순히 페이소스라고 부르기 애매한 것들이다.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제멋대로 이어붙인 것 같은 펑크와 레게, 포크와 뽕짝 같은 잡화상 장르를 ‘스카 펑크’나 ‘키치’라고 단언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오히려 크라잉 넛의 노랫말과 음악 스타일을 전방위로 활용하는 음악 작법은 지독하게 문학적이다. 비유와 은유, 역설과 반어가 공감각적으로 구사된다. 그렇지 않다면 “어제의 벗이 오늘은 적이 되고 / 어제의 적은 그대로 적이 되고”(“불편한 파티”) 같은 가사가 펑크 록과 맞붙어 겨냥하는 성찰의 순간을 납득할 수 없다. 그게 계산된 것인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렇게 들린다는 게 중요하다. 사운드와 가사가 분리 합체하다가 냉큼 겨누는 정서는 여타의 동시대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예리하면서도 보편적이다.

그래서 6번째 정규앨범 [불편한 파티]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다. 솔직한 생각이다. 이들은 이제까지 하던 걸 여전히, 그것도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착한 아이 잘 나간다 자랑마라 이것들아 / 나쁜 아이 나가신다 우리들은 크라잉 넛”(“착한 아이”)이라고 초장부터 업 비트로 때려대는 걸 어쩔 건가. 앨범에 별점을 몇 개 주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2009년에야말로 크라잉 넛은 음악적 성취보다 이제껏 일관되게 유지해온 태도가 더 중요한 밴드가 되었다. 15년이 지나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이 화두인 이 시대에 크라잉 넛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차라리 처세다. ‘펑크의 에토스’ 따위 말하는 게 아니다. 뒤틀리고 어긋났지만 긍정적으로 살아남을 것. 그게 전부다. 14곡을 꽉꽉 눌러 채운 앨범에 고마워하면서, 어금니 꽉 깨물고 “귀신은 뭐하나 이런 애들 안 잡아가고”(“귀신은 뭐하나”)같은 가사나 따라 부르면서, 그러다 불현 듯 튀어나오는 “Gold Rush”의 웨스턴 노스탤지어에 옴팡 젖으면서, 크라잉 넛이나 듣는 ‘나쁜 아이’들은 이 불편한 시대를 어쨌든 살아낼 뿐이다. 20090818 | 차우진 nar75@naver.com

7/10

수록곡
1. Crying Nut Song
2. 착한 아이
3. 불편한 파티
4. 루나
5. 만취천국
6. 비둘기
7. 귀신은 뭐하나
8. Wake Up
9. 가련다
10. 가배물어
11. ROSE BANG
12. 빈자리
13. 생일축하
14. Gold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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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크라잉 넛 공식 사이트
http://www.cryingnu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