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 그땐 몰랐던 일들 – KTF Music, 2009 이제는 알게 된 것들 올해 초 나왔던 윤상의 프로젝트 밴드 모텟(Mo:tet)의 음반에 대해 어떤 평론가는 ‘윤상의 기괴한 취미’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고 전해들었다). 나로서는 그게 기괴한 취미는 아니었지만 난감한 취미처럼 보였다. 요점은 난감하건 기괴하건 그게 작업이라기보다는 취미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 음반의 소리들은 종종 작업용으로 만들어놓은 소스들을 그대로 늘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것의 느낌이 강했는데, 그래서 당시 들었던 생각은 이 음반에 대한 평가를 일단 유보하고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윤상의 정규작을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굳이 평가하라면? 외국에는 많은데 한국에는 드문 스타일의 전자음악은 판단 이전에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승부가 나곤 한다. 즉 이런 경우는 음악의 내용이 아니라 이런 음반을 냈다는 것 자체가 야기하는 효과가 우선하는 것이다. 거의 아무도 듣지 않지만 누구도 비판하지 못하는 결과물, 그것이 모텟의 음반이다. 그걸 혁신적이라고 부르건 실험적이라고 부르건 난해하다고 부르건, 그런 말들이 다소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윤상의 장기는 회고적이고 냉소적인 시선(과 잘 어울리는 나긋나긋한 보컬), 명료하고 귀에 잘 들어오면서도 낙차가 크지 않은 선율 감각, 마지막으로 1980년대 스타일의 전자음악이다. 우리는 이 뮤지션이 데뷔 초부터 이미 전자음악, 정확히 말하면 신서 팝에 드러내던 애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육체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그와 신해철이 만든 프로젝트 팀 이름을 빌자면 ‘노 댄스’다). 윤상의 최고작인 [Cliche](2000)가 그 시기의 한국이라는 장소에서 구현할 수 있었던 가장 깔끔한 신서 팝 음반이라는 것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그 음반에서 윤상의 음악 스타일은 완성되었다. 우리는 그걸 이 음반을 들으며 알 수 있다. 신작 [그땐 몰랐던 것들]에서, 윤상은 모텟에서 선보인 까슬까슬하고 불친절한 질감의 전자음과 예전 윤상 스타일의 음악을 적절히 뒤섞고 있다. 사실상 선율과 가사에서 “달리기”의 변주인 “떠나자”와 “소심한 물고기들”, “이별 없는 세상”의 동요적 변형인 “그땐 몰랐던 일들”은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다. 따라서 이 곡들은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또한 가장 성공적인 곡들 중 하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편지를 씁니다”는 실패작이다. 굳이 비트와 보컬의 템포를 엇나가게 함으로써 얻는 것이 음반의 통일성을 해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그렇다. [그땐 몰랐던 것들]은 좋은 팝 음반이지만 그만큼이나 기시감이 강력한 음반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에 남는 곡일수록 그의 예전 작업들과 닮은 점이 지나칠 정도로 연상된다(예를 들면 “영원 속에”를 듣다 보면 아무래도 “사랑이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닮았는데 신선한 곡과 닮으니 진부한 곡 사이에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는데, 나로서는 후자에 약간 무게를 싣고 싶다. 왜냐하면 놀랄 정도로 잘 세공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이 기시감을 떨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를 윤상의 최고작이라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전자음악에 집중한 윤상 음반은 지금까지 없었다. 또한 이런 기묘한 소리들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활용한 음반도 드물다. 나는 이 음반의 기시감과 장인정신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20090807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7/10 덧. [Cliche]의 재발매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수록곡 1. 떠나자 2. 소심한 물고기들 3. 그때, 그래서, 넌 4. 그땐 몰랐던 일들 5. 입이 참 무거운 남자 6. 편지를 씁니다 7. 그 눈 속엔 내가 8. 영원 속에 9. 기억의 상자를 열다 10. 그땐 몰랐던 일들 (아이들) 11. My Cinema Paradise 12. 낯설지 않은 꿈 13. Loop 1 For An End 14. Loop 2 For Reboot 관련 사이트 윤상 공식 사이트 http://www.yoonsa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