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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꽃, 다시 첫 번째-소니뮤직, 2009

 

 

박지윤과 싱어송라이터, 혹은 아티스트의 신화학

어쿠스틱 악기는 전자 악기보다 진정성 있는 사운드를 만들까. 대부분의 수용자들, 그리고 창작자들도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만약 진정성 어쩌고가 너무 과하다면 ‘더 가치 있는’이나 ‘더 좋은’으로 바꿔도 좋다(본질은 비슷하다). 일단 내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밝혀두자.

이건 박지윤의 7집이자 새 앨범 [꽃, 다시 첫 번째]에 대한 여러 생각 중 하나다. 그녀는 이미 10대의 나이에 ‘성인식’으로 JYP엔터테인먼트(혹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6년 만에 발표한 앨범에서는 피아노, 첼로,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목소리가 마블링처럼 회전한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앨범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마저 ‘들어보니 의외로 좋네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좋네요’가 아니라 ‘의외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은 탄탄하다. 연애와 사랑, 관계에 대한 고백적인 수사로 채운 노랫말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유지하고 그걸 지탱하는 사운드는 촘촘하다. 낮게 깔리는 첼로 위로 기타 피킹이 심금을 울리는 “봄, 여름 사이”와 “그대는 나무 같아”, 타이틀 곡 “바래진 기억”을 비롯해 피아노가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하는 “잠꼬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4월 16일”, “괜찮아요” 등은 보드랍고 따뜻한 양말 같다. 실밥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이 호평 받는 건 당연하다. 특히 박지윤이 작사와 작곡을 맡은 “봄, 여름 그 사이”와 “그대는 나무 같아”, “괜찮아요”는 이 20대 후반의 여자가수가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설명한다. 다른 곡들의 키워드는 작곡자다. 디어 클라우드(“바래진 기억”), 루시드 폴(“봄날”), 타블로와 박아셀(“잠꼬대”), 그리고 김종완(넬, “4월 16일”)의 이름이 있다. 이 중에는 만든 사람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곡도 있고, 박지윤의 목소리 뒤에 숨어버린 곡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뜻밖의 발견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쨌든 이 앨범에 참여한 작곡자들은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진 인물들이고 그들에 대한 신뢰감이 이 앨범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조합은 이소라의 5집 [SoRa`s Diary]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이소라는 김민규(델리스파이스/스위트피)와 이한철, 이규호, 조윤석(루시드폴)을 적극적으로 기용(이용?)하며 기존의 자신은 물론 동시대의 여자 가수들과 선긋기에 성공했다. 그녀가 5집 이후 거둔 성과는 더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마찬가지로 박지윤 역시 음악적 스펙트럼(혹은 한계)을 다른 ‘싱어송라이터’들로 보완 혹은 확장시킨다. 그건 꽤 영리한 전략적 접근이다.

거슬리는 건 홍보에 쓰인 ‘진정한 아티스트로 돌아온 박지윤’ 같은 수사학이다. 아티스트란 말이 한국에서 진정성을 가진 창작자쯤으로 ‘과분하게’ 쓰이는 걸 상기하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진짜 아티스트 박지윤’에 대한 증거자료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전의 그녀는 무엇이었단 말일까. ‘진정한 아티스트 지망생’? 중요한 건 ‘아티스트’란 말 따위가 어떤 음악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과대포장되는 ‘진정한 아티스트’같은 말은 기껏해야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론을 빌려온 담론일 뿐이다. 21세기에 그런 게 멀쩡하게 작동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누가 뭐래도 ‘성인식’은 잘 만든 가요였고 그걸 부르던 박지윤의 가치도 중요하다. 그녀가 어쿠스틱 사운드로 짠 깔개 위에서 우아하고 담담하게 노래한다고 ‘진짜 예술가가 되었다!’고 호들갑떨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수사학에 말릴 때 비평은 힘을 잃는다.

[꽃, 다시 첫 번째]의 홍보가 노골적으로 ‘아티스트 신화’에 기대는 바야 업계의 관행이겠지만, 일부 비평가들을 비롯해 그걸 수용하는 사람들이 그 기대대로 반응하는 태도는 문제적이다. 박지윤에 대한 평가가 ‘여성, 싱어송라이터, 어쿠스틱 사운드와 자기고백적 가사’라면 일단 쌍수부터 드는 조건반사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꽃, 다시 첫 번째]는 들리는 그대로, 안정적인 소품이다. 박지윤은 분명 싱어송라이터로서 인상적인 첫 걸음을 땠다. 응원할 만하다. 일단은 거기까지, 그게 전부다. 오히려 이 앨범(과 박지윤)의 가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대거 등장하는 2009년의 현상이 대중성을 비롯해 수익성의 근거로도 작동하는 시장의 변화와 맥락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궁금한 건 앨범 뒤의, 이를테면 ‘숨은 욕망’이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가, 어떤 강박이 작동하는가. 20대 후반의 박지윤이 내놓은 [꽃, 다시 첫 번째]가 흥미로운 건 바로 그 이유다. 20090509 | 차우진 nar75@naver.com

6/10

* 이 글은 <씨네21>(703호)에 실린 글의 ‘얼터너티브 버전’임.

수록곡
1. 안녕
2. 봄, 여름 그 사이
3. 바래진 기억에
4. 4월 16일
5. 그대는 나무같아
6. 잠꼬대
7. 봄 눈
8. 돌아오면 돼
9.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