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는 2009년 한 해 동안 새로 등장하거나 꾸준하게 활동 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집중적으로, 되도록 앨범 리뷰와 인터뷰를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홍대 앞으로 대변되는 인디 씬을 비롯해 주류 음악가들도 포함될 [weiv]의 장기 기획이 현재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다각도로 이해하는데 미약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일시: 2009년 4월 1일
장소: 카페 [2nd Floor] 질문: 차우진 | 사진: 박김형준
정리: 김민영,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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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근황부터 얘기하자. [몽유병]을 낸 뒤에 바로 영국으로 떠난 걸로 안다. 얼마나 있었나.
흐른: 8개월 있었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에 공부하다가 곧바로 앨범 작업을 했다.

[weiv]: 아, 한 3년은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흐른: 아니다. (웃음) 다녀와서 활동을 거의 안 해서…

[weiv]: 맨체스터에서 클럽 공연도 했다는 자료를 읽었다.
흐른: 그게…(웃음) 정식 공연은 아니고 그냥 펍(pub)에서 한 공연이었다. 공연을 많이 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정보들을 찾았는데 막상 혼자 다니기 무서워서 많이 보진 못했다. 그래서 정작 공연을 즐긴 시기는 한국에 돌아오기 전 두세 달 정도. 사실 지겨웠지, 매일 집에 처박혀 TV만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꽤 인지도 있는 레이블의 밴드들이 공연하는 곳을 알게 되었다. 크게 사인드 밴드(signed band)와 언사인드 밴드(unsigned band)로 나누는데 사인드 밴드는 레이블과 계약이 되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밴드고, 언사인드 밴드는 펍에 마련된 무대를 신청해서 공연하는 밴드를 말한다. 마침 학교에서 알게 된 일본친구가 언사인드 밴드로 공연한다는 걸 듣고 한 번 보러 갔다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영국에서 공연했다’의 진실이다. (웃음) 그래도 어떤 곳에서는 두세 번 연속으로 하기도 했다. 처음 공연했을 때 반응이 좋아서 가져간 EP도 팔았다. 그러던 중에 관계자가 작은 자선공연을 제안해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한 번 하고 돌아왔다.

[weiv]: 거기에 오래 머물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겠단 생각은 안했나.
흐른: 그건 아니다. 한국에는 레이블도 있고 날 도와주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많았지만, 영국에서는 그만한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그걸 다시 만들 생각을 하면 엄두가 안 났다. 다만, 8개월뿐이었지만 영국에 다녀온 뒤로 음악 듣는 취향이 많이 바뀌었다. 그 전에는 음악을 찾아듣지도 않았고 트렌드를 읽을 능력도 없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뿅뿅거리는 사운드와 록 비트의 조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라디오로 옛날 음악들, 그루브한 팝이나 거라지 록을 많이 들었던 게 꽤 도움이 되었다.

[weiv]: 1집의 분위기가 EP와 무척 달라진 것도 그런 이유인가.
흐른: [몽유병]을 낼 때에는 그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녹음이나 편곡작업을 제대로 안 해본 상태에서 앨범 녹음을 2주 만에 끝냈다. 프로듀싱을 맡았던 재경이가 즐겁게 동참해 준 덕에 욕심 없이 빨리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 작업을 할 때에는 치밀하게 작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운드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앞으로 음악을 계속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weiv]: 다른 강박은 없었나. 이를테면 이건 ‘제대로 시작하는 일’이니까 2집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했다거나.
흐른: 뭐, 그런데 1집 반응이 안 좋으면 2집은 못 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웃음) 솔직히 다음 앨범에 대한 욕심은 있다. 확실히 EP를 냈을 때보다 지금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프로듀서인 송재경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신감이 없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다. 자신감도 필요하고 좀 잘난 척 할 줄도 알아야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때는 나도 마음으로는 동의했지만, 이제야 좀 그게 자연스러워 지는 것 같다.

[weiv]: 전에는 자신이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던 건가.
흐른: 그런 게 아니라 이제는 ‘제대로 안 하면 안 되겠다‘란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대충해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 걸로 괜찮았다면, 이제 1집을 낸 이상 가능성이나 잠재력이 있다는 말에 안도할 순 없지 않나.

“나는 ‘갈등의 지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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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1집 수록곡은 언제쯤 만든 곡들인가?
흐른: “누가 내 빵을 뜯었나”는 2003년에 만든 곡이다. 개인적으로도 잘 만든 곡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제일 오래된 곡이기도 하다. “Wake Up In The Morning”도 2년 전에 만들었다. 영국에 있을 때 쓴 곡은 “어학연수”, “You Feel Confused As I Do” 등이다.

[weiv]: 앨범에 참여한 세션들은 어떻게 모였나?
흐른: 대부분 튠테이블무브먼트 사람들이다. 기타는 프로듀서인 송재경과 로로스의 최종민이 맡았다. 기타를 전공하고 세션도 많이 해봐서 실력이 좋다. 드럼은 프로그램으로 다 찍었고, 로로스의 도재명도 좀 도와줬다. 건반은 이충완 씨가 3곡정도 해줬고. 건반은 내가 했다. 공연 때는 구했고.

[weiv]: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밝다. [몽유병] 때문이겠지만, 어쿠스틱을 기대했는데 신스팝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앨범은 좀 다르게 들리는데 그건 사운드와 멜로디 때문인 것 같다.
흐른: 기타와 신서사이저를 섞는 건 요즘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나는 촌스러운 게 싫다. 촌스러워질 수 있는 음악을 세련되게 꾸민다는 점에서 팻샵보이스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에 있을 때 매일 뮤즈나 더 킬러스, 스노우 패트롤 노래를 들었는데 지겨워 죽는줄 알았다. (웃음)

[weiv]: 가사 때문인지 “Global Citizen”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 가사도 가사지만 발랄한 멜로디가 더 인상적이다.
흐른: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그 노래는 처음엔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그런데 가사가 좀 이렇다고 멜로디까지 진지하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Global Citizen”은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걸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은 게 잘한 것 같다.

[weiv]: 너무 정치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얘긴가.
흐른: 그게 아니라 너무 직접적이면 자칫 촌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난 그걸 잘 만들고 싶다. 여전히 갈등하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쪽에 있고 싶지만 내 취향이나 일상이 또 완벽하게 그렇지도 않으니까. 또 그게 완벽한 인간도 없을테고. 그러니까 나는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 위치에서 스스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치적으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어도 일상에는 표현되지 못하는 고민과 갈등이 있다. 대부분의 노래들이 이런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갈등의 지점들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weiv]: 나는 오히려 대부분의 노래 가사의 어미가 제대로 끝나지 않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마침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끝나는 것. “그렇습니까”도 그렇고 “Global Citizen”도 마찬가지다. 할 말을 다 안하거나 일부러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흐른: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웃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건 선명한 메시지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 때문이 아닐까. 말했듯이 너무 직접적인 가사는 촌스러워지기 쉬우니까. 그래서 애매하게 쓴 가사가 쿨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걸까라고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요즘엔 배려가 지나쳐서 나도 너도 모두 옳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리버럴리즘이 과연 진보적인 태도가 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그런 식으로 가사를 불명확하게 썼다면 그건 내가 갈등하기 때문일 거다. 갈등의 지점을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비겁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번엔 내가 가사를 잘 썼다고 생각한다. (웃음) 나름대로 내 상황을 선명하게 쓴 것 같다. 사람들이 얼마나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weiv]: 사람들이 “Global Citizen” 얘기를 많이 하는 바람에 앨범에 대해서는 별 반응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누가 내 빵을 뜯었나”나 “다가와”, “할 수 없는 말”, “Song For The Lonely”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흐른: “다가와” 같은 곡이야 짝사랑할 때 나오는 곡이다. 감정이 증폭된 상태에서 쓴 곡이니까. 어떤 특정한 화두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특히 일상에서 느끼는 기호품, 취향,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밀접하게 담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런 가사를 접한 사람들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Global Citizen”을 듣고선 ‘그럼 아무것도 먹지도 말라는 거냐’는 얘기도 들어봤다.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 ‘너 하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먹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다. 나는 이런 ‘모 아니면 도‘의 방식이 지겹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쉬운 일들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자기 취향을 포기하기 싫어서 이상한 논리로 자기정당화를 하는 게 싫다. 자신의 비겁함을 정당화하는 것도 싫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고,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을 사람들도 같이 느꼈으면 한다.

[weiv]: 영어 가사로 된 노래도 몇 곡 있다. 영국에서 쓴 곡들인가. 그리고 그건 글로벌 시장을 고려하기 때문인지도 궁금하다.
흐른: 대부분 영국에 있을 때 쓴 곡들인데 앞으로도 영어로 된 곡들을 쓸 생각이다. 내 음악을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만들고 싶진 않다. 곡을 쓸 때, 외국에서 좀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영어로 쓴다.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한국어로 쓴다. 어차피 마이스페이스닷컴에 다 올리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도 볼 수 있어서 좋다. 회사를 통해서 해외 배급을 하는 건 쉬운 게 아니지만 굳이 멀리 볼 것 없이 아시아 지역에서 네트워킹을 하는 다른 뮤지션들을 보면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한국어로만 가사를 쓰면 거기에 제약이 생기니까 영어로 가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 여자 뮤지션들은 남자들과 다르게 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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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2004년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도 그 즈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나.
흐른: 그 당시에 음악 하는 언니들은 다 멋있었다. 허클베리핀과 헤디마마를 좋아했는데 그들은 세대가 지나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나와 활동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보면 그 정도로 멋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의 내가 음악 하는 언니들을 동경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다른 여자 뮤지션들과 차별화되고 싶다. 그게 고민이다. 일종의 트렌드가 있는데, 나는 거기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할까… 그런 고민.

[weiv]: 학부와 대학원에서 여성학, 사회학을 전공한 경력이 그런 고민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흐른: 그런 얘기도 많이 듣지만 나는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가사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내 전공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한 편인데. (웃음) 내가 쓰는 가사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여성’이란 정체성을 특별히 인식하는 건 아니다.

[weiv]: 개인적으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란 말을 좋아하진 않는데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차별적으로 쓰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정성’에 대한 얘기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도 같은 맥락인데, 싱어송라이터 앞에 ‘여성’이란 말이 들어가서 어떤 편견을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성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는 순간 어떤 전형들, 자기고백이나 자기연민, 일상에 대한 노래일 거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흐른: 나한테도 그런 선입견도 있었던 것 같지만 솔직히 기존의 여자 뮤지션들의 음악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묶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부분에서 음악성이나 태도에서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무대나 공연에서의 멘트나 행동 같은 것들. 남자 뮤지션들은 ‘자기비하’나 조소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을 보여주는 ‘자기 고백’을 통해 ‘진정성’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표현방식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왜 여자 뮤지션들은 남자들처럼 표현하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건 사람들이 여자 뮤지션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또 본인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성격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전략적으로 한 적은 없지만, 이런 상황과 고민이 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에는 동의한다.

[weiv]: 현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데 힘들진 않은가.
흐른: 특별히 힘든 건 아니다. 당연히 전업으로 음악을 하게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니까. 장기하처럼 크게 성공해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일종의 ‘알바’를 하면서 음악을 하는 게 나쁘진 않다. 오히려 전업으로 음악을 한다면 부담감이나 조급함이 생길 것 같다. ‘이번에 잘 안되면 끝’이란 강박에 시달릴 지도 모르고.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음악하면서 어느 정도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일은 흔치 않은데, 나는 그럭저럭 생활비를 벌고 있다.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weiv]: 자신에게 모자란 게 있다면 뭔가.
흐른: 패션 감각? (웃음) 옷을 좀 잘 입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디공부도 좀 하고 싶은데, 나중에 일렉트로니카 앨범도 내보고 싶다. 물론 2집은 아니고. 곡 안 쓴지가 꽤 오래라서 걱정인데 내년에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웃음) 20090501 | 차우진 nar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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