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vpatoria Report – Maar – Get A Life! Records, 2008 / 파스텔뮤직, 2009 포스트 록과 서정성, 그리고 파스텔뮤직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점층적으로 진행되는 사운드, 그렇게 축적된 음의 높낮이 사이에서 비상하는 처연한 멜로디, 절정부에서 불현듯 시작되어 점차 격해지는 트레몰로, 마침내 순식간에 가득차는 드론 노이즈와 리버브. 이른바 포스트록, 익스페리멘틀, 혹은 인스트루멘틀 록이라는 장르의 룰은 이 정도로 요약내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르의 음악에는 가사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인데, 그 이유는 내용보다는 사운드가 전달하는 직접적인 감흥과 그런 사운드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주체의 의지/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운드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동시에 해석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이 장르에 속한 사운드의 특성이기도 하다. 최근 파스텔뮤직에서 라이센스된 스위스 밴드 엡파토리아 리포트(The Evpatoria Report)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2002년에 결성된 밴드로 초기 EP와 정규 1집을 묶은 합본반 [Golevka/The Evpatoria Report Ep]과 2008년의 2집 [Maar]가 동시에 발매되었다. 이들의 사운드는 오히려 전형적이기 때문에 스위스라는 밴드의 태생과 이국적인 밴드명이 두드러진다. 엡파토리아는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인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데이터를 발신하는 안테나가 설치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고, 엡파토리아 리포트는 바로 그 데이터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설명을 보태면 이들의 음악은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들린다.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의 수록곡 모두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비장미와 서정성로 가득한 멜로디가 돋보인다는 점 역시 그렇다. 명백하게 모노(Mono)와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의 영향 아래 있는 앨범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감지되는 서정성이야말로 포스트 록이 도달한 어떤 결과다. 2000년대 이후의 밴드들이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같은 초기 밴드와 차별화된 지점도 곡을 지배하는 드라마틱한 서정성이었다. 흔히 ‘광폭한 서정미’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사운드의 구조는 포스트 록이 등장한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엔 아예 장르의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런 맥락에서 엡파토리아 리포트의 한국 라이센스가 흥미롭다. 앨범을 발매한 회사가 파스텔뮤직이기 때문이다. 파스텔뮤직은 흔히 ‘팬시한 인디 가요’를 제작/유통하면서도 마니아 성향의 해외 록 음반을 라이센스하는 상반된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일관되게 ‘서정적인 사운드’를 그 핵심으로 삼아왔다. 파스텔뮤직이 요조, 짙은 같은 국내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독일의 막시밀리언 헤커나 덴마크의 므와 카프리스 같은 변방의 음악가를 발굴한 것을 비롯해, 모노와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를 국내에 정식 소개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국내외 음반 제작과 관련한 파스텔뮤직의 정책들도 같은 맥락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나 스타일을 기준으로 삼은 다른 인디 레이블들과 달리 파스텔뮤직은 서정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보편적인 시장성을 획득한다. 물론 이런 유연성은 파스텔뮤직을 더 상업적으로 보이게도 만든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파스텔뮤직은 왜 자꾸 한국에서 팔리지도 않을 타이틀을 수입하는 거냐’는 질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관점이 도움이 될 것이다. 명백한 것은 파스텔뮤직이 매니악한 앨범 발매를 고집하는 이유가 팬시한 국내 인디 앨범을 제작/발매하는 것에 대한 정서적 반작용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파스텔뮤직은 그 시장을 발견한 동시에 만들어냈다. 보편적인 감수성을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과 결합된 ‘인디 시장’이야말로 이들이 거둔 성과다. 물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건 한국 인디 레이블들(의 시장전략과 그 차별성)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가능할 것이다. 20090223 | 차우진 nar75@naver.com ps. 엡파토리아 리포트에 대해 호의적이라면 스웨덴 밴드 도레나(Dorena)도 괜찮게 생각할 것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사운드의 포스트 록 밴드로 2009년 2월에 새 앨범 [Holofon]을 발표했다. 7/10 수록곡 1. Eighteen Robins Road 2. Dar Now 3. Mithridate 4. Acheron 관련 사이트 파스텔뮤직 홈페이지 http://www.pastelmusic.com/ 엡파토리아 리포트, 마이스페이스 http://www.myspace.com/theevpatoriareport 도레나, 마이스페이스 http://www.myspace.com/dorena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