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 201 – 루비살롱, 2008 덜어내야 담을 수 있는 것 검정치마의 첫 앨범 [201](2008)은 ‘포스트 펑크’나 ‘뉴웨이브 펑크’라는 인덱스를 붙였을 때 가장 어색하지 않을 한국 인디팝 음반이다. 또 근래 영미권의 멜로디컬한 기타팝과 트렌디한 개러지 펑크 스타일을 잘 이해하여 감각 있게 편곡한 음반으로도 들린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검정치마의 음악이 현재 국내의 여느 밴드들보다 ‘최신의’ 혹은 ‘이국적인’ 향취를 풍긴다는 항간의 평가를 부정하긴 어렵다. 한편 이 밴드의 음악적 배경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보는 과정에서 한국적, 로컬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블론디(Blondie)의 70년대 뉴욕 펑크나 랜시드(Rancid)의 90년대 캘리포니아 펑크씬과 함께, 노브레인 류의 ‘초기 조선펑크’나 언니네이발관 등의 ‘모던록 1세대’ 영향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Kiss And Tell”, “상아”, “Avant Garde Kim” 등과 같이 간들거리거나 꽤 익숙한 가락처럼 들리는 곡들이 그렇다. 그런데 [201]을 통해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이 앨범이 ‘얼마나 한국음악 같지 않은가’라는 개별 감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영미 진영의 스타일리쉬한 펑크튠을 한국 인디 특유의 감수성 짙은 멜로디 같은 것들보다 우위에 두고서 대중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지금의 인디 씬에서 여전히 일종의 모험일 수 있다. 나긋한 목소리로 하늘거리는 곡조를 우수에 젖어 노래하지만 강렬한 음향적 쾌감을 주기에는 뭔가 아쉬운 음악이 현재에도 제일 잘 팔리는 ‘주류 인디’이며 전략 품목이기에 그렇다. 한국의 인디팝이 영미권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작곡(혹은 연주) 그 자체의 이질성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한 차이는 종종 멜로디 메이킹과 같은 작곡의 영역보다도 더 중요시되곤 하는 ‘감성의 과도함’ 때문에 생겨난다. 선율이나 연주 자체보다 (1990년대, 또는 7,80년대 즈음부터 전해 내려온) 한국 언더그라운드 감수성의 몇몇 기류에 여전히 기대는 경향이 우리 인디 씬에는 아직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멜로디는 감성으로 촉촉히 젖어야하고, 그게 아닐 거면 위트 있는 문학적 가사를 구식 멜로디에 실어낼 줄 아는 능력 정도라도 보유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201]의 적잖은 수록곡들은 이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한국적인 트위팝으로 들릴 때도 많다. 그러나 밴드의 리더 조휴일은 그러한 부분을 비교적 자유분방한 보컬과 편곡 습관으로 매끈하게 덮는다. ‘영어로 쓰고 한국어로 번역한’ 노랫말과 그것의 발성 또한 새로움을 더한다. 그래서 이 음반은 한국 인디 씬에서 매력적인 시도를 감행하는 작업물로 환대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을 청자가 흔쾌히 받아들였을 때, 검정치마는 ‘영미 인디팝의 색조를 가장 확실하게 내비친 한국 인디’로 불려도 무방해진다. 그때야 비로소 이 앨범은 명쾌하게 긍정된다. “좋아해줘”와 “Antifreeze”의 캐치한 멜로디는 좀처럼 한국 인디에서 듣기 힘들던 실루엣을 갖게 되고, “강아지”의 파워팝 펑크 사운드도 더 쾌활해진다. 블루스와 개러지록을 적당히 혼합한 “Stand Still”이나 슈게이즈 팝넘버 “Tangled” 등의 곡들도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는 한결 나아진 완성미를 갖는다. 2007년 EP를 통해 비슷한 방식(영어 가사와 영어식 발성)으로 한국 인디 특유의 감상성을 떨쳐내려 시도했지만 끝내 그 ‘축축한 감성’만은 극복하지 못했던 골든팝스(Golden Pops)보다 더 차갑고 건조한 방식으로 말이다. 검정치마의 [201]은, 다소 잡다한 트랙들로 구성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썩 잘 만든 펑크록 음반이다. 그래서인지 ‘좋은 습작앨범’과 같은 느낌도 받는다. 조휴일은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이 데뷔작의 ‘잡다함’을 인정하며 ‘자신의 취향보다 더욱 대중적으로 만들어보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발언에 충분히 진지했다면, 이 앨범은 앞으로의 음악 활동을 위한 좋은 방향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90223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7/10 수록곡 1. 좋아해줘 2. Stand Still 3. 강아지 4. 상아 5. Antifreeze 6. Tangled 7. Avant Garde Kim 8. Le Fou Muet 9. Dientes 10. Kiss And Tell 관련 사이트 검정치마 다음 팬 카페 cafe.daum.net/theblackskirts 루비살롱 공식 홈페이지 www.rubysal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