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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밴드-The Happiest (EP)-Epari/Loen, 2008

 

 

사라져버린 정서

2006년 7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모처럼 3형제가 모인 [산울림 결성 3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렸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산울림은 노래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가만, 제목을 말했던가?) 새로운 곡을 연주했는데, 아마도 내용은 산업전선에서 허덕이는 직장인의 애환에 관한 노래였던 거 같다. 하지만 가사가 극히 보편적이고 막연했던 지라 공연을 같이 본 직장동료는 “김창완이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라며 비아냥거렸고, 나 또한 당시 혹독한 산업연수생 시절이었기에 긍정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때만 하더라도 당장에 산울림의 열네 번째 앨범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김창완 형제의 막내이자 산울림의 드러머 김창익의 사고로 인해 그들은 마치 레드 제플린처럼 산화되었다. 그리고 2008년 말, 김창완을 중심으로 김창완밴드의 첫 번째 EP [The Happiest]가 발매된 것이다. 이 밴드에는 보컬/기타의 김창완 이외에 곱창전골, 황신혜 밴드, 뜨거운 감자를 비롯해 영화 [사생결단] 등의 OST에도 참여한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오헤이가 있고 김목경 밴드, 김광석 밴드 등을 거쳐간 베이스 최원식과 비갠후의 키보드 이상훈, 그리고 현재 로다운30에서 드러머로 활동 중인 이민우 등 나름 화려한 세션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일까. 김창완밴드의 EP앨범에는 예의 기대하지 마지않던 김창완의 독특한 에스프리를 찾기 어렵다.

단정적으로 이 음반은 컨템포러리 록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지만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다분히 피상적이고 변별력 없게만 들린다. 이를테면 [산울림 결성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의 신곡이 헐렁하게 들렸던 것처럼, 개러지하게 록킹한 사운드를 뿜어내며 포문을 여는 연주곡 “Girl Walking”에서부터 낯설게 삐걱거린다. 아마도 예상과 다른 동선으로 잽싸게 들어오는 탓에 포커스 맞추기가 급급해진 것일 테다. 그리고 “FORKLIFT”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풀-랭스 밴드 체제로 동시대 개러지 록을 자양분으로 하다 보니, 고목나무 아래 대청마루는 사라지고 육덕진 땀 냄새로 가득한 클럽만이 연상된다. 더욱이 이러한 버거움은 가사를 확인하면서 더욱 증폭된다.

김창완의 작법은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며 솔직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1995년 김창완 솔로앨범 [Postscript]의 수록곡들을 살펴보면, ‘연락 좀 해줘 우리엄마한테 나 이제 너무 지쳤다고 연락 좀 해줘 우리엄마한테 나 길을 잃고 헤맨다고’(“연락 좀 해줘”), ‘굴속 같은 방안을 언제 청소를 하나 한여름 바깥은 햇살 가득한데 커튼을 내리고 온종일 비디오만 봤네’(“비디오만 보았지”)와 같다. 하지만 김창완밴드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동어반복적인 단어나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나(제발 제발 눈을 감아줘요 슬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표면적인 상황(저 멀리 걸어가는 널 바라만 봐도 우두두 두다다 두다다 두두 심장소리), 생경스러운 매치 등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정서를 공감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의 경우 대상은 고착화되고 어조는 퇴행적이다 보니 세상만사에 능통해진 어르신의 말투마저 연상된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번 앨범의 컨셉은 ‘아날로그 빈티지 록 사운드’를 표방해서 원테이크 레코딩 방식으로 녹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의도가 제대로 표현되었을까? 이는 네 번째 수록곡 “모자와 스파게티”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이 곡은 이미 2000년 컴필레이션 앨범 [도시락 특공대] 2집에 김창완의 솔로로 수록된 바 있다. 당시의 노래는 현재의 곡과 멜로디, 가사는 모두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연주방식(혹은 정서?)이다. 김창완밴드에서 이 곡은 악기를 총동원해 빈 곳 없이 구석을 메우는 동시에 완급을 조절해가며 탄력을 주지만 [도시락 특공대]에서는 낮은 보컬 톤이 들리는 가운데 오직 디스토션 걸린 기타 하나로 4분을 채우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서 빈티지한 록 사운드가 느껴지며 더불어 헤어진 여자 친구를 그리워하는 청승맞은 남정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결론적으로 김창완밴드의 EP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롤 모델을 설정하고 트렌드를 강박적으로 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21세기 록 음악의 한자리에 비집고 앉을 수는 있겠으나 다만 도드라지지 못한 채 집단의 일원으로만 남아있을 듯하다. 이는 과거 김창완의 행보가 시대를 앞서거나 영역과 동떨어진 곳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적이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고로 아마도 나에게 김창완밴드의 [The Happiest]는 김창완이 참여한 음반 중에서 가장 손이 덜 가는 앨범이 될 것이다.

*생기발랄한 여섯 번째 트랙 “우두두다다”는 원테이크 레코딩을 증명하려는지 초반 연주 실수 때문에 생긴 멤버들의 멋쩍은 웃음을 그대로 삽입했다. 문제는 故 김창익의 추모곡으로 알려진 “FORKLIFT”의 다음 노래라는 점. 하여 “FORKLIFT”를 히든트랙으로 실었으면 어땠을까, 담담하기 때문에 오히려 쓸쓸한 “FORKLIFT”의 잔영에서 미처 헤어나오기도 전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듣자니 민망하고 난감한 건 나만 그런 건지. 20090222 | 이주신주희 youhadbeenredsometime@hotmail

4/10

수록곡
1. Girl Walking
2.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3. 제~발 제~발 (멀쩡한 사람들이 남 모르게 부르는 이상한 노래)
4. 모자와 스파게티
5. FORKLIFT
6. 우두두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