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3033533-leesora_07

이소라 – 7 – Mnet Media, 2008

 

 

레이스 뜨는 여자

이소라의 신보에 참여하고 있는 뮤지션들은 김민규, 이한철, 정순용, 강현민, 이규호 등이다. 전작인 [눈썹달](2005)에는 강현민, 김민규, 이승환(The Story), 이한철, 정재형 등이 참여했다. 겹치는 이름이 있고, 겹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름들이다. 음반에 실린 멜로디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는 이름들이기도 하다.

물론 저 이름들 중에는 [Sora’s Diary](2002) 때부터 함께 하던 이들도 있다. 그러나 [Sora’s Diary]와 [눈썹달] 사이의 관계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덧셈과 양자역학 사이의 관계다. [눈썹달]을 기점으로 이소라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특수한 위치, 그러니까 한영애의 [바라본다](1988)를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곡-멜로디를 쓰지 않음에도 자기 음악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탁월한 여성 보컬리스트의 위치로 올라섰다(물론 그녀는 전곡의 가사를 쓰고 프로듀싱까지 했다). 따라서 음반 제목도 수록곡 제목도 없는 이소라의 일곱 번째 정규작은 ‘아티스트’ 이소라의 소포모어 음반이기도 하다.

음반의 첫 번째 인상은 실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적 팝 아티스트에게 실험이란 무엇일까. 기기묘묘한 소리일까. 파격적인 가사일까. 적어도 이 음반에서는 창작(과정)에 대한 자의식이다. 일종의 ‘인트로’인 1번 곡과 4번 곡은 꼴라주다. 데모 버전처럼 들리는 노래들과 작곡 과정에서 나눈 대화들(1번), 서로 다른 작곡가의 곡들이 병치(4번)되고 있다. 12번과 13번 곡은 타이틀곡(여기서 보건대 3번 곡)을 ‘reprise’한 뒤 ‘인트로’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녀는 타이틀곡을 작곡가들의 입을 통해 ‘아무렇게나’ 노래하게 한 뒤 열악한 음질로 ‘인트로’를 반복한다. 둘 다 ‘(깨끗하게)숨김’보다는 ‘(날것으로)드러냄’이다. 수록곡의 제목을, 비록 그림이 있다고는 하지만, 공백으로 놓아둔다. 이러한 부분들은 창작(과정)을 공개함과 더불어 수용자가 그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몇 곡의 제목은 공모한다고 한다). 음반의 두 번째 인상인 느슨함은 거기서 온다.

그게 허세나 자의식 과잉, 혹은 중구난방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 이외의 부분이 참으로 섬세하고 균질하게 직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반에 대한 세 번째 인상이며, 가장 오래 남는 인상이기도 하다. 음반의 곡들은 어쿠스틱, 일렉트릭, 일렉트로닉으로 찍은 삼각형 사이에서 우아하게 움직인다. 매혹적인 훅을 가진 3번 곡과 8번 곡, 몽롱한 전자음과 카랑카랑한 일렉트릭 기타가 예쁘장한 카오스 상태를 야기하는 5번 곡, ([눈썹달]의) “듄”에 대한 답가처럼 들리는 11번 곡은 전작과 신작의 가교인 동시에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이기도 하다. 오히려 음반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는 신보가 더 낫다. 죽이는 곡들과 그렇지 않은 곡들의 편차가 큰 편이었던 [눈썹달]에 비해 신보는 음반의 마지막까지 좋은 곡들을 꼭꼭 숨겨두었다 매끄럽게 흘려보낸다. 올해의 명반이건 최악의 졸작이건 뒷심 부족이 한국 대중음악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라는 걸 고려한다면 이는 예사로이 지나칠 일이 아니다.

[눈썹달]의 암청색 정서에 젖어 있던 이소라의 팬들이라면 신보가 ‘가볍고 따스하고 밝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벼운 것이 아니라 덜어낸 것이고, 따스한 것이 아니라 차갑지 않은 것이며, 밝은 것이 아니라 어둠이 걷힌 것이다. 이소라가 히스테릭하고 스펙타클하게 사운드의 벽에 머리를 짓찧으며 보여준 황홀한 비극을 기대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승부는 사실 다음부터다. ‘비’에 매몰되지 않고 ‘극’을 다루는 것이 ‘비’의 바닥에 다다랐던 이의 목표일 것이다. 이소라는 드디어 자기의 비극 바깥에 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2008년의 가장 아름다운 팝 음반중 하나를 내놓았다. 이 음반은 내년 겨울에도, 내후년 겨울에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이 음반이 주는 즐거움을 너무 많이 빼앗지 않기를. 20081224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8/10

덧. 리뷰의 제목은 파스칼 레네의 동명소설(이재형 역, 부키, 2008)에서 가져왔다.

수록곡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관련 글
이소라 [꽃] 리뷰 – vol.3/no.1 [20010101]
이소라 [눈썹달] 리뷰 – vol.7/no.6 [20050316]

관련 사이트
이소라 공식 홈페이지
http://www.leesor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