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 – 가장 보통의 존재 – 55AM, 2008 너는 아름다운 것이 되어가고 있는가? 오래 끌면 좋을 게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포티스헤드(Portishead)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다. 언니네 이발관의 신보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면 이 음반이 그들의 [Chinese Democracy]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긋나긋하게 출렁이는 리듬에 맞춰 이석원이 “이런, 이런, 큰일이다 / 너를 마음에 둔 게”라고 노래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게 되면 이 음반이 그들의 [Third]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키워드는 ‘음반’과 ‘팝의 장인정신(pop craftsmanship)’이다. 음반이라 함은 밴드가 싱글보다는 음반 단위의 감상을 유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컨셉트 음반’이라는 말까지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일관성을 가진 음반을 최근에 찾아볼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관성과 지루함을 혼동한 음반은 있었지만 말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의외의 사실”까지 밴드가 보여주는 집중력은 특히 강렬하다. 다만 이 흐름이 워낙에 좋아서 후반부가 전반부에 비해 처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팝의 장인정신’은 ‘효율성’이 아니라 ‘정교함’이다. 효율성이라는 것이 먹힐 만한 ‘싸비’를 강조하면서 나머지 부분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처리하곤 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일컫는다면 ‘장인적 접근’은 소소한 부분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를 언급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석원의 가창 또한 몇몇 부분에서 닐 테넌트(Neil Tennant)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그럼에도 펫 샵 보이스와는 다른 개성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구질구질하다. 그러는 대신 “너는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가?”나 “아름다운 것”을 듣는 쪽이 낫다. 곡이 대신 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곡들의 수준은 높다. “아름다운 것”이 타이틀곡인 까닭은 그저 제목이 제일 ‘타이틀곡답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에 비해 사운드는 ‘영국적’이라기보다 ‘미국적’이다. 꼭 집어 말하면 데스 캡 포 큐티(Death Cap For Cutie)나 릴로 카일리(Rilo Kiley), 윌코(Wilco)다. 깔끔하고 세심하며, 멜로디와 마찬가지로 ‘폭발’이나 ‘공격’보다는 ‘흐름’과 ‘유연함’을 내세운다. 몇 번씩 엎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는 결과이며 [꿈의 팝송](2002)이나 [순간을 믿어요](2004)의 맥 빠진 고분고분함과도 다르다. 칼칼하게 쏘아 붙이는 “의외의 사실” 같은 곡은 이러한 전체적 기조에 흥겨움까지 첨가한, 음반의 가장 좋은 곡 중 하나다. 사운드를 탈색시키는 것 같은 “가장 보통의 존재” 후반부의 시도 역시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이는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나 [후일담](1999)이 방만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밴드가 자신들의 음악을 통제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았다는 증거처럼 들린다. 이제 가사 차례다. 다시 테넌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테넌트야말로 이 분야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독설과 냉소와 멜랑콜리를 뒤섞은 엄청난 양의 가사를 잘 다듬어 낸 멜로디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보통의 존재”나 “의외의 사실”, “산들산들”이 아닌가? 이석원은 독설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쓸쓸하고 달콤하게 자신의 감정을 잘 전달한다. 그건 어떤 순간에는 정말로 절실하게 들리고(“가장 보통의 존재”, “아름다운 것”, “나는”) 어떤 순간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지만(“의외의 사실”, “인생은 금물”) 어떤 순간에는 초점을 벗어난 것처럼 들린다(“알리바이”, “산들산들”). 가사의 호소력은 고르지 않다. 그리고 그건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영국적 감성으로 한국적 환경에서 구축한 미국적 인디 록이다. 이 음반은 한국의 인디 씬이 오랫동안 젖줄을 대 온 굵은 지류들을 성실하게 끌어모아 만든 호수 같다. 목이 긴 괴물은 없지만 맑고 파란 하늘을 받아치는 풍경이 장관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순간 중 하나이며, 밴드로서도 그 동안의 애매모호했던 행보를 청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2008년이 몇 달 남지 않은 지금 이 이상의 인디 록 음반이 과연 올해 안에 또 나올 수 있을지, 혹은 내년에도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20080831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덧.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 달라는 밴드 측의 주문에는 응할 수 없다. 그건 음반을 만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겠지만 창작자가 감상자에게 어떤 형태로건(권유건 명령이건 부탁이건)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시하고 선을 긋는 것은 곤란하다. ‘이렇게 듣지 않았으니 제대로 들은 게 아니에요’라는 말이 나오는 걸 꼭 보고 싶다는 건가? 8/10 수록곡 1. 가장 보통의 존재 2.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3. 아름다운 것 4. 작은마음 5. 의외의 사실 6. 알리바이 7. 인생은 금물 8. 100년 동안의 진심 9. 나는 10. 산들산들 11. 아름다운 것 (Radio Edit.) 관련 글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리뷰 – vol.2/no.22 [20001116]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리뷰 – vol.2/no.22 [20001116] 언니네 이발관 [꿈의 팝송] 리뷰 – vol.4/no.21 [20021101] 언니네 이발관 [순간을 믿어요] 리뷰 – vol.6/no.14 [20040716] 관련 영상 “가장 보통의 존재” 관련 사이트 언니네 이발관 공식 사이트 http://www.shakeyourbodymoveyourbody.com/ [씨네 21]에 실린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글 http://blog.naver.com/nar75/60054563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