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우유 (Vidulgi Ooyoo) – Aero – 파고뮤직, 2008 반시대적 사운드의 노스탤지어 음악을 듣다보면 종종 이 사운드의 실체가 사실은 고막을 건드리는 공기의 울림의 물리적인 결과라는 점을 잊어버린다. 음악은 귀로 듣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뇌가 아닌 다른 곳이다. 흔히 마음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 심장 근처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미지의 공간(물론 그게 공간인지 아닌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에 사운드가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건 실체가 없는 감상이다. 사운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을 수도 없으며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음악이 어떤 다른 예술보다 근원적인 이유다. 우리는 사운드를 통해 그저 어떤 심상, 그러니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얻은 것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느낌’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원초적인 의미에서 가장 인간에 근접한 예술 형태다. 특히 멜로디와 노이즈, 온갖 악기가 만드는 화음과 불협화음의 악다구니가 묘사하는 풍경은 장르를 초월해 깊은 흔적을 남긴다. 비둘기 우유라는 밴드의 새 앨범에 대한 글을 쓰면서, 혹은 이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의 음악은 흥미롭지만 대단하지는 않다. 홍보문구의 구절처럼 이 사운드는 ‘90년대적’이고, 따라서 전자음이 난무하고 드론 노이즈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도 의도하지 않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홍대 앞 인디 씬이 풍성한 사운드를 창조해내던 시절, 아뿔싸 틀렸다. 그것은 홍대 앞 인디 씬이 풍성한 ‘록 사운드’를 창조해내던 시절에 대한 향수다. 비둘기 우유의 사운드는 장르적으로는 드립팝, 슈게이징, 새드-코어 혹은 포스트 록의 범주로 수렴되고, 전자적으로 왜곡된 악기의 사운드가 만드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그 관습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음악에 대한 새삼스러운 정의를 재고하게 만든다. 영어로 된 대부분의 곡 제목, 잘 들리지 않는 노랫말, 노이즈와 전자음이 뒤섞인 사운드, 익숙한 주법의 기타 프레이즈와 리프가 겨냥하는 정서.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일관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확실히, 사운드는 이성이 아닌 감성에 근접한 표현행태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바꿔말해 이런 사운드를 즐겨 들을 사람은 소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앨범을 추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르적으로 이미 대다수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음악 자체가 ‘블로그 BGM’ 이상으로 생존하기 곤란한 현재 한국에서 이런 기타 노이즈를 소비한다는 것이야말로 반시대적이다. 그런데 이런 노이즈 가득한 사운드는 역설적이게도 관습화된 사운드-흔히 말하는 음악에 대해서 환기시킨다. 그건 꽤 재미난 일이다. 수록된 8곡의 트랙들은 모두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전기기타와 이펙터, 신서사이저가 만드는 노이즈는 공간을 에워싸고 그 속에서 사운드에 묻힌 채 흘러가는 남성과 여성의 보컬은 기묘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런 사운드는 도시적으로 들린다. 건조하고 무심하며 익명적이다. 인적이 드문 밤, 고층건물 사이에 줄지어 켜진 가로등 사이에 서서 들으면 딱 좋을 음악이다. 복잡한 구성으로 촘촘히 이어 붙여지는 멜로디는 고유의 속도감과 구조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물론 이런 구성은 이미 해외에서 누군가 숱하게 해 놓았던 것들이다. 듣다보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당연히 떠오르고 익스플로전 인 더 스카이 같은 밴드가 연상된다. 신인 밴드를 누군가에게 빗대어, 특히 한국 밴드를 외국 밴드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비겁하기도 하고 무책임한데다가 애정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비둘기 우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밴드의 탓이 아니라 장르의 탓이 크다. 따라서 만약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처음 들은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함께 들어볼 만한 앨범을 소개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익스플로전 인 더 스카이, 모노, 슬로우다이브, 아랍 스트랩, 갤럭시 500, 콕토 트윈스 등의 이름을 기억하자. 도움이 될 것이다. 20080705 | 차우진 nar75@naver.com 7/10 * [백도씨]에 실렸음. 수록곡 1. Siren 2. 너의 눈으로 나를 본다 3. Elephant 4. Murmur’s Room 5. I Might Be You 6. Even Freedom 7. Aero 8. Elephant (Love Mix) 관련 글 2006년 1월 27일 금요일, 비둘기우유의 단독공연 – vol.8/no.3 [20060201] 관련 영상 “Eleph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