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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이문세 노래를 좋아한 적은 내 생애 단 몇 년 뿐이었다. 그것도 오로지 5집만을 좋아했다. 이문세 5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에 든 정품 카세트테이프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생일에 어머님이 정성스럽게 포장까지 해서 주신 그 카세트테이프를 나는 그 전 해에 아버님께 선물 받은 새빨간 소니 카세트레코더에 꽂아 질리도록 들었다.

내 십대의 기억은 대부분 그런 식이다. 뚜렷하진 않지만 명확한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문세는 그렇게 열 몇 살의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점령한 뒤에 홀연히 사라졌다. 곧이어 박학기와 신촌블루스와 김현식과 최진영(최진실의 동생이 아니다)과 동아뮤직의 가수들이 차례로 빈틈을 메웠고 고등학교 2학년에 되던 해에 나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소개팅을 하고 처음으로 이별을 하고 4년제 대학에 가야겠다는 이유로 밴드가 깨졌을 때에도 이문세는 추억의 이름이었을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좁은 자취방에 앉아 영화잡지 [키노]를 뒤적이던 사이 이문세와 이영훈의 결별설도 들렸고, 이영훈의 독집 앨범도 나왔지만 얼터너티브와 브릿팝에 경도되어 있던 스물 몇 살 남자애에게 세미 클래식이란 다소 혐오스러움마저 느끼게 하는 고급 카페의 배경음악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새 차를 사면서 이젠 어른이 되는 거라고 여전한 치기에 도취되어 있던 어느 날의 뉴스였다.

안산에 있는 대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선배들과 잔디밭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다보면 금방 저녁이 찾아오고 밤이 되었다. 학교 정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면 새로 생긴 노래방이 있었다. 거기에는 최신형 노래방 기계가 놓여 있었고, 먼 거리 때문에 손님이 적다는 이유로 그곳에 가면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도 서비스로 30분을 예사로 받을 수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밤 새 노래를 부르고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내가 애창하던 것은 이문세의 “후회”였다. ‘그대 눈물 같은 비속으로’라든가, ‘그대를 만나듯 거리에 서면’이라든가, ‘너를 안고 보던 그때 세상을’이라는 가사를 무척 좋아했다. 이문세 9집의 타이틀 곡이었던 이 노래는 이영훈과 이문세가 7집 이후 다시 만나 작업한 앨범으로 이문세가 새삼 이문세다울 수 있었던 앨범이었다. 그 뒤로 “소녀”와 “휘파람”과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같은 곡을 자주 불렀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나는 삼십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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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매거진t]에서 고 이영훈의 특집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코멘터리를 받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십대 시절에 이문세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했고, 누군가는 지인의 음악적 방향마저 바꾸는 계기였다고 말했지만, 모두들 이영훈이 80년대의 가요를, 이를테면 한 시대의 대중음악이 말 그대로 대중들의 감수성과 폭발적으로 만나던 지점을 정의했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십대 시절 내게 그의 음악은 막연한 두려움과 고독감을 부추기면서 그런 감상들을 경외하게 만들었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영훈이 만들고 이문세가 불렀던 그 노래들의 정서는 어른의 정서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와 강렬하게 이별한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들과 이별해왔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하는 동안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노래방에서 이문세의 노래를 부를 때면 예전처럼 멋스럽게 부르지 않게 되었다. 서른 해가 넘어가는 동안 나는 내 몸을 느리게 관통해가는 시간의 칼날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정도로 자란 것이다. 그게 전부 이문세와 이영훈의 덕분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이별노래와 사랑노래가 그토록 강렬한 이별의 순간을 예고하고 또 위로하면서 함께 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지자. 나는 이영훈이라는 작곡가의 노래들이 모두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이문세가 지금까지 불렀던 노래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문세의 앨범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우연히 들린 폐업하는 음반점에서 발견해 씨디로 구입한 이문세 5집 한 장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앨범을 다시 듣고 있다. 이 앨범에서 “시를 위한 시”와 “붉은 노을”과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같은 노래들이 히트했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한 노래는 “안개꽃 추억”이었다. 웅장하고 장엄한 대곡 스타일의 이 곡에는 몇 번의 클라이막스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내 맘을 쉬게 하여줘/창가에 비치는 너의 모습/흩날리는 빗자락에 쌓여/아리운 빗물인 것을/흩날리는 꽃잎가득 너의 눈길/잃어버린 추억 속에 쌓여/아리운 환상인 것을’이라는 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고 나는 그가 그곳에서 정말로 평화롭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가사도 무척 잘 썼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그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새삼 깨닫는다. 이영훈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20080218 | 차우진 nar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