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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ial – Untrue – Hyperdub, 2007

 

 

불확정적 도시괴담

로니 사이즈 & 레프라젠트(Roni Size & Reprazent)의 [New Forms](1997), 골디(Goldie)의 [Timeless](1995),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Blue Lines](1991), 포티스헤드(Portishead)의 [Dummy](1994)는 모두 영국 일렉트로닉의 걸작인 동시에 도시의 풍경을 탁월하게 그려낸 음반들이다. 물론 사운드는 구체적인 지시 대상이 없다. 따라서 이 음반들에 담긴 음악이 도시와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음악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사운드의 재료들은 도시의 소리와, 그것도 도시의 밤의 소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 소리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고독하고, 위협적이며,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구축되는 인공적인 세계의 이미지 말이다.

[Untrue]에서 드러나는 것 역시 밤의 도시의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어둡고, 강렬하며, 쓸쓸하고, 때로는 사악한 기운마저 풍긴다. 이 청각적 이미지를 만든 것은 런던 출신의 덥스텝(dubstep) DJ 베리얼(Burial)이다.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이런 음악을 만든다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기 친구들 중에서도 자기가 음악을 만드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럼 본인은 그렇다 치고 덥스텝은 뭘까. 극단적으로 강조된 덥의 베이스와 UK 거라지의 분절된 리듬이 결합된 음악이라는 것이 덥스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일텐데, 여기에 덥과 UK 거라지의 음악적 동지인 정글과 트립합, 그리고 각종 샘플들이 가세하며 완성되는 배배꼬이고 음울한 무드의 일렉트로닉 음악이라고 하면 대략 설명이 될 것이다.

덥스텝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생겨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딱히 이 바닥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으며(이제는 아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뮤지션 역시 없다(이건 여전히 그렇다). 음악의 성격이 ‘골수파(hardcore)’에 속한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2006년은 이런 덥스텝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해였다. 덥스텝 계열의 유망주였던 배리어스 프로덕션(Various Productions: ‘여러 프로듀서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팀 이름이다)이 데뷔작 [The World Is Gone]을 발표했고, 같은 해에 베테랑 덥스텝 DJ인 스크림(Skream)도 데뷔작 [Skream!]을 냈으며, 베리얼 역시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 [Burial]을 발매했다.

셋 중 가장 대중적인 결과물을 만든 것은 배리어스 프로덕션이었다. 이들은 포티스헤드(Portishead)를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팝적인 멜로디를 내세우며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대중 친화적이기는 했지만 그런 접근법 때문에 다소 밋밋한 결과물이 나온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베리얼이었다. 골수 중에서도 골수라 할 수 있을 그의 음악은 오로지 베이스와 리듬에 집중하는 ‘빡센’ 소리들을 담고 있었는데, 그것은 실로 굉장한 ‘음향 건축술(sonic architecture)’이었다. 유일한 문제점은 끝까지 듣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맨정신으로는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Untrue]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변화가 ‘팝적인 감성’이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지직거리는 LP 음향을 비롯한 각종 효과음 속에서 스피커가 감당하기 어려운 익스트림 덥 베이스가 작렬하며, 쩔걱거리는 비트가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를 닮은 앰비언트 무드 때문에 모든 소리가 반투명 상태가 되는 베리얼의 음악적 특징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파편처럼 흩어지는 보컬 샘플과 신서사이저로 만든 인상적인 멜로디를 추가했고, 그 덕에 개별 곡의 차원에서나 음반 전체적으로나 훨씬 접근하기 편한 동시에 더욱 잘 짜여진 구성과 무드를 축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음반의 대표곡은 “Archangel”이다. 이 곡은 멜로디, 사운드, 무드 모두 듣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싫어할 수는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보즈 오브 캐나다도 언급하고 앰비언트라는 말도 썼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수중의(watery)’라는 형용사가 더 어울려 보이는데, 날카롭게 돌진하는 거라지 비트 밑에서 웅얼거리는 것 같은 보컬 샘플과 오싹할 정도로 웅웅거리는 베이스가 꾸물거리는 “Near Dark”나 그에 못지 않게 강렬한 인상의 “Ghost Hardwear”를 비롯한 음반의 곡들이 꼭 물 속에서 듣는 댄스음악 같기 때문이다. “Endorphin”, “In McDonalds”, “UK” 같은 간주곡 성격의 트랙들도 빈틈없다. 쓸쓸하고 서정적이다. ‘댄서블’하고 ‘진솔한’ 비트가 주도하는 “Raver”는 좋은 마무리다.

[Untrue]는 압도적인 음반이다. 음악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음악이 야기하는 정서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나는 (대중)음악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말을 신중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쪽에 속한다. 그것이 기계적인 반영론(실제로 이런 관점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Untrue]를 듣다 보면 음악이 사회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안함, 불확실성, 불투명성과 같은 말에 가까이 있는 심리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런던 어딘가에서 정체를 숨기며 살고 있을 이 DJ는 2008년 한국의 상황을 통찰해버린 셈이다. 역시 음악에는 말도 필요없고 국경도 없다. 20080111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9/10

수록곡
1.
2.Archangel
3.Near Dark
4.Ghost Hardware
5.Endorphin
6.Etched Headplate
7.In McDonalds
8.Untrue
9.Shell Of Light
10.Dog Shelter
11.Homeless
12.UK
13.Raver

관련 영상

Burial “Archangel”

관련 사이트
MySpace에 있는 Hyperdub 레이블 페이지
http://www.myspace.com/hyperd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