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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Gainsbourg – 5:55 – Atlantic/워너뮤직, 2006

 

 

부모의 후광을 이용한 영리한 딸의 앨범

1980년대 세대에게는 샬롯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는 영화 [L’Effrontée(귀여운 반항아)]에 나온 예쁜 소녀이자, 주책 맞은 아버지(세르주 갱스부르, Serge Gainsbourg) 손에 이끌려 “Lemon Incest(레몬의 근친 상간)”, “Charlotte Forever(샬롯 포에버)” 같은 민망한 노래를 부른, 보호받지 못한 미성년 가수로 기억이 될 것이다. 최근 그를 영화배우로 인식하는 이들이라면 [21그램]이나 [수면의 과학] 같은 영화에 나온 지적인 영화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그런 그가 첫 앨범 [Charlotte Forever] 이후 20년 만에 새 앨범 [5:55](2006)를 발표하였다. 그는 영화배우로서는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같은 국경을 초월하여 실력있는 영화감독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번 앨범에 참가한 아티스트의 리스트는 놀랍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앨범을 프로듀싱하였던 나이젤 갓리치(Nigel Godrich)가 앨범 프로듀싱을 하였고, 가장 프랑스적인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는 에어(Air)가 피아노와 오르간 및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담당하였으며, 디바인 코미디(Divine Comedy)의 보컬 닐 해넌(Neil Hannon)과 펄프(Pulp)의 보컬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가 가사를 썼다.

이런 독특한 구성의 드림팀이 모여서 만들어낸 앨범은 재미있게도, 혹은 예상 가능하게도 샬롯 갱스부르의 부모인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Jane Birkin)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 같은 모양의 결과물로 나왔다. 1970~8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한 세르주 갱스부르는 그의 괴짜 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하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정신과 그의 음악들에 스며있는 독특한 개성으로 사후인 현재까지도 영미 팝에 큰 영향을 끼치는 프렌치 팝의 대부로 남아있다. 샬롯 갱스부르의 모친인 제인 버킨은 영국 출신의 배우이자 가수로, 현재 롤리타 보컬의 원조로 기록되며 세르주 갱스부르의 대표적인 페르소나였다. 그들이 듀엣으로 부른 “Je T’Aime Moi Non Plus”(1969년)는 신음하는 듯한 제인 버킨의 발성과 곡의 야릇한 분위기 때문에 프랑스 이외의 여러 나라에서는, ‘노래로 만든 포르노’라는 혐의로 발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 앨범을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헌정 앨범이라고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록곡들 중 많은 곡들이 피아노가 이끄는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고, 샬롯 갱스부르의 발성법은 제인 버킨와 매우 흡사하며, 에로틱하고 자극적인 가사들을 보고 있자면 갱스부르 & 버킨이 30초에 한번씩 머리 속에 떠오른다. 갱스부르 & 버킨을 재구성한다면 그들의 DNA를 물려받은 샬롯 갱스부르만큼 뛰어난 적격자가 없으며 샬롯 갱스부르 역시 자신에게 드리워진 후광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AF607105″로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항공기의 기체 번호이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생전에 부른 “Aeroplane”의 답가와도 같은 이 곡은 기내 방송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유혹하는 듯한 샬롯 갱스부르의 목소리와 에어의 신써사이저 소리가 잘 결합된 곡이다. “Operation”은 리듬 머신과 베이스 기타 소리가 곡을 이끌어서 수록곡 중에서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곡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편곡이 아니라 가학적인 가사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만지며 “나는 당신을 깊숙이 느끼고 있어요”라고 읊조리는 샬롯 갱스부르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사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면에선 분명히 갱스부르 & 버킨과 노선을 같이 한다. 하지만 가사에서 느껴지는 당돌하고 공격적인 성향은 샬롯 갱스부르와, 순진하고 백치미가 느껴지는 제인 버킨과 의 차이점을 확실히 드러낸다. 영어로 불려진 “Beauty Mark”와 “Morning Song”은 굳이 언어 때문이 아니라 멜로디나 곡의 전개에 있어서 영국적인 색을 보여주는 곡으로, 자비스 코커와 닐 해넌의 손길이 느껴진다. 드럼 머신으로 시작하는 “Little Monster”는 마치 라디오헤드의 “There There”처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에어의 분위기로 끝나는데, 나이젤 갓리치, 에어, 닐 해넌, 자비스 코커가 이 앨범을 만들 때 어떤 스타일로 협업을 했는지 상상하게끔 만드는 곡이다. 닐 해넌과 자비스 코커가 가사를 쓰고, 에어가 멜로디를 붙인 후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신서싸이저 소리를 입히면, 나이젤 갓리치가 소리를 압축시키고 미니멀하게 다듬는 것 말이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이런 짜임새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도 이 앨범에 대한 호평의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샬롯 갱스부르 자기 자신이다. 이 앨범을 끝까지 들으면서 다소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노래 한 곡 한 곡, 감정이 지나치게 실려있다. 샬롯 갱스부르의 본업이 영화 배우라서 그런지, 아니면 프렌치 팝은 원래 그렇게 불러야 제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앨범을 들으면서 내내 후버포닉(Hooverphonic)이나 라이카(Laika) 같은 트립합 분위기의 일렉트로니카를 듣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1990년대 후반 일렉트로니카 디바들이 창법이나 이미지를 마녀나 요정처럼 신비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앨범에서 샬롯 갱스부르의 이미지도 그러하다. 오늘날 여성 팝/록 아티스트들의 이미지가 뚜렷하고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느낌도 준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샬롯 갱스부르는 뷰욕(Bjork)과 피오나 애플(Fiona Apple) 이후로 보기 힘들었던, 장르에 함몰되지 않는 여성 아티스트의 자의식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의 참여는 프랑스를 뛰어넘는 이슈와 완성도의 앨범을 만들어 내었고, 동시대의 어떤 앨범과도 뚜렷이 구분되는 강한 개성을 부여했다. 20070301 | 이정남 yaaah@dreamwiz.com

7/10

수록곡
1.5:55
2.AF607105
3.The Operation
4.Tel Que Tu Es
5.The Songs That We Sing
6.Beauty Mark
7.Little Monster
8.Jamais
9.Night – Time Intermission
10.Everything I can not see
11.Morning Song

관련 영상

“The Songs That We Sing”

관련 사이트
샬롯 갱스부르 공식 홈페이지
http://www.charlottegainsbourg.fr/en/mai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