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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lake – The Trials of Van Occupanther – Bella Union, 2006

 

 

곱게 밟히는 낙엽

‘나는 작곡을 하기 전에 몇 번이고 내가 작곡하려는 음악의 주위를 맴돈다.’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가 한 말이다. 이 문장은 작곡에 관한 일견의 방법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좀 더 은유적으로 읽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나는 작곡을 함에 있어 애초에 그려놓은 내 상상 속 음악의 주변을 맴돌며 어떻게든 그것을 똑같이 모사해내려 애쓴다’ 정도로.

미들레이크(Midlake)의 두 번째 앨범 [The Trials of Van Occupanther](2006)를 듣고 위와 같은 문구를 떠올린 이유는 이 음반이 사티의 몇몇 혁신적 산물과 유사해서도 아니고, 이들이 바람직한(?) 인디록 음악에 근접했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단지 나는 이 느슨한 컨셉의 연작(聯作) 앨범이 근래 영미권의 밴드들에게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구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왠지 이 음반은, 밴드가 미리 스케치해놓은 이상적인 음악상의 주변부에 11개의 각 수록곡들이 오밀조밀 들러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다시 말해, ‘외향적 실험성’보다는 ‘내부적 완성도’에서 두각을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앨범의 수록곡들은 곡조 상으로 하나의 큼지막한 어떠한 경향 아래 서로서로 닮아있으며, 각각의 곡들 자체는 개별적으로 밀도 높은 창의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때때로 청자로 하여금 이들의 멜로디와 에너지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팀 내 작사, 작곡을 도맡아 하는 팀 스미스(tim smith, 보컬/기타)를 주축으로 멕켄지 스미스(mckenzie smith, 드럼), 폴 알렉산더(paul alexander, 베이스/건반), 에릭 니켈슨(eric nichelson, 기타), 에릭 풀리도(eric pulido, 기타/건반)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미들레이크는, 1999년 북 텍사스 음악원 재학 시절 재즈를 함께 공부했던 교내 친구들로 결성되었다. 사실 이들의 전작이자 메이저 데뷔작인 [Bamnan And Slivercork](2004)은 ‘미국판 라디오헤디즘’의 변형적 기수이기도 했던 그랜대디(Grandaddy)의 아류작이라 불려도 무방할 만큼 ‘재미없는’ 음반이었다. 가정집에서 드럼 모듈과 무그 신서사이저를 사용해 크레용으로 색칠하듯 연주한 복고 사운드는, 그다지 독자적인 색감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진중한 인디록 팬덤으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미들레이크는 자신들을 꾸준히 믿고 후원해준 영국 레이블 벨라 유니온(Bella Union)의 도움으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두 번째 앨범을 완성시켰다. 기타와 피아노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이들의 풍성한 연주는 마치 다섯 명의 멤버가 동시에 가지각색의 낙엽들을 바사삭 밟아가듯, 건조하지만 선명한 소리의 광경을 연출해낸다. 더욱이 팀 스미스의 부드러운 음색이 깃든 보컬 선율과 그를 충실히 따르는 몇 겹의 화음 파트는 이 음반의 주요 전략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치 인상적이다. 특히 바로 이 점 때문에 대부분의 곡들은 차분한 전개 속에서도 강한 생기를 발하고, 이는 첫 트랙 “Roscoe”가 선보이는 이미지에서부터 어렵잖게 확인된다.

“Roscoe”가 단음계의 화성과 소극적인 기타 스트로크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상당량의 낙관적 기운을 내비칠 수 있는 비결 역시, 앞서 말한 보컬 및 배킹 보컬의 화사한 선율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이어지는 포크팝 넘버 “Bandits”의 경우에도, 앨범 내 가장 정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Van Occupanther”에도, 그 외 모든 트랙들에도 무난히 적용된다. 한편 수록곡 중 유난히 부드러운 멜로디와 감수성을 드러내는 “Young Bride”는 느긋이 울리는 바이올린 및 신서사이저의 가락과 쿵치쿵치 리듬의 업템포 드럼이 절묘하게 만나는 록오페라이고, 여전히 라디오헤드의 직접적 영향 하에 있음을 인정하는 “Branches”의 경우엔 특별히 돌출된 훅이나 간주 없이도 중저음역대의 프렌치 호른과 피아노 연주를 곁들여 씹을수록 우러나는 구수함을 선보인다.

앨범 제목(The Trials of Van Occupanther)이 내비치고 있는 노랫말들의 느슨한 줄거리에 귀기울여보는 것도 일말의 재미를 얻는 방법일지 모르겠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가사 속의 1인칭 화자인 밴 아큐팬더(Van Occupanther)는 삶과 사랑에 있어 갖은 시련(trials)을 겪게 되는 19세기의 부랑인이다. 그는 도적떼에게 집을 빼앗기고(“Bandits”)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수 없음에 낙담하며(“Branches”) 눈 속을 헤매며 추위, 굶주림과 싸우기도 하고(“It Covers The Hillsides”) 그녀의 부재에 비통해 한다(“You Never Arrived”). 유독 빛나는 글귀가 돋보이는 서사시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컨셉을 가진 ‘노랫말 이야기’도 음반에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얼마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이 음반을 통해 황량하고도 로맨틱한 양가적 감정을 즐거이 경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최대의 소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음반이 폴리포닉 스프리(The Polyphonic Spree)나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선율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다가왔다면 그것은 ‘아쉬운 감상’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The Trials of Van Occupanther]는 어찌 됐든, 곱게 밟히는 낙엽들처럼 듣기 좋은 멜로디 그 자체로 매혹적인 팝음반이다. 물론 듣는 이를 쉽게 현혹시킬 음악은 갓 만든 달고나가 입에서 녹아 없어지듯 쉽게 싫증나버리기 일쑤지만, 이처럼 고밀도ㆍ고당도의 음반이 이따금 절실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한동안 ‘멜로디의 고운 맛’을 경시하고 지내던 자신에게 어느 날 문득 그에 대한 갈증이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20061211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8/10

수록곡
1. Roscoe
2. Bandits
3. Head Home
4. Van Occupanther
5. Young Bride
6. Branches
7. In This Camp
8. We Gathered In Spring
9. It Covers The Hillside
10. Chasing After Deer
11. You Never Ar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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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ade Fire [Funeral] 리뷰 – vol.6/no.24 [20041216]

관련 사이트
Midlake 공식 사이트
http://midlak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