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3061441-0821-jaurim자우림 – Ashes To Ashes – T―Entertainment, 2006

 

 

재(災)의 성(城)

비평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비평이 자신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하게 하는 음반을 들으며 그래도 소임 비슷한 걸 하려고 할 때 생긴다. 즉 자신이 ‘리뷰’를 쓰고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뭔가 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을 느낄 때, 자신을 ‘비평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따라서 이것은 즐거운 기분으로 쓰는 글이 아니다. 따라서 쓰지 않고 그냥 넘어가도 별 상관은 없지만 그럼에도 넘어가기 싫은 까닭은, 자우림의 여섯 번째 음반 [Ashes To Ashes]에 달라붙은 ‘고급스런 대중음악’의 악령들에 대해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관성, 우울함, 고급스러움, 자연스러움, 소통 불가능성, 등등의 이름으로 음반 주위에 붙은 악령들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끝으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 밴드에 대해 [weiv]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사과와 딸기와 석류를 줄세운 뒤 그것들에 시커먼 타르를 덮어씌우고 나서 ‘나는 이 과일들에 일관성과 우울함을 부여했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이 [Ashes To Ashes]다. 과일들이 고급스러운 것은 그것들이 모두 까맣기 때문이고, 자연스러운 것도 그것들이 모두 까맣기 때문이며, 소통 불가능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도 그것들이 모두 까맣기 때문이다. ‘비평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일관성과 밋밋함을 혼동한 음반이며, 비대중성과 예술성이 똑같다고 착각하는 음반이다. 그러고 나서 자신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만들었다고 (적어도 마케팅 팀은) 주장하고, 멤버들은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말러(Gustav Mahler)의 음악과 자신들의 음악을 비교한다([경향신문] 2006.10.19). 이 글의 필자도 워렌 버핏(Warren Buffett)도 화장실에 가니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이고 따라서 버핏의 돈은 모두 내 것이라는 주장과 비슷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벌써 여섯 번째 음반을 냈고, 그 음반들 거의 모두에 대해, 그리고 김윤아의 솔로 음반에 대해서까지 모두 다루었으면서도 이들에 대해 뭔가 말할 것이 남아 있다고 이 글의 필자가 느끼는 것은 그것들이 여전히 ‘고급스럽고 뭔가 있는’ 무언가로 취급받고 있다는 까닭밖에는 없다. 그렇게 된 데에 뭔가 이유는 있겠지만 이 글의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들은 입 밖에 내기에는 너무 진부한 것들이다.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으로 족하려 한다.

그러나 음반에 대한 평가는 상상에만 맡길 수 없다. 김윤아의 귀곡성 같은 스캣과 단조로운 베이스 라인, 학교 운동장에서 길을 잃고 교실로 못 들어가는 것처럼 헤매는 블루스 기타 솔로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Shine On You Crazy Diamond”라도 되는 듯이 7분 30초를 채우는 “Beautiful Girl” 같은 곡을 들으면서 몰입과 지루함을 구분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밝고 어두운’ 거라지 로큰롤인 “Good Boy” 같은 곡들을 들으면서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는 없다. 음반의 타이틀이자 빈티지 전자음을 정말로 ‘싼티나게’ 사용한 “You And Me”를 비롯하여 악몽 속에서 발이 땅에 빠졌을 때 느끼는 것 같은 질척거림으로 시종하는 “Seoul Blues”와 “Jester Song”을 포함한 음반의 다른 곡에 대한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윤아의 창법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것처럼 들리며(특히 “Loving Memory”, “죽은 자들의 무도회”), (트립합이 아니라) 포티스헤드(Portishead)의 텍스처를 도입한 것 같은 “Over And Over Again I Think Of You”의 팔세토와 영어발음은 부담스럽다.

다시 한 번 비평가처럼 말하면, 음악적인 측면에서 자우림은 ‘실재’라기보다는 ‘시뮬라크르’다. 순정만화 스타일의 비극적 세계관, 홍대 앞 인디의 냉소적 참신함,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가 일본 대중문화의 향취를 촉매로 하여 적절한 비중으로 혼합된 결과물이 밴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반이다. 이것들은 밴드의 성공을 시기할 이유가 없음을 증명하는 음반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좋은 음반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음반부터 자우림은 자신들이 차용한 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고, 결과는 다른 것을 (좋은 말로 해서) 차용한 꼴라주 아니면 김윤아의 대중적 인지도에 기댄 심심한 결과물들이었다(여기에는 ‘원고지 500장 독점 수기’ 같은 김윤아의 솔로 음반 두 장과 초코크림롤스의 실패한 데뷔 음반도 포함된다). 그 중에 좋은 곡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반 이후 모두 합쳐 음반 일곱 장을 낸 밴드에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 들었을 때는 좋았던 곡이 몇 곡 있다’고 말하는 것이 칭찬일까.

이번 경우 특히, 밴드는 음악보다 말이 앞서는 것 같다. 밴드는 자신들의 창작의도를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밴드의 결과물은 그 의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의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 인터넷과 신문에 퍼져 있는 자우림의 음악에 대한 주류 언론의 호의적인 평가는 자우림의 음악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우림의 음악에 대한 자우림 멤버들의 호의적인 평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다. 그리고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주류 언론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시뮬라크르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표피적으로 흘러가는 세상을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밴드의 의도([조선일보], 2006.11.8)는 시뮬라크르가 되어 버린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평가처럼 들린다.

밴드의 실질적 리더가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이처럼 우울한 음반을 낸 것이 ‘예술의 세계는 현실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중학교 문예반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 거라는 사실은 밴드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긴 하겠지만, 어쨌든 중학교 문예반 학생이나 자우림이나 결과로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밴드는 현실의 조건을 맞추는 것이 ‘세속적이고 대중에 영합하는 짓’이며 ‘따라서 그런 짓에는 관심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음반을 들어보면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재로 돌아가 봤자(ashes to ashes), 누군가 후 하고 한 번 불면 끝이다. 그게 잿더미고, 그게 [Ashes To Ashes]다. 2006111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2/10

수록곡
1. Seoul Blues
2. Loving Memory
3. Jester Song
4. You And Me
5. Summer Slumber
6. 죽은 자들의 무도회
7. Beautiful Girl
8. Over And Over Again I Think Of You
9. 6월 이야기
10. 위로
11. Old Man
12. Blue Devils
13. Good Boy
14. Oh, Mama!
15. 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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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자우림 공식 사이트
http://www.jaurim.com/

[매거진 T]에 실린 자우림 인터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13002001&article_id=42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