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e Springsteen – We Shall Overcome: The Seeger Sessions – Columbia, 2006 가벼운 다시 부르기의 힘 여느 장르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포크음악 또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밥 딜런(Bob Dylan)이 전기 기타를 들기 이전의 존 바에즈(Joan Baez)와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뿐 아니라 도노반(Donovan)이나 닉 드레이크(Nick Drake) 류의 브리티시 포크, 닐 영(Neil Young)과 팀 버클리(Tim Buckley)의 포크-록(folk-rock), 빌리 브랙(Billy Bragg)과 베쓰 오튼(Beth Orton)을 비롯해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서프잔 스티븐스(Sufjan Stevens),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수잔 베가(Suzanne Vega) 식의 숱한 혼합 버전들, 그리고 펑크(punk)의 영향을 받은 안티-포크(anti-folk) 계열까지. 하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공통분모에서 우리는 포크(folk)의 속성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까? ‘어쿠스틱 스트링 음색의 도드라짐’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우린 과연 포크로서의 유별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첫 커버 앨범 [We Shall Overcome: The Seeger Sessions](2006)는 적어도 그러한 공통기반을 찾기 위한 물음과 그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소품집이다. 무엇보다 스프링스틴은 모던 포크의 시발점이었던 한 인물, 좀 더 정확하게는 피트 시거(Pete Seeger)에 대한 회상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음반은 ‘미국 포크의 살아있는 대부’로 추앙받는 피트 시거가 불렀던 곡들을 스프링스틴과 십여 명의 악단이 재해석하여 녹음한 작품이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이 ‘어깨에 힘을 뺀 다시 부르기’가 될 수 있을지 적잖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음반 참여자들의 창조적이고 가벼운 합주 스타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스프링스틴의 탁한 목청과 피크를 쥔 엄지와 검지 모두가 쾌활하게 진동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꼼꼼한 믹싱 작업을 통해 다양한 악기들 고유의 성질이 그대로 살아난다. 밴조(banjo)의 몸통을 두들겨 내는 소리, 하모니카의 연음, 부기우기 피아노의 리듬감 등 꽤나 소박하면서도 명료한 음향들은 듣는 이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어쿠스틱 현악기들의 단출한 스트로크와 핑거링만으로도 대부분의 곡들이 방방 들뜨고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다. 허나 한 구석에는 약간의 모순도 보인다. 아무래도 피트 시거가 주창한 포크음악 본연의 미덕이란 ‘누구나 쉽게 듣고 부를 수 있는’ 측면이 강할진대, 이 음반에서 커버된 곡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테크닉과 연주로 구현돼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음반 속의 구수한 협연 뒤에는 고도의 연주 기량이 은근히 자리하고 있고, 이 점은 피트 시거가 추구했던 바와는 어긋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음반이 단순히 옛 것을 번지르르하게 조형한 박제품인 것만도 아니라는 점 역시 앞의 고민에 일정 부분 답한다. 비록 남부 재즈 악단의 풍부한 밴드 음악처럼 스프링스틴의 다시 부르기가 한껏 치장되고 있다고는 해도, ‘피트 시거 다시 부르기’라는 컨셉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은 딱히 피트 시거의 모창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컨트리 포크의 향취가 잘 전해진다는 점이다. 첫 곡 “Old Dan Tucker”의 흥겨움은 이 음반의 응집체라 할 만하다. 이 곡은 굳이 ‘옛것의 각색’이라는 염두를 거치지 않더라도 누구든 흡수 가능할 대중적 트랙으로 다가온다. 뮤트(mute) 처리된 포크 기타 4마디 추임새와 함께 밴조의 아르페지오가 16마디 동안 발을 구르며 흥을 돋우고, 이윽고 밴드의 꽉 찬 연주가 춤을 춘다. 파티의 시작, 아마도 이 말이 본 음반으로부터 일차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 특징인지도 모른다. 기타와 밴조, 바이올린과 오르간, 그리고 각종 관악기들로 구성된 반주팀의 적절한 편제 속에서 수십 년 전 피트 시거가 수집해 불렀던 곡들은 이렇게 재탄생하고 있다. 피트 시거의 음악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청자라 할지라도 즐거이 이 음반을 대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프링스틴 밴드는 작자 미상의 전통 포크곡들을 ‘파격적으로’ 편곡하고 있다. 때로는 “Mrs. Magrath”처럼 섞임 박자를 가미하여 한결 여유 있고 세련된 곡조를, 때론 “Jacob’s Ladder”와 같이 전형적인 컨트리 음악의 전개 양식 속에 진부한 재즈 패턴의 브라스 연주를 녹여 유행적 선율을 만들어낸다. 나아가 유독 모든 악기 파트들이 한바탕 질펀하게 노는데 주저 않는 “John Henry”에서는 신식 밴조와 아코디언이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의 리듬감에 의지하여 왁자지껄 신명을 부린다. 특히 이 곡에서 짬짬이 개입하는 바이올린 독주는 별미다. 한편 바이올린의 연주가 악곡의 테마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O Mary Don’t You Weep”이나 피트 시거의 흉내를 잔뜩 내며 부르는 1960년대 대표적 민중가요 “We Shall Overcome” 역시 이 앨범의 베스트라 할 만하다. 피트 시거가 다소 건조하고 서늘한 기운으로 깊은 전통의 맛을 우려낸 장인이라면, 이 음반에서 스프링스틴은 혈기왕성한 열정과 수완으로 미국적 전통을 다양하게 배양하는 록큰롤의 명인이다. 때문에 혹자는 마치 후기 밥 딜런처럼 지저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번 세션 커버 앨범을 얼마간 생소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Nebraska](1982)나 [Born in the U.S.A](1984)에서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되새기기 위해 이 음반을 재생시킬 사람이 드물 것처럼 피트 시거의 모창을 듣기 위해 이 음반을 감상할 사람도 많진 않을 것이다. 설혹 누군가는 생기가 지나칠 정도로 넘쳐흐르는 스프링스틴의 이 곡들과 피트 시거의 옛 곡들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강물이 흐르는 것을 목격할지 모른다. 허나 앞서 말했듯, 스프링스틴의 피트 시거에 대한 회상은 소박한 욕심과 힘을 뺀 자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바로 그 점은 듣는 이에게 청취의 부담감을 몇 숟갈 덜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61027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8/10 수록곡 1. Old Dan Tucker 2. Jesse James 3. Mrs. McGrath 4. O Mary Don’t You Weep 5. John Henry 6. Erie Canal 7. Jacob’s Ladder 8. My Oklahoma Home 9. Eyes On the Prize 10. Shenandoah 11. Pay Me My Money Down 12. We Shall Overcome 13. Froggie Went A Courtin’ 14. Buffalo Gals 15. How Can I Keep From Singing 관련 글 Bruce Springsteen [The Rising] 리뷰 – vol.4/no.18 [20020916] 관련 사이트 Bruce Springsteen 공식 사이트 http://www.brucespringste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