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어(Cocore) – Fire, Dance With Me – CJ Music, 2006 어딘지 근사한 곳으로 언젠가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직장 생활을 하는 건 길어야 3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까지 3년을 꽉 채운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뒤로 나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게 생겼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그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부터 오는 아우라가 존재하는 법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래된 밴드, 오래된 음악가의 음악이 좋은 법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투자한 시간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코코어가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홍대 앞 인디 씬이라고 불리던(과거형이다, 이에 대한 부연은 아쉽지만 나중으로 미루자) 음악 씬에서 로컬 밴드로 자리 잡은 코코어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성장해 온 밴드다. 2003년에 발매된 3집 [Super Star]의 완성도는 그 해 발매된 국내 음반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으며, 코코어를 반드시 주목해야할 밴드 중 하나로 만들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코코어는 아무밴드와 함께 199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앞 인디 씬에 등장한 밴드들 중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밴드들 중에 하나였다. 이들의 록 밴드로서의 자의식은 얼터너티브, 포크, 사이키델릭, 하드록, 신스팝 등의 감수성을 업고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었음에도 폭넓은 대중적 지지로부터 고립된 감이 있다. 이들이 대중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이유는 이들의 음악이 시대를 앞서나가거나 시대의 감수성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록)음악의 소비 성향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변화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이들이 축적한 사운드의 지층은 고생대의 것처럼 견고하고 단단하다. 2006년 8월에 발매된 4번째 정규 앨범 [Fire, Dance With Me]의 사운드는 하드록과 사이키델릭, 로커빌리와 슈게이징을 오가는 다소 복잡한 층을 선보이는 앨범이다. 다양한 만큼 자칫 중심을 잃고 난삽함 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가득한 컨셉트다. 물론 코코어가 이 아슬아슬함을 비교적 잘 피해가고 있다는 것은 다소 낭만적인 해석일지 모른다. 개별 곡들의 완성도는 수준 이상이지만 그 곡들이 연결되는 지점은 다소 거칠기도 하고 꽤 이질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운드의 총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안정적이다. 1장과 2장, [pm]과 [am]으로 나눠진 2장짜리 앨범의 완성도가 한 밴드의 4번째 정규앨범이라는 무게만큼 정돈되어 있다는 의미다. 얼터너티브, 하드록의 방법론에 대한 모방에 머물렀던 1집과 사이키델릭-포크로 방향을 틀었던 1.5집, 그리고 댄서블한 전자음을 시도했던 2집과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록 사운드를 선보였던 3집 이후 3년 만에 발매된 이 음반은 코코어의 현재 관심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pm]의 첫 곡 “Siesta(Golden Wave)”가 여는 것은 에스닉한 사운드가 혼란스럽게 펼쳐지는 만화경이다. 시타르의 반복되는 선율 속에 전기 기타와 드러밍, 건반의 연주가 엇갈리며 진행되는 이 곡은 코코어가 틈틈이 적용했던 사이키델릭의 관심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어지는 “너뿐이야”는 초기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섞어놓은 듯 로커빌리, 혹은 비트 뮤직의 방법론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와중에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등장하는 곡이다. 이런 식의 사운드의 활용은 “붉은 꽃”, “Moon Patrol”로 이어지며 “여름밤의 꿈”, “Alien”, “Blank Out ‘널 요리하고 싶어'”와 “그대, 기쁨과 행운”에 이르러 실험적인 사운드의 퍼포먼스에까지 다다른다. 두 번째 음반인 [am]은 첫 번째 음반인 [pm]의 사운드를 조금씩 변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치광이 삐에로”는 뉴웨이브 사운드를 빌려 전자 비트의 그루브를 재현하고 있으며 “New Town”은 포크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도시적 감수성을 멜랑콜리하게 펼쳐 보인다. 게다가 “그리고 얼마나”의 로파이 사운드, “Day”의 나긋나긋한 사이키델릭, “방랑자”의 어쿠스틱 사운드 등은 이들의 포지션이 어디에서 어디로 뻗어나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앨범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어떤 지점에 이르러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레드 재플린과 더 밴드 같은 올드 록 밴드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 특히 “너 뿐이야”와 “그리고 얼마나”는 그 자체로 1960년대 록 사운드에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Fire, Dance With Me]는 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성실하게 채우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동안 코코어(혹은 이우성)의 작업들을 총정리한다는 느낌도 준다. 앨범을 통틀어 간간이 시도되던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이우성의 개인 프로젝트 싸지타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냈던 통기타 음악(not 포크)에 뉴웨이브와 펑크, 랩 음악의 방법론이 더해진 것이 바로 [Fire, Dance With Me]다. 물론 이 앨범의 제목은 댄스 음반에 대한 클리셰다. 하지만 그래서 ‘댄스 음반에 대한 역설’로 이해된다. 난삽할 정도로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운드 속에 숨어있는 리드미컬한 멜로디는 흥겨울만하면 뒤집어지고 익숙해질 것 같을 때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꽤 난해하지만 매력적인 음반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것은 나쁘지 않다. 여전히 코코어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비록 그것이 느리고 더딘 걸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마침내 어디든지 제법 근사한 곳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60916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pm 1. Siesta (Golden Wave) 2. 너뿐이야 3. 붉은 꽃 4. Moon Patrol 5. 여름 밤의 꿈 6. Alien 7. Blank Out ‘널 요리하고 싶어’ 8. 그대,기쁨과 행운 9. 밤하늘 am 1. Siesta (Rainy Day) 2. 미치광이 삐에로 3. New Town 4. 그리고 얼마나 5. Days 6. 방랑자 7. 能古島 (Rokono Island) 8. Air 9. 1990 10. 맑은 오후 앉아 11. Fire Dance With Me 관련 글 코코어 [Super Stars] 리뷰 – vol.5/no.3 [20030201] 코코어 [Boyish] 리뷰 – vol.2/no.24 [20001216] 코코어 [고엽제(EP)] 리뷰 – vol.1/no.2 [19990901] 배리어스 아티스트 [Open the Door] 리뷰- vol.1/no.1 [19990816] 관련 사이트 코코어 공식 사이트 http://www.coc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