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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카프릭 부스터(Funkafric Booster) – One – 타일뮤직, 2006

 

 

같은 얼굴, 다른 표정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한국 음악팬들에게 가장 ‘진정한(authentic)’ 음악은 흑인음악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한 음악’을 원초적이며, 자연발생적 혹은 즉흥적이고, 공동체적 의식을 유지·함양하면서도 산업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것처럼 들리는) 음악으로 설명하는 오래된 관점에 따른다면, 음악의 수용과 평가에서 ‘소울(soul)’의 가치를 유달리 중시하는 흑인음악의 광범위한 스타일들 ― 블루스, 재즈, 훵크, 소울, 레게, 아프로비트, 등등 ― 은 로큰롤의 팬들이 비웃거나 절망하며 버린 ‘진정함(authenticity)’을 아직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진정함을 품고 사는 게 늘 행복할 리는 없다. 강력한 팬을 갖고 있는 음악 스타일들이 종종 그렇듯, 신실함과 완고함, 공동체적 즐거움과 타 집단에 대한 배척, 투박한 음악과 집요하게 거부하는 (그런데 무엇을?) 음악, 정통에 대한 향수어린 존경과 권위적인 오만함은 같은 얼굴이 짓는 다른 표정인 것이다. 그래서 ‘정통’ 흑인음악에 대한 야심을 갖고 있는 ‘비(非)흑인’은 늘 자신이 있는 위치를 끊임없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어쩌면 싫어도 그래야 하는 것인지도). 보통 네다섯 문단 정도 하는 [weiv] 리뷰에서 서론만 벌써 두 문단인데, 어쩌면 사실 이것만으로도 펑카프릭 부스터(Funkafric Booster)에 대해 할 말은 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몬드 B3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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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펑카프릭 부스터의 음반을 들었을 때, 나로서는 밴드가 이른바 ‘진정한 흑인음악’의 작법들을 과도하게 내재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말하면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이 부딪혔던 문제, 즉 ‘왜 하고 많은 본토의 ‘훵크 마스터’들을 놔두고 당신들이 만든 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아소토 유니온보다 더욱) ‘외고집스러운’ 대답으로 들렸던 것이다. 전곡을 원 테이크 방식으로 녹음한 것에 대한 리더 임지훈의 대답(자세한 것은 [리드머(Rhythmer)]에 실린 펑카프릭 부스터의 인터뷰를 참고하기 바란다)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약간 흐릿하고 까칠하게 닦아놓은 ‘사운드의 마당’에서 노니는 둔탁하고 느긋한 훵크-레게-아프리칸 비트들이 주는 ‘면전의 생생함(in-your-face)’ 또한 지나친 ‘정통 추구’의 전략에서 나온 결과물 같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는 결국 같은 얼굴이 갖는 다른 표정이다. 만약 당신이 펑카프릭 부스터의 음악이 마음에 드는 순간, 위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한 모든 것은 다시없는 장점으로 변한다. 즉 ‘소울’이 있는 멋진 훵크 음반이 된다. ‘소울’이 뭐냐고 내게 묻는다면 ‘끝까지 듣고 나서 다시 듣게 만드는 힘’이라고 대답하겠다. 깨작거리며 잽을 날리는 기타와 휘청거리는 퍼커션, 무뚝뚝한 베이스가 싸이키델릭한 그루브를 만드는 동안 그 틈새로 오르간과 색서폰이 뒤엉키는 “Dancer 순이”나 밴드의 앙상블이 두드러지는 “가마우지”, 오르간의 활약이 빛나는 “속이 꽉찬 남자” 같은 곡들은 결국 듣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인내심이 부족해서인지 “Ali”는 좀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음반에 있는 두 곡의 커버, “African Battle”과 “Juice Box”도 마누 디방고(Manu Dibango)와 재키 미투(Jackie Mittoo)의 원곡에 비해 특별히 꿀릴 구석은 없다(개인적으로는 Juice Box”의 커버 버전이 더 좋다. “African Battle”은 히든 트랙으로 실린 데모 버전이 더 활기차다).

펑카프릭 부스터의 데뷔작은 나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분명한 음반이다. 공연에서는 그 장점이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멤버 본인들도 알고 있듯, 결국 밴드의 과제는 ‘전통’과 ‘개성’ 사이에서 분명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일 테고, 전통이 주는 ‘압박’이 상대적으로 강한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밴드가 자기 색깔을 만들기 위해 겪을 어려움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온 소리를 듣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좋은 훵크 음반 한 장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팔리아먼트(Parliament)의 [Gold: The Best Of] 대신 펑카프릭 부스터의 신작을 기꺼이 언급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다. 20060824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African Battle
2. 속이 꽉 찬 남자
3. Ali
4. 가마우지
5. Dancer 순이
6. 평화다방
7. Juice Box
8. 울지마 형
9. 평화다방 (Alt.)

관련 글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 [Sound Renovates A Structure] 리뷰 – vol.6/no.4 [20040216]

관련 사이트
펑카프릭 부스터 공식 사이트
http://www.funkafric.com/

타일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ty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