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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 – Radio Dayz – Happy Robot/CJ Music, 2006

 

 

상실이 가져다준 여유

흑백 사진의 음반 커버에 눈길이 잠시 머문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환영받는 세상도 아닐 뿐더러 자칫 X폼 잡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 소위 ‘흡연 컨셉’이지만, 밝은 톤의 무채색 필터를 통해 그윽이 담겨진 이지형의 모습은 그다지 ‘구리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더구나 그러한 앨범 자켓의 이미지가 5년 전 해체한 이지형의 밴드 위퍼(Weeper)와의 음악적 결별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측면에선 더욱 그렇다. 위퍼의 음악은 평범한 편이었다. 그로부터 적잖은 세월이 흐른 2006년, 이번에는 어떨까. 적어도 그의 새로운 산물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만큼은 지난날 위퍼의 히트곡들을 빌어 이렇게 말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 상실의 시대는 끝났어요, 이제는 I’m OK.

사실 수록곡들의 분위기는 커버 사진의 그것보다 한결 화사하다. 타이틀곡 “Radio Dayz”를 비롯한 “푸른 자전거”와 “Baby Baby” 식의 활달한 기타팝 넘버들은 오렌지빛으로 물든 도심지의 저녁 햇살을 닮았고, “Love Paisley Love”나 “눈이 마주친 하늘”처럼 비교적 차분한 템포의 트랙들에서는 선선한 초여름날의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들은 무난히도 위퍼의 정규 1집 [Weeper](2001)를 좀 더 먼 기억의 저편으로 송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지형의 이번 솔로 앨범은, 주로 메이저 코드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전개를 기반으로 어쿠스틱 기타의 쾌활한 스트로크와 전자음의 소극적 활용을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예전에 들려주던 걸걸한 기타 디스토션이나 리프 중심의 악곡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는 ‘깔끔’을 넘어 ‘깨끗’하기까지 한 느낌을 자아내는 편곡과 믹싱이 (어떨 때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반한 질감으로 또렷이 드러나기도 한다.

가장 큰 변화의 지점은, 우선 이 음반을 두어 번 돌린 직후 나도 모르게 국외의 두어 뮤지션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 연유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Radio Dayz]의 지배적 스타일은, 일차적으로 국내 모던록 성향과 큰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한편으론 영국의 인디팝 밴드 부 래들리스(The Boo Radleys) 혹은 싱어송라이터 데이빗 그레이(David Gray) 류의 포크팝에 상당한 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포크록의 ‘새물결’ 데이빗 그레이와의 연관성은 이지형의 새 음반과 관련해 꽤나 짙어 보인다. [Radio Dayz]에서 나타나는 악기의 활용 방법 및 전자음의 사용 방식은 ‘세련된 첨단(?) 포크팝의 세계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정도가 될 그레이 식의 음악적 캐치프레이즈에서 어느 정도 영향 받은 것으로 느껴진다.

가령 “몽상가들”에서의 ‘떨리는(trembling)’ 기타 이펙트라든가 “Running Man”에서 사각거리는 통기타의 피킹 연주가 부각시키는 분위기, “Nobody Likes Me”에서의 언플러그드 반주 위로 이따금씩 흩날리는 전자 비트,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단면들을 왜곡 없는 맑은 창법으로 혼합시키는 이지형의 보컬은 그러한 추측을 더욱 확고히 한다. 반면, 위퍼를 떠올리게끔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몇몇 곡에서 돋보이는 심플 코드의 자태도 나름의 맛이 있다. “푸른 자전거”는 투 코드의 청량한 스트링 리프로 발랄하게 버스(verse)를 가져감으로써 곧이어 따라오는 예쁘장한 코러스의 극적 재미를 배가하고, “항해”의 경우 아예 중간의 네 마디 코러스와 후반부의 기타 독주를 제외하고는 단 두 리프만으로 듣는 이의 귀를 잡아끌 만한 흡입력을 보인다. (“항해”는 이지형이 세션으로 참여하곤 했던 서울전자음악단의 동명 앨범 수록곡 “내가 원하는 건”과 동일한 리프를 쓴 트랙이기도 하다.)

이 밖에 부드러운 통기타 스트로크와 뮤트음의 반복이 이지형의 보컬 선율을 보다 원활히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Tea Party”, 가수 홍경민이 연주한 하모니카 도입부의 느낌을 끝까지 차분히 이어나가는 “Baby Baby” 등은 많은 대중에게 쉽게 호소할 수 있을 감성 트랙이다. 이렇게 앨범 전반을 무난한 포크팝 계열의 색조로 꾸려가고 있는 이지형의 첫 독집은, 마치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짓는 하이틴 로드무비의 남자주인공의 인상을 연상시킨다. 물론 때로는 너무 맨질맨질한, 군더더기 없이 쉽게 읽히는 단편소설집마냥 ‘딱 고만큼’의 미덕에 그치는 감도 없지 않고, 지나치게 풍성한 화음 입히기와 곧잘 보컬의 뒤로 숨는 기타 사운드는 기존의 모던록풍 가요와의 차이점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퍼 시절의 이지형에 비해 한층 여유가 넘치는 음악적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점, 나아가 최근에 나온 ‘상큼 버전’의 여타 팝록 음반들보다 더욱 싱얼롱(sing along)하고 싶게 만드는 멜로디 감각이 돋보인다는 점, 그리고 이 음반이 그간 그를 지켜봐 온 팬들에게만큼은 최소한 ‘실망’이란 말이 나오기 힘들만한 수준의 창작물이란 점 등이다. 더불어, 이 음반이 여느 ‘말랑말랑한 십대 취향’의 언더그라운드 트위팝 넘버들보다 기분 좋게 들리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호의적 청자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20060513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7/10

수록곡
1. Nobody Likes Me
2. Radio Dayz
3. 몽상가들
4. Love Paisley Love
5. 눈이 마주친 하늘
6. 푸른 자전거
7. Running Man
8. 11월
9. 항해
10. Baby Baby
11. Tea Party
12. Radio Dayz (Mix – Bonus Track)
13. Spin (영화 ‘청춘만화’중 –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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