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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Shop Boys – Fundamental – EMI, 2006

 

 

잘 만든 나쁜 팝

팝은 근본적으로 단순한 음악이(어야 한)다. 마치 그 멜로디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런 멜로디인 것처럼, 그 편곡이야말로, 그 가사야말로, 그 춤과 그 뮤직 비디오야말로, 바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원했던 바로 그것인 것처럼 듣고 보지 않는다면 (즉 ‘망설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팝이다. 혹은 ‘나쁜 팝송’이다.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는 나쁜 팝송을 교묘하게 틀어 올리는 뮤지션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순수한 팝’에 아이러니와 멜랑콜리, 그리고 냉소를 덧씌움으로써 자신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망설이게 한다. 그럼으로써 한 번 듣고 흘릴 수 없는, 혹은 한 번 듣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은 팝송을 만든다. 그것이 그들이 나쁜 팝송을 틀어 올리는 방식이다.

[Behaviour](1990) 이후, 펫 샵 보이스는 자신들이 만든 일렉트로 댄스 팝의 세계 속에서 외도와 복귀를 반복했다. [Behaviour]는 달콤쌉싸름(bittersweet)하고 내성적인 음반이었고 [Very](1992)는 천진난만한 (것처럼 들리는) 디스코 음반이었다. [Bilingual](1996)에서는 복잡한 리듬을 구사했고 [Nightlife](1999)에서는 정석적인 애시드 하우스 비트가 음반을 관통했다. [Release](2002)는 낭만적인 발라드로 채운 음반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음반이다. 펫 샵 보이스의 아홉 번째 스튜디오 정규 음반 [Fundamental]은 [Very] 이후 가장 잘 만들어진 펫 샵 보이스 음반이다. 혹은 [Very] 이후 가장 잘 만든 나쁜 팝송 모음집이다. 즉 풍자적이며 예리한 가사, 화려하고 긴장감 넘치는 편곡과 사운드 프로듀싱, 흠결 없는 멜로디 등의 요소들이 강력하고 철저하게 통제된 일렉트로 댄스 팝 음반이다.

신보의 첫 싱글 “I’m With Stupid”에 예스(Yes)의 “Owner Of A Lonely Heart”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당신의 추측은 맞다. 신보를 특징짓는 화려한 사운드를 작업한 이는 버글스(The Buggles)와 예스(Yes)의 프로듀서인 트레버 혼(Trevor Horn)이다(그는 펫 샵 보이스와 “Left To Own My Device”를 작업한 경력이 있다). 그는 차가운 비트와 반짝이는 전자음,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 사이의 균형을 적절하게 잡아낸다(“Minimal”, “Luna Park”, “Integral”).

신보 사운드의 또 다른 특징인 극적(dramatic) 성격은 뮤지컬 [Closer To Heaven]과 영화 [전함 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의 음악 작업을 통해 펫 샵 보이스가 얻은 경험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Nightlife]의 “In Denial”이 ‘베타 테스트’였다면 신보에서는 이 점이 전면적으로 강조된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효과는 “The Sodom And Gomorrah Show”, “Numb”, “Indefinite Leave To Remain”에서 잘 드러난다. 아마 [Fundamental]은 펫 샵 보이스의 역사에서 가장 사운드가 화려한 음반으로 남게 될 것 같다.

동시에, 두터운 사운드 속에서도 꼼꼼한(intricate) 리듬과 비트, 매끈하고 섬세한 멜로디라는 펫 샵 보이스의 근본적인(fundamental) 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일렉트로 비트가 지배하는 “Psychological”, 후려치듯 나아가는 “The Sodom And Gomorrah Show”, 화끈한 끝맺음인 “Integral” 등은 음반의 흐름을 적절히 잡아 준다. 그 와중에 “Casanova In Hell”과 “Indefinite Leave To Remain” 같은 펫 샵 보이스 표 발라드 역시 아름답게 빛난다.

나는 다른 지면들에서 [Fundamental]을 가리켜 ‘모든 팝 뮤지션들의 꿈속에서 완성될 법한 바로 그런 음반’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쓴 데에 ‘산업적 고려’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없는 말을 지어낸 것 또한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 듀오는, 설사 결국에는 그들의 경력에 비추어 볼 때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적어도 처음 듣는 순간만큼은 늘 전작을 뛰어넘는 것처럼 들리는 음반들을 만들어 냈다. 팝 뮤지션의 꿈속에서는 그런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집어들고 온다.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처럼. 20060525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이 글은 라이선스 음반 내지의 내용을 요약 변경한 것입니다.

수록곡
1. Psychological
2. The Sodom And Gomorrah Show
3. I Made My Excuses And Left
4. Minimal
5. Numb
6. God Willing
7. Luna Park
8. I’m With Stupid
9. Casanova In Hell
10. Twentieth Century
11. Indefinite Leave To Remain
12. Integral

관련 글
Pet Shop Boys [Nightlife] 리뷰 – vol.1/no.8 [19991201]
Pet Shop Boys [Release] 리뷰 – vol.4/no.10 [20020516]

관련 사이트
펫 샵 보이스 공식 사이트
http://www.petshopboys.co.uk/

Pet Shop Boys – Fundamental – EMI,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