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spassers William – Having – Nettwerk, 2006 이를테면 잃어버린 반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그러나 생전 마주친 적 없는 어떤 목소리, 그건 이를테면 익명의 가녀린 여자 목소리, 발음이 모호한(혹은 아득한) 언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느리게(그건 마치 어떤 짐승들의 무리처럼) 이동하는 사운드, 점액질의 끈적거림, 베이스 기타현의 둥둥거림, 낮은 곳에서 아니, 응축되고 수축되어 터지기 직전의 어떤 맺힘, 억눌림, 가파른 곳을 가까스로 올라가는 늙은 사내, 그의 지치고 성마른 입술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러니까 낮은 곳에서 웅웅거리는 기타 사운드, 이른바 드림팝, 슈게이징, 새드코어, 슬로코어 등등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 사운드는 이제는 지겨울 때도 된 것 같은데도 여전히 매력적이고(당신은 이 음악이 가슴을 뛰게 한다고 말했다) 치명적이며, 심지어 퇴폐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아름다울 뿐더러. 불법침입자 윌리엄(Trespassers William)이라는 이 밴드에 대해서라면 인터넷에서 몇 번의 검색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 사실들, 그러니까 이들은 1997년 시애틀에서 결성된 혼성 밴드이고, 보컬인 안나-린 윌리엄스(Anna-Lynne Williams)와 기타리스트 매트 브라운(Matt Brown)이 주축이 되어 음악의 길로 진입했다. 베이스 기타의 로스 시모니니(Ross Simonini)가 영입된 1999년 데뷔 앨범 [Anchor]를 발매하고 대학 라디오 방송을 통해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드러머 제이미 윌리엄스(Jamie Williams)가 밴드에 합류한 2002년에 이들은 영국의 레이블 벨라 유니온(Bella Union)을 통해 두 번째 앨범 [Different Stars]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신보를 발표한 모리씨(Morrissey)나 다미엔 라이스(Damien Rice), 리사 제마노(Lisa Germano)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물론 이것이 음악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2집을 발매한 얼마 뒤, “Lie in the Sound”와 같은 곡이 [One Tree Hill]이나 [The O.C.], [Buffy the Vampire Slayer] 같은 인기 청춘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그 유명세는 더해졌고,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서 방영된 이 미국 드라마 덕분에 트레스페서스 윌리엄(Trespassers William)이란 이름은 한국의 음악팬들에게도 제법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인기를 몰아 이미 절판되었던 [Different Stars]가 2004년에 재발매되었고, 2006년 2월에 신작 [Having]을 발표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친절한 올뮤직가이드(all music guide)씨가 알려주는 내용이다. 어쨌든, 이들은 인디밴드라고 하기엔 덩치가 크고, 주류밴드라고 하기엔 다소 모자란 느낌인 채로 2006년까지, 그러니까 10여년을 활동해왔다. 사실, 이런 음악에 대해서 처참한 아름다움이라느니, 처연하면서도 잔혹한 서정이라느니 말하는 것은 클리셰에 가깝다, 아니 차라리 이 점에 대해서는 클리셰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나. 아르코(Arco)나 시규어로스(Sigur Ros)처럼 활로 기타 줄을 긁으며 내는 기이하면서도 서정적인 공명(空鳴)이나 안나의 차분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의 매력을 이야기해야할까. 그것으로 이들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아니, 차라리 아시아 변방의 한 리뷰어가 한국어로 이들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글쎄, 그걸 어찌 알겠나. 그저 우리는 이 아름답고 서글픈, 혹은 단아하고 사색적인 사운드를 가까스로 뒤쫓으며 뭔지 모를, 그러나 분명한 흔적을 주워 담을 수 있을 뿐. 따라서 내가 이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트레스페서스 윌리엄의 음악이 20세기의 슬로코어 스타밴드들, 그러니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콕토 트윈스(the Cocteau Twins), 갤럭시 500(Galaxy 500)이나 메이지 스타(Mazy Star)가 부재한 자리, 그리고 데이먼 앤 나오미(Damon & Naomi)와 로우(Low)가 잠깐 멈춘 바로 그 자리를 21세기에 이르러 훌륭하게 채우고 있다는 점뿐이다. “Safe, Sound”의 리버브되는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 “I Don’t Mind”의 긴장감 가득하며 또한 치명적일 정도로 가슴을 파고드는 기타 사운드, 청승맞을 정도로 쓸쓸한 보컬이 돋보이는 “My Hands Up”과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요하게 반복되는 멜로디를 고집하는 “Matching Weight”와 같은 트랙들은 앨범 [Having]의 황량한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하긴, 클리셰의 반복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음악이 21세기에 걸맞게 새롭고도 신선한 음악은 아닐지라도 누구든, 더더군다나 슬로코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40여분 가득 흐르는 서정성과 비극성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음반은 먹먹함, 아득함, 그리움, 슬픔, 동경, 향수, 이를테면 잃어버린 반지, 고칠 수 없는 편지, 지워지지 않는 흉터, 혹은 맺어지지 못한 사랑 같은, 혹은 그런 것들을 위한 꽤 매끄럽고 세련된 안식이다. 그런 점에서 ‘불법침입자 윌리엄’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이해된다. 인간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게 꼭 사랑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60523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1. Safe, Sound 2. What Of Me 3. Weakening 4. Eyes Like Bottles 5. I Don’t Mind 6. Ledge 7. And We Lean In 8. My Hands Up 9. Low Point 10. No One 11. Matching Weight 관련 사이트 Trespassers William 공식 사이트 http://www.trespasserswilli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