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11124451-0809-tool

Tool – 10,000 Days – Volcano/Sony BMG, 2006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오늘날의 메인스트림 헤비 메틀 씬에서 툴(Tool)은 최후의 장인(master)처럼 보인다. 혹은 예술로서의 로큰롤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는 마지막 거물 밴드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은 많은 것들을 설명해 준다. 즉 어째서 5년만에야 새 음반을 냈음에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지, 어째서 청자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 아니라 청자가 즐거워야 하는 음악을 만드는지, 어째서 그렇게 간지 나는 아트워크를 만드는지, 어째서 그렇게 괴상한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지, 어째서 변변한 싱글 히트 하나 없이도 음반을 차트 꼭대기에 올려놓는지, 싱글이라고 낸 것이 어째서 7분이 넘는지 등의 의문들에 대한 것들 말이다.

그러나 장인이라는 개념도 예술로서의 로큰롤이라는 개념도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들이다. 그 개념들이 염전의 바닷물처럼 증발하고 난 뒤 로큰롤은 남은 소금을 거둬들여 거기에 재미라는 이름을 붙여 팔고 있다. 순수한 재미. 완벽한 재미. 등등. 툴은 거기에 저항한다. 진득한 싸이키델릭 노이즈와 배배꼬인 리프를 오가는 난폭한 기타, 얽히고 설킨 거대한(massive) 리듬 뭉치, 운신의 폭이 넓은 카리스마적 보컬, 넓은 공간 속에 어둑하게 자리잡은 사운드, 자동차 기어 테스트라도 하는 듯한 구성 등의 요소들은 그를 위한 수단이다. 적어도 프로그레시브를 표방하는 몇몇 밴드들처럼 리싸이틀용(用) 헤비 메틀을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러한 수단들은, 밴드의 음악이 킹 크림슨(King Crimson)이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보다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 등의 전통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범위에서 예민하게 통제된다. 비록 음반의 아트워크는 에머슨, 레이크 &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Brain Salad Surgery](1973)를 21세기 스타일로 바꾼 것 같긴 해도.

[10,000 Days]는 툴의 이러한 모습들이 별로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선언한다. 밴드의 트레이드마크 비슷한 ‘제 3의 눈(third eye)’이 촘촘히 박힌 에스닉(ethnic)한 커버 디자인과 3-D 매직아이 아트워크도 이에 가세한다. 여전히 툴의 특징들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런 특징들은 “Vicarious”와 “Jambi”, “The Pot” 같은 곡들에서 공격적으로 다가온다. 첫 싱글 “Vicarious”를 비롯한 이런 곡들은 보통의 밴드라면 EP 하나를 만드는 데 쓸 분량의 리프와 리듬을 한 곡에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꾹꾹 눌러 담은 소리를 들려준다. [Lateralus](2001)에서 애용하던 전자음의 흔적도 별로 없다.

“Vacarious”와 “The Pot”이 차트나 라디오를 위한 곡이라면 밴드와 팬들을 위한 곡은 프론트맨 키넌(Maynard James Keenan)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만든 17분 30초 짜리 연작 “Wings For Marie (Pt.1)”와 “10,000 Days (Wings Pt.2)”일 것이다. 부드럽게 울리는 조종 소리로 시작해서 시타(sitar)와 타블라(tabla)가 요동치는 주술적 싸이키델릭으로 부풀어오르는 이 곡은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싸이키델릭 록의 가공할 위력을 새삼 일깨워준다(음반의 제목인 ‘10,000 Days’는 키넌의 어머니가 병고에 시달렸던 시간을 환산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반부의 다섯 곡을 듣다 보면 2006년에 이보다 더 나은 헤비 메틀 음반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럼 음반을 끝까지 듣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Rosetta Stoned”나 “Right In Two” 같은 곡들은 음반의 집중력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아틀라스(Atlas)라도 된 것처럼 두 다리를 땅에 박고 끝까지 버틴다. 그럼에도 이 곡들은 음반의 전반부가 도달한 수준엔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들린다. “Rosetta Stoned”를 듣다가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면, 그래서 “Aenima”나 “Ticks And Leeches”가 그립다면, 그건 길이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10,000 Days]는 [Lateralus]에 비해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 개별 곡의 효과는 강력하지만 음반 전체적으로는 컨셉이나 무드에 구심점이 없다는 인상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앨범 아티스트’에게 이 점은 중요하다). 그런 점이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청자를 짓눌렀던 [Lateralus]보다는 부담 없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더불어 음반의 비주얼 컨셉과 뻔한 내용의 TV 비판(“Vicarious”)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Jambi”나 “Right In Two”의 가사에 피식거릴 사람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10,000 Days]는 툴 버전의 [The Fragile](1999) 같기도 하다. 키넌이 한 인터뷰에서 제작 당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밝힌 [Lateralus]를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1994)에 대응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어쨌든 툴의 팬인 이상 [10,000 Days]에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음반이 산만하게 들리는 것도 밴드가 ‘어둠과 분노’에서 ‘사색과 어둠’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변호할 수 있다. “Vicarious”나 “The Pot” 같은 곡들의 노래 지향적(song-oriented) 접근법과 음반의 다소 말랑한 소리 때문에 키넌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어 퍼펙트 서클(A Perfect Circle)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툴의 음악이 더 재미있게 꼬여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언급한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듣는 동안만큼은 압도적인 위력과 효과를 발휘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반면 툴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이 음반이 밴드의 예전 음반들이 그랬듯 야심 찬 과대망상이 꾸준히 발휘된 음반이고, 툴의 음악적 상투구들을 안이할 정도로 복잡하게 펼쳐낸 음반이라고 할 것 같다. 신중한 팬들은 밴드의 음악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호화찬란한 아트워크 때문에라도 툴의 음반을 살 것이다(이 글을 쓰는 지금 [10,000 Days]는 약 56만장을 팔아치우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 예정이다). 하지만 정작 밴드는 음반의 판매고나 음반을 둘러싼 논쟁 따위와는 관계없이 조용히 공연 준비나 하면서 초연한 눈길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런 음악을 하는 밴드에게 어울리는 행동일 것이다. 2006051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Vicarious
2. Jambi
3. Wings For Marie (Pt.1)
4. 10,000 Days (Wings Pt.2)
5. The Pot
6. Lipan Conjuring
7. Lost Keys (Blame Hofmann)
8. Rosetta Stoned
9. Intension
10. Right In Two
11. Viginti Tres

관련 글
Tool [Lateralus] 리뷰 – vol.3/no.12 [20010616]

관련 사이트
툴 공식 사이트
http://www.toolb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