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oyer – Destroyer’s Rubies – Merge, 2006 출렁이는 이내 마음 디스트로이어(Destroyer)는 1995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댄 비자(Dan Bejar)의 원맨 밴드로 출발했다. 댄 비자는 마타도어(Matador)의 각광받는 그룹 뉴 포르노그래퍼스의 핵심 멤버로도 활동하며 자기 안의 풍부한 감성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해 온 아티스트다. 디스트로이어의 일곱 번째 정규작 [Destroyer’s Rubies](2006)는 지금까지의 여느 전작들에도 뒤지지 않는다. 전반적인 스트링 사운드에서 2002년의 역작 [This Night]을 계승하면서도, 댄 비자의 특출한 보컬색만큼은 2004년의 [Your Blues]에서 끌어올린 바 있는 감정선을 좀 더 확고히 탄다. 첫 트랙 “Rubies”는 앨범 전체의 무드를 지배한다. 9분 25초라는 러닝 타임을 가진 이 곡은, 미니멀한 연주 흐름 속에서 각 악기 파트가 적절한 교차 주기를 갖고 등장하여 비교적 안정감 있게 들린다. 어쿠스틱 기타의 산들거리는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 반주는 활력과 정적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살짝 이펙터를 거친 기타음과 절도 있는 스네어 및 퍼커셔닝은 드라마틱한 연출에 기여한다. 그리고 이 모든 협연의 중심에 바로 댄 비자의 아름다운, 동시에 능구렁이 같은 보컬이 있다. 그는 콘체르토의 지휘자처럼 변화무쌍한 악곡의 벌판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화룡점정을 찍어댄다. ‘라라라라라’로 반복되는 스캣의 여운이 감도는 가운데, 이어지는 “Your Blood”의 흥겨운 로큰롤도 놓치기 아깝다. 이 곡에선 초창기 리듬앤블루스의 백비트를 날 것 그대로 차용한 듯한 리듬 위에서 스윙감이 잘 묻어나는 피아노 연주가 역시 비자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그 밖에도 훌륭한 곡들이 적지 않다. “Rubies” 못지않은 강렬함을 가진 “European Oils”, 7분이 넘어가는 “Looter’s Follies” 역시 극적인 재미가 절제미와 함께 느껴진다. “3000 Flowers”의 날선 기타 피킹도 인상적이다. 나머지 트랙에서도 애틋한 챔버(chamber) 사운드의 공명감을 바탕으로 기타(때론 건반)와 보컬의 듀엣이 아득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댄 비자를 선장으로 둔 이 ‘구축함(destroyer)’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모양새는 국내 청자들에게 익숙한 영미권의 인디록 넘버들과 다소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가 저마다 갖고 있는 바다에 대한 이미저리는 이 앨범과 함께할 때 더 쉽고 자연스럽게 만나 출렁일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이 줄 수 있는 가장 충만한 즐거움은 그런 것이 아닐까? 20060420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8/10 수록곡 1. Rubies 2. In Your Blood 3. European Oils 4. Painter In Your Pocket 5. Looters’ Follies 6. 3000 Flowers 7. A Dangerous Woman Up To A Point 8. Priest’s Knees 9. Water Colours Into The Ocean 10. Sick Priest Learns To Last Forever 관련 사이트 Merge Records의 Destroyer 페이지 http://www.mergerecords.com/band.php?band_id=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