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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 OHM+: The Early Gurus Of Electronic Music: 1948­-1980 | Ellipsis Arts, 2000/2005

 

 

음악의 왼손

올리비에 메시앙(Oliver Messiaen)의 [투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ila-Symphonie)](1948)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현란한 관현악 사이로 기어 나오는 기괴한 소리 역시 들어보았을 것이다. 귀곡(鬼哭) 혹은 무그 신서사이저의 싸이키델릭 버전처럼 들리는 소리. 작곡가는 (그의 기독교적 신비주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악기를 현세를 초월한 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추측 따위에는 상관없이) 그 효과는 강력하다. 그 악기의 이름은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 전자음악의 역사에서 성공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악기이다. 온전히 옹드 마르트노를 위해 메시앙이 작곡한 “Oraison”은 [투랑갈릴라 교향곡]의 귀기 대신 일종의 ‘영적인 평온함’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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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용으로 제작된 옹드 마르트노의 모습

그러나 이 악기가 최초의 전자악기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최초’라고 알려진 것은 테레민(theremin)이라는 공간 통제형(space-controlled) 악기다. 이 악기는 두 손을 악기에 접촉하지 않고 음의 높이와 지속 시간을 조정하는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했다. 이것을 발명한 러시아의 과학자 레온 테레민(Leon Theremin)은 그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혁명을 피해 뉴욕으로 망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로크모어(Clara Rockmore)를 꼬드겨 테레민을 익히게 한 뒤 순회공연을 돌았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악기의 (역시) 귀기어린 음색은 금새 공포영화, 미스터리 영화, SF 영화의 단골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그녀가 훗날(1977년) 녹음한 차이코프스키(Peter Tchaikovsky)의 “Valse Sentimentale”을 들어보면 바이올린과 톱 사이 어딘가에 있는 처량한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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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민을 직접 연주하는 레온 테레민

만약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그리고 여기 언급된 곡들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면, 이 음반을 들어보기 바란다(내 경험을 돌이켜본다면, 꼭 음반을 사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OHM+: The Early Gurus Of Electronic Music: 1948-1980](이하 [OHM+])은 제목 그대로 테레민과 옹드 마르트노에서 시작한 현대 전자음악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그 길의 흐름은 석 장의 CD와 한 장의 DVD, 두터운 부클릿에 정성스레 새겨져 있다. 2000년에 발매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이 모음집이 시대의 추세에 발맞춰 ‘레어 아이템(다큐멘터리, 뮤직 비디오, 연주 장면)’을 담은 DVD를 탑재하고 재발매 되었다(그래서 처음 발매 당시 [OHM]이었던 음반 제목에 ‘+’가 추가되었다).

음반의 편집을 맡은 프로듀서인 토머스 자이글러(Thomas Ziegler)와 제이슨 그로스(Jason Gross)는 “(전자음악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진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됨과 동시에 이 풍요롭고 흥미로운 음악의 영역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고자” 이 모음집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말투가 어쩐지 문법책 서문처럼 들리는 것은 실제로 이 모음집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부클릿의 서문을 쓴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말도 들어 보자. “이 컬렉션에 들어있는 수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들은 이제,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때때로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적인 감상 방식으로 바뀌었다.”

즉 [OHM+]에 담겨 있는 것은 일종의 ‘원단’ 혹은 문법들이다. 문법을 알기 위해 문법책 저자에게 감사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듯이 이 모음집에 수록된 음악가들의 낯선 이름에 당황할(혹은 부끄러워할) 필요 역시 없다. 이 모음집에 나오는 몇몇 저명한 이름들, 예를 들면 에드가 바레즈(Edgar Varese)나 칼하인즈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존 케이지(John Cage), 클라우스 슐츠(Klaus Schulze)의 이름 앞에서 주눅들(혹은 우쭐할) 필요 또한 없다.

[OHM+]에 담겨 있는 곡들의 ‘전위적 성격’을 ‘지적으로’ 즐기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의 “Bye Bye Butterfly”가 리얼 타임(real time)으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최초의 ‘샘플 리믹스’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오늘날 청자의 귀에 그것이 유난히 대단하게 들려야 할 까닭은 없다.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들으며 ‘테크놀로지로서의 존재’가 산업 사회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처하게 되는 생성과 소멸의 운명에 대한 명상에 빠지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그 명상의 결과가 오늘날의 이른바 ‘영양가 없는 댄스 음악 잡동사니’에 대한 성급하고 서투른 경멸만 아니라면. 이효리와 스티브 라이히를 비교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이효리와 스티브 라이히 사이에 있을 법한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가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 음반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캔(Can)의 멤버였던 홀거 추카이(Holger Czukay)의 “Boat-Woman-Song”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에스닉한 울림에 깊은 인상을 받거나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Vladimir Ussachevsky)가 방송 시그널을 위해 만든 “Wireless Fantasy”의 키치적 정서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경우와 같은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정성스레 쓰여진 음반의 내지를 꼼꼼히 읽고 곡들을 감상한 뒤 오늘날의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이러한 기법들이 어떻게 사용되고(또는 착취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데서 학구적인 즐거움을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 다 이 음반의 제작자를 기쁘게 할 수 있을 반응들이다.

이 음반이 진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 이들은 소수이다. 이를테면 실질적인 음악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중에서도 아마 일부의 사람)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 혹은 이 글의 필자처럼 다소 성급하고 속물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경우는 앞의 두 경우보다는 호소력이 덜하겠지만). 그러나 실제적인 목적은 다양할지라도 이 모음집을 구입하거나 들을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 동기는 역사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오늘날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교육적 이윤’이라 부를 수 있을 목적으로 다루어진다. 즉 과거를 통해 내일의 교훈을 얻는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어떤 교육적인 효과도 불러오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에도 일단은 그렇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교훈도 가능하다. 역사 그 자체와 직접 맞닥뜨렸을 때의 정서적 충격, 그것이 존재했음을 체감했을 때의 경이로움, 어떤 것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들이 관련 없는 관련을 맺은 채 목적 없는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꿈틀거림 자체가 바로 역사라는 직관적 인식에서 오는 직관적 교훈. 그것은 교육적 이윤이 안겨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음악을 통해 그런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옛 로큰롤 음악들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충격과 깨달음의 문은 아주 낯선 것을 통해 잠깐 열렸다 닫히는 것이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처럼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 이루어진다. 이 음반이 담고 있는 것은 음악의 왼손들이다. 원한다면 악수해도 된다. 20060405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10/10

(*) 옹드 마르트노의 소리가 선명하게 포착된 [투랑갈릴라 교향곡]의 음반으로는 정명훈/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DG, 1991)의 연주를 추천한다. 연주의 내용도 훌륭하다(…고 한다). 메시앙 본인이 (직접 추천사까지 써줬을 만큼) 가장 만족스러워한 음반이기도 하다.

수록곡
CD 1
1. Valse Sentimentale (Clara Rockmore)
2. Oraison (Oliver Messiaen)
3. Etude Aux Chemins De Fer (Pierre Schaeffer)
4. Williams Mix (John Cage)
5. Klangstudie II (Herbert Eimert/Robert Beyer)
6. Low Speed (Otto Luening)
7. Dripsody (Hugh Le Caine)
8. Forbidden Planet: Main Title (Louis Barron/Bebe Barron)
9. Elektronische Tanzste: Concertando Rubato (Oskar Sala)
10. Poem Electronique (Edgard Varese)
11. Sine Music (A Swarm Of Butterflies Encountered Over The Ocean) (Richard Maxfield)
12. Apocalypse-Part 2 (Tod Dockstader)
13. Kontakte (James Tenney/William Winant)
14. Wireless Fant (Vladimir Ussachevsky)
15. Philomel (Milton Babbitt)
16. Spacecraft (MEV)

CD 2
1. Cindy Electronium (Raymond Scott)
2. Pendulum Music (Steve Reich)
3. Bye Bye Butterfly (Pauline Oliveros)
4. Projection Esemplastic For White Noise (Joji Yuasa)
5. Silver Apples Of The Moon, Part 1 (Morton Subotnick)
6. Rainforest Version 1 (David Tudor)
7. Poppy Nogood (Terry Riley)
8. Boat-Woman-Song (Holger Czukay)
9. Music Promenade (Luc Ferrari)
10. Vibrations Composees: Rosace 3 (Francois Bayle)
11. Mutations (Jean-Claude Risset)
12. Hibiki-Hana-Ma (Iannis Xenakis)
13. Map Of 49’s Dream The Two Systems Of Eleven Sets Of Galactic Intervals: Drift Study ’31/69 c…. (La Monte Young)

CD 3
1. He Destroyed Her Image (Charles Dodge)
2. Six Fants On A Poem By Thomas Campion: Her Song (Paul Lansky)
3. Appalachian Grove (Laurie Spiegel)
4. En Phase/Hors Phase (Bernard Parmegiani)
5. On The Other Ocean (David Behrman)
6. Stria (John Chowning)
7. Living Sound, Patent Pending Music For Sound-Joined Rooms Series (Maryanne Amacher)
8. Automatic Writing (Robert Ashley)
9. Canti Illuminati (Alvin Curran)
10. Music On A Long Thin Wire (Alvin Lucier)
11. Melange (Klaus Schulze)
12. Before And After Charm (La Notte) (Jon Hassell)
13. Unfamiliar Wind (Leeks Hills) (Brian 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