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 Hello! Spaceboy/파스텔, 2006 지나간 미래 탈무드(Talmud)에서는 배가 떠났을 때보다 돌아왔을 때 더 큰 잔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 때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떠들썩하게 환송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돌아온 배를 따뜻하게 맞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우리도 환영식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이하 속옷밴드)의 마지막 음반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이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실험적 인스트루먼틀 록(experimental instrumental rock)’ 음반에서 의도와 실천의 간극을 따지는 것은 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듣고 느끼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그저 듣고 느끼게 놔두지는 않는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는 우연의 유희가 의도 속으로 포섭될 수도 있고 의도 자체가 우연 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을 듣는 청자는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특정한 감정을 특정 이미지와 대응시킬 수는 없다(그건 내가 그동안 수없이 그런 짓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런 설명에는 늘 채울 수 없는 틈이 생긴다). 그리고 사실 그건 만드는 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속옷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질문들은 의미 있는 듯 던져진 의미 없는 질문들이다. 즉 대답을 들을 특별한 필요가 없음에도 궁금하기는 한 질문들이다. 이를테면 어째서 이번 음반은 전작에 비해 칼칼한 사운드를 들려주는지, 어째서 노아의 방주라도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기타 노이즈가 범람하고 전자음의 비중이 줄었는지, “MCV”의 주요 동기 중 하나를 슬라이드 주법으로 연주한 이유는 무엇인지, 트레몰로 주법으로 문을 여는 “파고듦”의 주요 테마인 명료한 기타 선율이 어째서 되는 대로 꺽꺽거리는 것 같은 다른 기타 연주를 압도하는지(그 반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I’ve been here, we’ve been here”의 5분 5초 지점부터 나타나는, 신음소리 같은 효과음은 곡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질문들 같은 것들. 그러나 의도와 실천의 간극에 늘 생겨나기 마련인 깊은 늪 속에 전작을 특징짓던 끈질김과 긴장감이 절반쯤 가라앉아 버린 것 같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음반에서 가장 좋은 곡이 밴드 활동의 시작을 알렸던 “안녕”과 “멕시코행 고속열차”라는 것은 바꿔 말해 다른 곡들의 호소력이 그에 비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속옷 밴드는 간결하고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기타 멜로디와 미니멀하고 반복적인 구성을 주무기로 하여 듣는 이들을 몽롱한 상태로 몰고 간다. 그러나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은 “시베리아나” 같은 곡이 지루하게 들린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라이브’하게 만들어진 사운드가 생각만큼 역동적으로 잡히지 않은 부분들도 많다(“멕시코행 고속열차”). 통상적인 경우였다면 이 음반은 ‘불충분한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음반이며 이제 곧 자신들의 본격적인 스타일을 만들게 될 것이다’ 정도의 말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스타일을 운운한 이유는 전작과 이번 음반의 결정적인 차이가 사운드의 질감에 있다는 생각이 첫 번째이고, 그것을 통해 해외 유사 업종 밴드들과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달리 말해 아직은 이것저것 해보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철거될 건물 귀퉁이에 되는 대로 낙서할 때처럼, 어쩐지 다 소용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떤 현자의 말에 따르면 가능성이란 것은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비추어 과거를 변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밴드였다는 말은 아쉬움에 대한 표현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동안 들려줬던 괜찮은 음악에 대한 답례로 한 상 거나하게 차려놓는 것이다. 그럴 사정이 되지 않는다면 컴퓨터 앞에서 여러분이 늘 하는 대로 컵라면이나 하나 준비해두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따뜻이 맞이해주자. 20060328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안녕 2. MCV 3. 파고듦 4. I’ve been here, we’ve been here 5. 멕시코행 고속열차 6. 시베리아나 7. Bluemoon 관련 글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사랑의 유람선] 리뷰 – vol.5/no.24 [20031216] 관련 사이트 속옷 밴드 공식 사이트 http://www.hellospacebo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