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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스파이스 – Bombom – Moonrise, 2006

 

 

그대로 머물러 있는 음악

올해로 결성 11년 째가 되는 델리스파이스는 한국 기타 팝, 모던 록의 시작점에 있었던 밴드이다.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 마이 앤트 메리 등이 나오고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기타 팝 밴드와 그 음악은 남성 3~4인조 밴드의 형태에서 여성 보컬과 남성 연주자의 구성으로, 영미 록 음악의 영향보다는 일본 시부야계 음악의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델리스파이스는 앞 시기 모던 록의 시작부터 끝까지 흥망성쇠를 함께하는 밴드가 될 것만 같다.

뮤직디자인에서 3집 [슬프지만 진실…]까지 발매한 밴드는 대중적 인기는 확보했지만, 그에 비해 경제적 수입은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이후 틴 팬 앨리로 소속을 옮긴 후 2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그 기간에 밴드 생활에 예전같은 흥미를 느끼지 못한 멤버들은 각자 흩어져서 김민규는 스위트피로, 윤준호와 최재혁은 오메가3로 나름의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3년 만의 신작. 밴드 멤버들은 그룹 결성 당시의 20대 중반에서 지금은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이전 작들과 이번 6집 [Bombom]의 차이는 그 나이만큼은 아니다. 이번 앨범 역시 말랑말랑한 사운드, 외로움과 상실을 표현하는 가사라는 측면에서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악을 들려준다. 델리스파이스의 이번 앨범이 특히 반갑게 느껴진다면 이제는 그런 음악이 새로 잘 나오지 않는 여건 때문일 것이다.

최재혁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 곡 “Missing You”는 과거 델리스파이스의 감성과 긴장감을 갖고 있는 동시에 더더 등의 주류 모던 록 밴드에게서 느껴지는 통속성도 겸비한 전형적인 기타 팝이다. 소년의 여린 감수성이 드러나는 가사는 여전하며, 초기 곡들에 비해서는 사운드의 두께가 얇아졌다. 김민규가 작곡한 “바다에 던져버린 이름들”은 1980년대 음악과 들국화의 감성이 베어 있는 곡이다. 공간계 이펙트와 슬라이드 기타 연주로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한 “9월”은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의 곡을 밴드 버전으로 편곡한 곡 같다. 윤준호의 곡 중에선 “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이 돋보인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연주한 아랍 혹은 인도 풍의 기타 연주는 멋진 그루브를 만들어냈다. 3집의 “이어폰 세상”에서 들려준 것처럼 동서양의 소리를 잡탕으로 섞는 음악에서 윤준호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델리스파이스의 오랜 경력은 확실한 정체성(正體性)을 밴드에게 안겨주었다. 반면에 밴드의 음악은 또한 정체(停滯)되어 간다. 앨범이 거듭될수록 느껴지는 건 듣는 이의 신경을 잡아 묶는 음악의 흡입력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좋아하겠지만, 초기작에서 밴드가 보여준 놀라운 감흥을 이번 앨범에서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3명의 멤버가 각자 만들어 부르는 곡들의 이질감도 커져가서, 밴드 음악의 구심력도 약해져 간다. 예전의 그 감흥을, 델리스파이스의 또 다른 음악적 혁신을 밴드에게 요구할 수는 없지만 그 때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싶다. 20060327 | 송창훈 intifada@naver.com

4/10

수록곡
1. 시아누크빌
2. 나의 왼발
3. Missing You
4. 로렐라이
5. 꽃잎 날리는 길을 따라
6. 봄봄
7. 바다에 던져버린 이름들
8. 붉은 미래
9. 9월
10. 네이팜처럼 차가웁게
11. 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
12. 어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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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델리스파이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delispice.co.kr
소속사 문라이즈 홈페이지
http://www.moonri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