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레인 – Boys, Be Ambitious – Roxta/T Entertainment, 2005 청춘은 불꽃이어라 이건 리뷰라기보다 한 편의 회고담이다. 마치 예전의 내 스무 살 청춘을 이제 와 애써 박제시켜 놓으려는 시도 마냥 조금은 마음 언저리가 퀭해지는, 왠지 그런. 네 번째 정규 앨범 [Boys, Be Ambitious](2005)를 발표한 뒤 노브레인의 프론트맨 이성우는 말했다. 이전의 노브레인은 이전대로, 지금의 노브레인은 지금대로 봐달라고.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렇기에 본 리뷰는 그 옛날의 노브레인을 단지 추억할 뿐이다. 이미 내겐 ‘클래식한’ 음반이 되어버린 [청년폭도맹진가](2000)와 [Viva No Brain](2001)이지만, 현재를 함께하고 있지 않은 음반은 역시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법이다. 더구나 고백컨대 한 때 ‘노빠(결코 노무현 어쩌고가 아니다)’를 자청했던 사람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두 노브레인을 동시에 얘기하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2002년, 차승우가 탈퇴한 기타 자리를 정민준이 메우며 정체를 달리 한 노브레인은 그 이후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현실적 난관을 그런대로 잘 헤쳐 온 걸로 나는 평가한다. 더구나 홍대의 인디씬과 제반 자본 투입의 구도 자체가 급변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제 2의 출발을 감행하게 됐음에도, 그들이 크라잉넛과 더불어 꾸준히 펑크 뮤지션으로서의 명맥을 유지시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결국 적정 수준 이상의 음악성을 갖춘 다른 멤버들이 건재했던 덕분이다. 허나 그렇다 해도, 3집 [안녕, Mary Poppins](2003)는 분명히 어떤 이들에게 러브레터를 날린 앨범이었지만 역시 다른 어떤 이들에겐 충격을 제대로 먹인 앨범이기도 하였다. 티비와 라디오에서 그들의 음악을 비교적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앨범이었던 반면, 나처럼 모난 성격을 가진 몇몇 이들을 눈물 흘리고 돌아서게 만든 앨범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몇몇 매체를 통해 이성우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차승우의 공백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팬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지금의 노브레인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원로격 펑크 밴드로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전제하지만, 이 글은 ‘회고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차승우가 함께 했던 당시 그들이 취했던 ‘펑크라는 제스처’ 속에는 과잉된 위악적 이미지가 곧잘 드러났고 필요 이상의 반골 기질이 일반 대중에겐 부담일 수 있었다. 허나 이성우의 쇳소리 보컬과 차승우의 반쯤 미친 기타 연주는 그들의 구구절절한 좌절담과 청춘예찬을 온전히 실어내는 데 있어 훌륭한 형식미였으며, ‘민중가요 삘’의 멜로디와 심플 코드의 ‘조선펑크적’ 변형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 진한 감동 그 이상을 주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달랐다.) 정규 1집의 “제발 나를”, 2집의 “태양은 머리 위에”와 같은 곡들이 상징적으로 전하는 애환과 분노의 진득함을 노브레인이 아닌 다른 밴드에게서 찾기란 어려웠다. 이러한 ‘무뇌 밴드’가 낳은 선율과 가사, 이 둘은 비록 반듯하게 잘 생기진 않았지만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었고, 그랬기에 그들의 노래는 당대의 한량한 청춘들과도 무난히 닮은꼴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현재의 ‘포스트(post)-노브레인’ 멤버들 말마따나, 차승우의 음악 세계는 확실히 ‘패배주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노브레인을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Boys, Be Ambitious”), 희망을 위해 앞으로 가자(“승리를 향해”), 희망의 별빛은 너를 향해(“별이 되어”) 등등의 이번 앨범에 담긴 노랫말을 들으며 더욱 비관적이 되어가는 나의 심리는 단지 포스트-노브레인을 향한 뒤틀린 불만 때문만일까?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스테레오타입의 ‘희망가’들은 불대가리 이성우의 걸걸한 악성과 그다지 좋은 하모니를 이루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허나 차승우는, 예전의 노브레인은, 적어도 황량했던 남색 청춘의 거리에서 풍기는 구체적인 회의와 냉소의 정서를 거칠게 맛볼 수 있는 기회만큼은 제공해주지 않았던가. 비록 노랫말의 기표들은 그가 길거리에 찍찍 뱉어대던 가래침처럼 그다지 보기에 좋지만은 않았지만, 패배적인 내용(가사)을 그에 어울리는 형식(곡조)에 담아 듣기 싫지 않은 푸념으로 변모시키는 재주만큼은 정말이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멤버가 교체됐다. 그렇게, 태평양을 어지럽게 항해하던 ‘바다사나이’는 두 주먹 불끈 쥔 ‘진짜사나이'(“승리를 향해”)로 바뀌어갔다. 결론적으로, 예전과 지금의 노브레인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다. 전자가 애틋한 멜로디의 ‘신세대 민중가요’였다면 후자는 미끈한 선율의 ‘운동회 응원가'(실제로 포스트-노브레인은 2002년에 이어 2006 독일 월드컵 응원가 “뉴 슛돌이”를 지난달에 발표했다)에 가깝다. 물론 청자로선 ‘선택’하여 ‘즐기면’ 그만일 것이다. 허나, 그래도 ‘기억’은 남는다. 그래서 그립다. 더구나 노브레인의 음악을 좋아했던 이유가 그러한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라면, 더 그럴 게다. 모호하긴 하지만, 어찌 됐건 인디 펑크록밴드에게 있어 찢어지는 기타 사운드나 심플 코드 주법보다 더 중요한 건 여전히 일종의 음악적 태도다. 이는 가락과 목소리부터 음반의 속지 디자인까지 모든 걸 결정한다. 차승우가 있던 시절의 노브레인은 미디 기기의 촌스런 음향을 적극 끌어와서도 그것을 구수하고 멋 나는 펑크로 만들어놓곤 했었다. 분명히 그런 멋은, 타이거 JK의 성의 없게 들리는 래핑이 어설프게 삽입된 “넌 내게 반했어(Feat. Tiger JK)”에서의 부담되는 멋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No Brain, 이들은 결코 뇌 없는 밴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들의 이름은 더 이상 내게 은유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돼버린 것 같다. ‘펑크’라 했을 때 럭스(Rux)나 게토 밤즈(Ghetto Bombs)보다 노브레인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다. ‘메리 포핀스’나 ‘야망을 품은 소년들’이 던지는 돌맹이는 그다지 아프지 않고, 그래서 고통의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한편, 한 대 퍼억 얻어맞고는 길 위에 털썩 주저앉아 꼭 아파서라기보단 자신의 유치한 청춘에 대한 울분과 회한 따위의 거친 정서 감응으로 펑펑 눈물을 쏟던 그 예전의 나날들이 떠오른다. 당시의 노브레인은 그런 수많은 청춘영화들의 OST였고, 그렇게 찍은 뮤직비디오는 지금도 가끔씩 내 기억 속에서 아련히 재생되곤 한다. 20060312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4/10 수록곡 1. 미친 듯 놀자 2. Boys, Be Ambitious 3. 승리를 향해 4. Here In Your Time 5. KIN 6. 웃으며 지낼 수 있어 7. 1!2!3!4! 8. 새빨간 거짓말 9. 별이 되어 10. 나를 외친다 11. 넌 내게 반했어 (feat. Tiger JK) 12. 관찰 결과 관련 글 노브레인 [Never Mind The Sex Pistols, Here’s The No Brain] 리뷰 – vol.3/no.10 [20010516] 노브레인 [Viva No Brain] 리뷰 – vol.3/no.15 [20010801]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리뷰 – vol.2/no.16 [20000816] 노브레인 [안녕, Marry Poppins] 리뷰 – vol.5/no.13 [20030701] 관련 사이트 노브레인 공식 사이트 http://www.nobrainpu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