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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우(Swallow) – Aresco- Sha Label/CJ Music, 2005

 

 

적당히 거칠어 더욱 뭉클한 서정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들의 언어는 메마르고, 바람같이 메마른 언어는 뜻을 낳지 못한다. 물론 이런 식의 아포리즘은 절반의 진실도 채 못 될지 모른다. 언어 자체가 비록 은유적이긴 해도 그것은 엄연히 그 은유 이상의 의미를 창출하곤 하니까. 다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낮게 널려있는 한낮의 겨울 햇살이 오늘따라 너무나 아릿하게 눈부셔올 때, 봄날의 저녁 어스름에 문득 떠오른 지난날의 장면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때, 이런 때 우리는, 나는 가끔씩 언어를 잃는다. 뭐 그렇다고 괜히 센치해질 필요는 없다. 이 넋두리는 스왈로우(Swallow)의 두 번째 앨범 [Aresco](2005)를 향한 뒤늦은 감상을 어떻게 쏟아내야 좋을지에 대한 머뭇거림의 흔적이자 사족일 뿐이니까. 근데, 이런 사족이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

음악이라는 예술 형식을 전통적 문학론에 빗대어 보자면, 그것은 단연 소설 쪽보다는 시(詩)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대체로 시작법 및 문학론에 있어 19세기 미국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비평가였던 애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의 시론을 따르는 편인데, 그에 따르면 시란 본디 ‘음악적’인 문자 예술이며 제대로 된 시라면 그 점을 무엇보다 잘 부각시킨 작품이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시론을 이렇게 연장하여 해석한다. 괜히 시답잖은 사상이나 이론 조각들을 끌어들여 하나마나한 분석, 어설픈 정치적 주관을 드러내는 것보단 차라리 시 자체가 가진 그 낭만적이고도 보수적인 음악성 자체를 청각적, 시각적 차원에서 충실히 조형해내는 것이야말로 좋은 시일 것이라고. 그리고 나아가 이는 대중음악의 경우에도 비슷한 관점을 던져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덧붙여, 스왈로우의 이기용이 시 읽기를 무척 좋아한다기에 떠오른 나의 이 단상이 단지 불필요한 사족으로만 들리지는 않기를 한편으로 바란다.)

음악 얘길 해보자. 사실 그는 허클베리핀의 데뷔 앨범 [18일의 수요일](1998) 때부터 동시대의 타 뮤지션들과 뚜렷이 차별되는 그만의 호흡과 소리선을 독특하게 가져가곤 했다. 물론 그다지 ‘튀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유별난 그의 창작법은 상대적으로 덜 회자된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기용(을 비롯한 유사한 색채의 밴드들)이 김민규, 정순용, 이석원, 조윤석 등의 멜로디메이커들과 확연한 차이를 갖는 창작 루트로 움직여왔다는 점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1998년, 국내의 어느 누구보다도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의 주변에 드리운 노스텔지어를 깊게 가슴에 묻고선 출발했던 그의 기타와 목소리를 기억한다. 확실히 그 부분은 이기용를 남달리 구별 지어주는 방점이었다. 영미권, 특히 영국 모던록 조류의 말랑말랑한 ‘팝 사운드’와 한국 및 일본의 전통적 창가가 가진 음계 밑으로 드리워진 ‘가요 록(?)’ 등의 작법으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그는 노래하곤 했다. 외려 이기용의 사운드는 지극히 최근 경향의 미국발 이모코어 내지 각종 인디록의 구성과 닮아있었다. 자유로운 코드 진행과 그 위로 펼쳐지는 선율 곡선, 그리고 악기들의 솔직한 음색에서 그러한 점은 감지된다. 한 세대 전 미국적인 포크 음악을 선보인 한대수의 본 앨범 참여가 이에 대한 왠지 모를 심증을 제공해주는 듯 느끼는 건 지나친 투사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메이저와 마이너의 곡조를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이기용의 기타 스케일과 그것을 아우르는 템포의 조율은 이번 솔로 음반에서도 제 스타일을 증명하고 있다. 2번 트랙 “눈 속의 겨울”이나 “Aresco”는 기타 리프에서부터 허클베리 핀의 울쩍쿵한 사운드와 무난히 닮아 있고, 깔끔한 얼터록넘버 “밤은 낮으로”는 견실하고 무게감 있는 소리의 미덕을 예전처럼 분출하고 있다. 허나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아무래도 1집 [Sun Insane](2004)보다 한층 ‘예뻐진’ 전반적인 트랙들의 외형일 것이다. 첫 곡 “Nobody Knows”로부터 출발하는 저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색조의 향연을 보라. 단조의 활용에 있어 발군의 능력을 가진 이기용은, 앨범 여기저기서 슬쩍슬쩍 반음을 내리짚거나 올려가며 장, 단조음을 적절히 섞어 받아들이기 쉬운 변칙 선율들을 따내고 있다. 그리고 이기용 특유의 까칠한 기타 스트링과 목소리는 사근사근히 그것과 썩 괜찮은 궁합을 이룬다.

“Three Seasons”나 “내가 너를 따라 간다면”은 유독 잘 세공된 느낌을 준다. 심지어는 이거 너무 말랑말랑, 부드러워진 건 아닌가, 하는 질투심이 들 정도로. (물론 농담이다.) 또한 “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는 그가 스스로 보도 자료를 통해 암시했듯, 유난히 가사가 입 안에서 맛있게 씹히는 곡이다. ‘햇살 좋은 날에 나는 또 어디로 / 아무 걱정 없이 길을 가네’라며 덤덤한 스케칭으로 운을 떼는 노랫말은, 유순한 멜로디의 흐름에 잘 올라타는 느낌이다. 이렇게 스왈로우는 루시드 폴, 스위트 피, 토마스 쿡 등 일련의 솔로 프로젝트들과는 꽤나 다른 차원의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진부한 문자들로 깊은 우물에 담긴 기억을 끌어올리듯 웅얼거리는 체념조의 시어와 무심한 듯 툭툭 악보를 수놓는 음표들의 배열은 허클베리 핀의 최근작 [올랭피오의 별](2004)에 이어 그가 아직은 음악적으로 건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스왈로우의 이번 앨범은, (언제나 그랬듯) 가사를 무지하게 잘 쓴다거나 천상의 멜로디를 들려주진 않더라도 그의 솔로 데뷔 앨범에 놓여있던 뭉툭한 요철들과 탁한 기운을 한 움큼씩 덜어냄으로써 차분한 한 걸음을 ‘대중을 향해’ 내딛고 있다. 이제 봄이고 꽃이 만발할 테지만,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을 염두에 둔다면 이 음반의 엷고 아스라한 따스함은 앞으로도 한동안 유효할 것 같다. 20060310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7/10

수록곡
1. Nobody Knows
2. 눈 속의 겨울
3. Three Seasons
4. 어디에도 없는 곳
5. Aresco
6. 내가 너를 따라간다면
7. 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
8. 밤은 낮으로
9. 너는 웃지 않고 난 웃었어
10. 어디에도 없는 곳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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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스왈로우 팬 카페
http://cafe.daum.net/projectswallow
허클베리 핀 공식 사이트
http://www.huckleberryfi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