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25055718-nunco눈뜨고코베인 – Pop to the People – 비트볼, 2005

 

 

아이러니와 자기분열, 그 사이의 페이소스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한국 대중음악을 듣다보면 한국어를 제대로 표현한 음악을 만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게 한국어로 대표되는 ‘한국적 정서’에 대한 강박증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거나 그런 작품들을 만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정도는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눈뜨고코베인의 데뷔 앨범 [Pop to the People](2005)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음악적으로는 ‘한국적 록 음악’을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산울림과 송골매를 계승하고 있다, 퍼즈 톤의 기타와 무그 신서사이저가 지배하는 사운드와 직관적으로 송골매와 산울림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 멜로디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목하는(혹은 주목해야하는) 대목은 이런 음악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이 노래에 담긴 ‘가사’, 그리고 그런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서사’다. 이들의 가사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 화자의 독백을 쏟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분열증적인 상황에서 사이키델릭한 묘사까지 이르기도 한다. 만약 ‘한국어로 된 록 음악의 정의’를 음악적으로 내려야 한다면 눈뜨고코베인은 거기에 가장 근접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내 인디씬에 국한한 서술이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 한국의 록 음악은 개러지 록과 트위팝 스타일의 사운드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반면 주류 대중음악에서는 여전히 하드록(혹은 록발라드 스타일을 변용한 음악)이 대세라는 점에서 보자면, 70년대를 복원하거나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눈뜨고코베인의 음악적 정서는 다소 구식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재미있는 농담이거나 코믹 밴드의 이미지로 이들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분히 이 밴드의 이름 때문이지만(알다시피, 눈뜨고코베인은 커트 코베인의 언어유희적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밴드에 대한 오해를 키우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눈뜨고코베인의 음악은 조금만 귀 기울여보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다, 잘 익은 오렌지를 꾹 눌러 짜면 맛있는 쥬스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음반의 첫 곡은 송골매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느낌의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이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이 단순한 트랙은 향수와 위트를 동시에 전달하는데, 향수를 전달하는 것은 사운드이고, 위트를 전달하는 것은 가사다. 이들의 가사는 짧은 구어체의 대사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곡의 화자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져 있고 그 아이러니한 상황에서의 독백은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그런 상황들은 연애나 가족 관계와 같은 사적이고 농밀한 관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별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 오로지 위선적인 모습과 가식적인 면 밖에 떠오르지 않는 기막힌 상황을 유쾌하게 묘사하는 “그 자식 사랑했네”와 막 이별을 하고 돌아가던 중에 문득, 헤어진 사람 방에 중요한 걸 놔두고 온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아이러니(“헤어진 사람 방에 중요한 걸 깜빡 놔두고 왔네”)와 서울로 상경해 취업난에 휘둘리며 가족과 거짓 통화를 하는 정서(“네 종종 전화 할게요”)의 패러독스를 통해 실업과 가족 해체를 비롯한 온갖 ‘현대적인 문제들’을 동시에 생각하게 할 때도 있다. 또한 과대망상으로부터 자기 분열증으로까지 증식하며 뜻밖의 비감어린 정서를 전달하는 “외계인이 날 납치할거야”, “사이키 댄스”, “얄리는 내가 죽였다”의 거침없고 상징적인 가사들은 사운드와 함께 노랫말이 어떻게 서사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노래들과 함께 평범한 가사들로 된 팝 음악들도 존재한다. “난 속이 좁은가봐”, “별이 되었네”, “니가 내 방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은 곡들은, 어쩌면 앨범의 제목과 밴드의 의지대로 ‘대중을 위한 팝 음악’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뜨고코베인의 아우라는 노랫말, 특히 한국어의 감질맛을 잘 살린 가사에 있다. 코믹하고 위트가 넘치는, 복고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멜로디가 음반을 지배하고 있어도, 이들이 그려내는 서사는 결과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리고 이런 서사의 비극성은 아이러니와 자기분열에 있다, 마치 ‘어차피 지금 세상은 비극이다, 하지만 그 비극은 꽤 웃기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눈뜨고코베인의 노래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내몰린 채 블랙코미디적인 상황에 빠지고, 청자들은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낄낄거리며 웃게 하다가 제법 뭉클해지거나 서늘해지는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간 접한 한국 음반들 중에서는 드물었던, 꽤 좋은 경험이다. 더해서, 이런 경험을 소수가 누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창작자나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조금은, 아니 꽤나 많이 부당하지 않은가. 20060123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이 글은 대중문화 웹진 [컬처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2. 그 자식 사랑했네
3. 헤어진 사람 방에 중요한 걸 깜박 놔두고 왔네
4. 외계인이 날 납치할 거야
5. 내가 그렇게도 무섭나요
6. 어색한 관계
7. 네 종종 전화할게요
8. 난 속이 좁은가 봐
9. 싸이키댄스
10. 별이 되었네
11. 얄리는 내가 죽였다
12. 니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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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파는 물건](EP) 리뷰 – vol.5/no.24 [20031216]

관련 사이트
눈뜨고코베인 공식 홈페이지
http://www.nunc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