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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들밤비(Fiddle Bambi) – Bambi Rocks – 비트볼, 2005

 

 

깊은 산 속 왁자지껄 옹달샘

한국에서 록 밴드가 자의식을 갖지 않기란 어렵다. 그건 밴드 멤버들 때문만은 아니다. 록이 무거운 음악으로 취급받았던 역사는 길다. 무거운 음악이 진지한 음악으로 여겨지던 역사도 길다. 진지함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통해 맥락을 조직하는 것은 평론가의 버릇이다. 평론가는 문화 현상의 일부이고, 한국의 문화는 의미와 태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인디 뮤지션들은 자신의 작업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태도로 인해 의미의 맥락 속에 갇혀 버리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뮤지션은 의미에 저항함으로써 의미를 생산했고 어떤 뮤지션은 그 의미에 순응함으로써 아무 의미도 거두지 못했다. 그 집요한 관계망에서 벗어난 뮤지션은 드물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미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때를 기다려야 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때가 어쩔 수 없이 오고야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야 음악 그 자체의 쾌락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음반들이 나오는 것은 의미가 쓸모 없어진 시대의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그것이 대충 만든 파티 하우스/라운지나 개그 같은 로큰롤, 떨이로 파는 화장품 같은 포크 팝의 얼굴을 쓰고 나타나는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이지만. 피들밤비(Fiddle Bambi)의 데뷔 음반은 바로 그런 쾌락적인 음반들 중 가장 귀에 잘 밟히는 음반이다. 간단히 말해, 가장 즐거운 음반이다.

첫 곡 “엄마, 화장실”은 음반의 방향을 요약한다. 까끌까끌한 퍼즈 톤 기타가 바탕을 깔면 드럼에 맞춰 키보드가 온음계로만 만든, 동요나 CCM에서 쓰일 법한 화음을 경쾌하게 누른다. 이렇게 둘러놓은 테두리에서 의자 뺏기게임 몇 바퀴만 돌면 금방 외울 수 있는 멜로디가 꾸밈없는 남녀 보컬에 실려 키보드를 따라가며 노래한다. “몸 위에 내려 몸을 숨겨주는 것/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살며시 팔을 빼고/화장실에 다녀오는 엄마처럼/돌아오는 것”

만약 1990년대의 평자가 이 곡을 들었다면 그는 ‘기성품 같은 의미를 생산하는 주류 문화에 대해 의미 없음의 미학을 간결하게 강조한다. 거기에 이 곡의 의미가 있다’고 썼을지도 모른다. 2000년대의 평자라면? ‘좋다’고 쓸 것이다. 물론 둘 다 이 곡에서 산울림의 흔적(별 조작을 하지 않은 퍼즈 톤의 기타와 동요 같은 멜로디)을 감지할 것이고, 뜻을 전달하기보다는 멜로디를 실어 나르는 데 충실한 가사에서 삐삐 밴드가 활동하던 ‘문화혁명’ 시기의 그림자를 응시하게 될 것이다(특히 “아이스 레몬 그린티”, “빠나나 우유”). 이 곡은 인상 깊은 멜로디를 가진 복고적 록 넘버지만 그 복고는 ‘거라지’가 아니라 ‘창고’를 지향한다.

음반의 나머지 곡들 역시 큰 차이는 없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열한 곡을 꼭꼭 눌러 담았고, 어느 곡이나 간결하고 훌륭한 멜로디 감각과 ‘창고적’ 청량함을 머금는다. 개인적으로 초반부 다섯 번째 곡까지가 인상에 훨씬 더 남는 것은 취향의 차이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아스카!”는 최근 인디 씬을 휩쓸고 있는 ‘일본화하기(Japanizing)’보다는 [울트라맨]에 대한 추억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빠나나 우유”를 문근영 스타일의 여자 모델이 나오는 바나나 우유 광고음악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사람”과 “여보, 가지마”에서는 제법 본격적인 ‘싸이키 록’을 선보이기도 한다.

때로 음반의 복고적 청량함이 장터 천막 바닥에 까는 비닐 깔판처럼 비현실적으로 파랗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음반이 지닌 매력에 흙탕물을 뿌릴 정도는 아니다. 또한 이 음반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는 다른 음반들이 없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음반에 정이 가는 까닭은, 이 음반이 바로 그런 비닐 깔판처럼 친근하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Bambi Rocks]는 의미가 불필요한 시절에 가장 필요한 것, 의미에 매이지 않는 의미를 만들어낸 음반이다. 그게 이 음반의 의미이다. “아이스 레몬 그린티”의 가사처럼, [Bambi Rocks]의 ‘주문이 밀려오길’ 바란다. 밤 밤 비밤. 20060225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엄마, 화장실
2. 아이스 레몬 그린티
3. My Melody
4. 아스카!
5. 빠나나 우유
6. Love Again In The Park
7. Ray Of Light
8. 돌이
9. 무우밭, 배추밭
10. 눈사람
11. 여보, 가지마!

관련 사이트
피들밤비 공식 사이트
http://www.fiddlebamb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