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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ailor – On The Outside – EMI, 2005

 

 

변덕쟁이들이 던진 물음표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프론트맨 제임스 월시(James Walsh)는 지난 2003년 두 번째 앨범 [Silence Is Easy] 발표 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다른 밴드들이 미니멀하고 블루지한 노래를 만들어내려 애쓸 때 우리는 반대로 가능한 한 크고 넓게 펼쳐진 스크린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실제로 그들의 2집은 데뷔 앨범 [Love Is Here](2001)와는 엄연히 다른 제스처를 취한 행보였고, 그 점에 관한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1집에서 부각된 “Lullaby”나 “Fever”에서의 압착된 우울함은 여전히 다음 앨범에서도 그러한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월시의 성대를 통해 잘 발산되었고, 오히려 “Telling Them”, “White Dove” 등의 ‘완전한 브릿팝’ 트랙들을 통해 점령한 ‘영국 국민가요’다운 작법의 고지는 상당히 높아보였다. 요컨대, 트래비스(Travis)나 콜드플레이(Coldplay)의 견고한 대중성에 견줄 만큼 풍성하고 감미로운, 그래서 대중에게 더욱 더 다가가기 쉬운 멜로디메이킹과 편곡상의 센스를 보여준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의 어느 가을, 이 4인조 밴드는 세 번째 정규앨범 [On The Outside](2005)로 돌아왔다. 헌데 가을밤의 고즈넉한 정취 속에서 이 ‘별의 항해자들’과 함께 달콤씁쓸한 감정을 공유하고자 했던 기존의 팬들은 이들의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는 잠시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팬들의 반응은 솔직했을 뿐 아니라 정확했다. 1집에서 2집으로의 이행이 갖는 간극보다도 더 크게 다가오는 새 앨범의 변화는 곧 총체적인 사운드의 변덕스러움 그 자체에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스타세일러의 이러한 변덕 요인으로는 우선 메인 프로듀서의 변경이 가장 크게 작용한 듯 보인다. 2집을 내놓으며 ‘크고 넓은’ 사운드의 지향점을 천명했던 월시는 그 앨범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던 필 스펙터(Phil Spector)와의 합동 결과물에도 큰 만족을 못 느꼈던 것일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번 앨범에는 미국의 저명한 프로듀서 롭 슈냅((Rob Schnapf)이 전반적인 색채 조성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바인스(Vines), 벡(Beck) 등의 앨범에 믹싱 및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후기작들(엘리엇 자신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던 [Either/Or], [XO], [Figure 8] 등)을 더욱 매끈하게 다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타세일러의 세 번째 앨범에서 피더(Feeder)나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쪽에 가까운 음향적 색감이 은근히 전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이펙터의 활용, 기타와 드럼 루프의 모양새, 그리고 보컬의 선율을 따내는 방식 모두에서 적잖은 변화가 감지된다.

첫 트랙이자 첫 싱글 “In The Crossfire”부터 월시는 목청에 (바이브레이션이 절로 들어갈 정도로) 물리적 감정을 잔뜩 불어넣는다. 그는 이제 절제에 대한 관심은 많이 사그라진 듯 보인다. 이러한 창법은 명백히 이전의 그 어떠한 디스코그라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것이다. 팝밴드의 구별적 특징에 있어 어쨌거나 보컬 파트의 멜로디라인이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스타세일러의 존재감에 있어 월시의 목소리는 그것의 구 할 이상에 복무할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작은 변화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보다 내적인 측면에서 짚어낼 만한 변화로는 전반적인 악곡 구성 방식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게다. 예컨대 이번 앨범의 주된 색채를 대변하듯 강하고 매끈한 구성미를 자랑하는 “Counterfeit Life”나 “Way Back Home”과 같은 곡들을 보라. 예전의 스타세일러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코드 전개와 편곡, 훅과 브릿지 등에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껍고 묵직한 기타 리프를 바닥에 깔고는 무난한 코러스 라인을 반복적으로 어필하는 저 말쑥한 모습은, 심지어 몇몇 팬들로부터 모종의(프로듀서 롭 슈냅이 제임스 월시를 완벽하게 꼬드겼다는 식의) 음모론을 듣게 된다한들 별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의 변덕스러움을 스스로 조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평가의 문제는 또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결국 음반 자체가 후지진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변덕에 대한 투정을 잠시만 그치고, 시디든 엠피쓰리든 일단 차분히 재생을 시켜보자. 어떤가? 별로라고? 다시 묻겠다. 뭐 그런대로 괜찮다고 보긴 어려운가? 그래도 싫다고 딱 잘라 말한다면, 물론 그 역시 잘못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작들에서 빚어놓은 때깔과 감촉을 완벽하게 변모시키고 있는 본 앨범은 어찌됐든 기존의 팬들에게 일차적으로 직무유기이리라. 하지만 다음과 같은 관점이 유효하다는 점에도 시선을 둘 필요는 있다. 이전 앨범들에서 서글픈 감수성을 조장(?)하는데 일조해오던 건반의 울림은 풍부한 기타 사운드와의 화학적 결합으로 상당량의 서정성을 스스로 걷어내고는 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난 데가 있어 보이는 이들 특유의 멜로디 패턴과 태생적으로 지녀온 음향적 건조함 따위의 개성들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 더불어 딱히 처지는 트랙을 끄집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트랙에 있어 중간 이상의 송라이팅에 충실한 부분도 돋보이며, 여기에 나름의 도발성이 심심찮게 가미되고 있는 점은 이 음반의 색다른 미덕 중 하나다.

가령 “In My Blood”는 6/8박과 5/8박의 리듬이 탁월한 드러밍과 기타 연주의 조화에 힘입어 자연스레 교차되며 완결되는 인상적인 노래다. 또한 “Get Out While You Can”에서는 아예 안정적인 5/4박자 록을 일관된 무드 속에서 들려주고 있다. 이전의 앨범들이 그랬듯 끝까지 뒷심을 잃지 않는 강인한 지구력도 칭찬할 만하다. 10번 트랙 “White Light”에서 울려 퍼지는 웰시의 절절한 외침 속엔 여전히 매혹적인 호소력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트랙 “Jeremiah”에서 당신은 어쩌면 이들과의 ‘옛 기억’이 문득 떠올라 자칫하면 울컥, 하며 눈시울을 붉힐 지도 모르겠다. 앨범을 통틀어 유일한 어쿠스틱 넘버인 이 곡은, 이전의 스타세일러식 구슬픈 노래들, 예컨대 “Alcoholic” 혹은 “She Just Wept”와는 명백한 차이를 보이지만 외려 그와는 다른 차원의 먹먹한 센티멘털리즘을 풀풀 풍겨내고 있다. 가늘게 떨리는 신디사이저의 단선율 위로 통기타의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가 소박하게 펼쳐지고, 한결 성숙해진 음색을 품은 웰시의 곡조가 아름다운 화성으로 귀여운 비관론을 노래한다. 그래서, 이 곡이 끝날 때쯤 떠오르는 결론적 문구들은 대충 이렇다. 당분이 얼마간 빠져나간 자리에 씁쓸한 향신료가 과다 첨가되긴 했지만, 그래도 겸연쩍게나마 들어줄만한 음반. 앞으로의 이들 행로가 여전히 궁금해지는 음반. 시선을 잡아끄는 물음표가 담겨 있는 음반. 20051230 | 김영진 young_gean@hotmail.com

6/10

수록곡
1. In The Crossfire
2. Counterfeit Life
3. In My Blood
4. Faith Hope Love
5. I Don’t Know
6. Way Back Home
7. Keep Us Together
8. Get Out While You Can
9. This Time
10. White Light
11. Jer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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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ailor [Love Is Here] 리뷰 – vol.3/no.22 [200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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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Starsailor 공식 사이트
http://www.starsailo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