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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rd-Fi “Cash Machine”
: 런던 근교 스테인스(Staines) 출신의 록 밴드 하드-파이(Hard-Fi)의 데뷔작 [Stars Of CCTV]는 2005년 발매된 록 음반 중 발군에 속한다. 본국에서는 ‘스카 리바이벌리스트(ska-revivalist)’라는 말을 듣고 있고 클래시(The Clash)나 매드니스(Madness)와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지만, 적어도 음반의 오프닝인 이 곡만큼은 맨선(Mansun)이 만든 거라지 펑크 같다. 하모니카의 짧은 인트로에 이어 기타와 드럼이 동시에 후려치는 비트와 단순한 라인의 베이스가 바탕을 그리면 그 위로 보컬인 리차드 아처(Richard Archer)가 스트리츠(The Streets)나 디지 라스칼(Dizzee Rascal)을 연상시키는 가사를 또렷한 훅으로 노래한다. “I’m working for the cash machine”이라는 후렴구는 세계 어느 곳에서건 2,30대 청년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There’s a hole in my pocket”이라는 절규도.

2. JJ72 “Coming Home”
: 이 밴드는 소포모어의 실패를 훌륭하게 극복할 공산이 크다. 인터넷에 유출된 네 곡 짜리 샘플 음반에 들어있는 곡들로만 판단한다면, 확실히 극복할 것이다. 곧 발매될 새 음반의 첫 싱글인 “Coming Home”은 JJ72가 [I To Sky](2002)의 야심 찬 실패를 통해 모종의 교훈을 얻었음과 동시에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2000)의 차분하고 섬세한 매력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영국산 기타 록이 착취해 온 모든 것들(듣기 좋게 거친 기타, 잼처럼 살짝 바른 신서사이저 스트링과 은은하게 울리는 첼로, 섬약한 가사, 등등)은 이 곡에서도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여기서 기꺼이 착취당하겠다는 자세로 일한다. 훌륭한 멜로디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이 원래 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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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anye West “Diamond From Siera Leone (Remix) (feat. Jay-Z)”
: 카니예 웨스트는 커먼(Common)과 함께 작업한 [Be]에서 이미 2005년의 힙합 클래식이라 부를 만한 비트를 만들어 냈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의 음반을 2005년의 힙합 클래식에 올려놓고자 하고 있으며,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Collage Dropout]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발매된 그의 두 번째 음반 [Late Registration]은 [Collage Dropout]보다는 [Be]와 더 밀접한 근친관계를 엮고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샘플 장난(보컬 샘플의 피치를 한껏 올려 생쥐들의 합창으로 바꿔 버리는)’과 통통 튀는 다이내믹한 비트 대신, 좀 더 무겁고 느린 비트와 꼼꼼하게 뒤엉킨 리듬 텍스처, 클래식 소울의 질감을 세련되게 살려내는 사운드 프로듀싱을 택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껏 과시한다. 음반 중 거의 유일하게 귀를 잡아끄는 샘플이 등장하는 이 곡에는 제이 지(Jay-Z)가 목소리를 빌려주고 있는데,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제이 지와 같은 카리스마가 아닐까.

4. Goldfrapp “Ooh La La”
: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의 더 난삽한 버전? 금속 거품처럼 터지는 신서사이저 노이즈와 같이 흐르는 중독적인 일렉트로 비트를 골자로 하여 ‘글래머러스’한 사운드가 휘황찬란하게 퍼지는 골드프랩의 새 음반 [Supernature]는 확실히 이들의 음반 중 가장 잘 갈고 닦인 소리를 담고 있다. 첫 싱글인 이 곡은 복잡한 세상만사 ‘우랄라’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쾌락 순도 108%의 가사를 뇌까리고 있다. 사실 이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 골드프랩의 신보는 분명 전작들에 비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다.

5. James Blunt “High”
: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 대미언 라이스(Damien Rice)와 비교되면서 홍보되고 있는 영국의 싱어 송라이터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는 이 사이트의 몇몇 이용자가 ‘찌질하다’고 부를 만한 음악을 만들고 부른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국 차트를 뒤흔들었던 “Beautiful”도 괜찮지만 좀 더 ‘기타 록’스러운 “High”도 좋은 선택이다. 여리고 높은 가성과 적당히 거친 기타. 오래오래 곁에 둘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가을에는 옆에 두고 싶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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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epeche Mode “Precious”
: 이번 달 싱글 리뷰가 어쩐지 ‘거의 영국음악 특집’으로 가는 것 같긴 하지만 디페시 모드의 오랜 팬 중 하나로서 그들의 새 싱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기막힌 각운을 구사하는 고어의 가사와 간결하고 세련되게 다듬은 소리는 [Exciter]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긴장은 훨씬 덜하다. 볼륨을 높여서 일견 단순하게 들리는 소리결을 헤친 뒤 그 안에 얽힌 치밀한 텍스처를 살펴보고 나서도 편안하다기보단 맥이 빠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 싱글만으로 그들의 새 음반 [Playing The Angel]을 섣불리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못할 이유도 사실 없다. 기대치를 엄청나게 높여놨던 뉴 오더(New Order)보다는 솔직한 것인지도.

7. The Flaming Lips “Bohemian Rhapsody”
: 곧 발매되는 퀸(Queen)의 트리뷰트 음반 [Killer Queen: A Tribute To Queen]은 기획력의 승리다. 개빈 디그로(Gavin DeGraw),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 조스 스톤(Joss Stone) 같은 잘 나가는 신예부터 역전의 용사 로스 로보스(Los Lobos)까지 아우르는 참여 뮤지션 목록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 셈인 것이다. 그 와중에도 “Bohemian Rhapsody”는 이 음반에서 두 번이나 리메이크되었는데, 나로서는 원곡의 ‘하드 로킹’한 부분에 충실한 콘스탄틴 M(Constantine M)보다 ‘몽롱함’에 초점을 맞춘 플레이밍 립스의 리메이크가 더 흥미롭다. 그러나 최초의 ‘신기함’이 가라앉게 되면 이 리메이크가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잽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명곡이란 게 그렇듯, 곡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 아닐까. 2005092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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