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8022901-black-honeyFrank Black – Honeycomb – Back Porch/Virgin, 2005

 

 

원숙하면서도 예민한 컨트리 록의 완성

픽시스(The Pixies)의 리더 프랭크 블랙(Frank Black)은 올해 4월로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이제 의심할 바 없는 ‘대머리 뚱보 아저씨’가 된 그가 전성기 픽시스 시절의 날카롭고 에너지 넘치는 록 음악을 다시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확신이 되었고 그만큼 그가 어떤 음악으로 돌파구를 찾을지도 관심거리였다. 물론 힌트는 충분히 있었다. 즉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끌었던 프랭크 블랙 앤 더 캐쏠릭스(Frank Black & the Catholics)를 통해 블루스, 컨트리, 서던 록(southern rock) 등의 아메리칸 루츠(roots)와 라틴 음악에 기대어 늙어갈 것으로 보였다. 그는 백 밴드 캐쏠릭스와 함께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작년에는 픽시스(The Pixies)를 재결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음악적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편, 캐쏠릭스를 결성하기 이전 포스트 픽시스 시기에 발표한 3장의 솔로 앨범의 경우 분명 픽시스의 미니멀한 로-파이 펑크 스타일과는 달랐지만 거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한 로큰롤이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가 루츠 록으로 선회하기 전의 과도기적 작품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프랭크 블랙의 4번째 솔로 앨범 [Honeycomb]은 1996년에 발표된 3집 [The Cult of Ray] 이후 거의 10년 만에 발표되었다. 먼저 이 앨범에도 두드러진 변화는 없다. 말하자면 그가 픽시스 시절의 거친 록 사운드를 재현했다거나 실험적 음향을 도입했다거나 하는 방식의 변화 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구닥다리 컨트리/서던 록을 감각적으로 되살려내는 그의 송 라이팅 능력과 안정된 연주력이 경지에 가까워졌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틀에 박힌 변화보다 의미 있다. 또한 근작인 [Show Me Your Tears](2003)에서도 블루스와 컨트리 음악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일렉트릭 기타 디스토션이 강하게 실린 업텝포의 로킹한 트랙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Honeycomb]은 어쿠스틱 악기 위주의 안정되고 다채로운 연주를 바탕으로 픽시스의 흔적을 과감히 지우고 그간의 루츠 음악에 대한 시도를 집대성한다.

미디 템포의 컨트리 송 “Selkie Bride”는 사운드는 평범하지만, 셀키(selkie)*를 의인화하여 절박하게 사랑을 호소하고 도착적인 에로티시즘을 가미한 가사는 미지의 대양과 변태성욕에 집착했던 픽시스 시절의 악명(?)을 떠올리게 해 흥미롭다. “Strange Goodbye”는 블랙과 그의 아내 진(Jean)의 듀엣 곡인데, 쾌활한 컨트리 리듬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혼을 앞두고 있는 두 사람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곡이다(이 앨범에 진은 보컬로 새 애인 바이올릿은 패키지 디자인으로 참여했는데 다소 껄끄러운 사적인 관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들 프랭크 사단의 충실한 조력자들이지 싶다). 앨범에서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Sunday Sunny Mill Valley Groove Day”는 텍사스 출신의 컨트리 뮤지션 덕 샘(Doug Sahm)이 이끈 서 더글러스 퀸텟(The Sir Douglas Quintet)의 커버곡으로서 살랑거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오르간 연주, 아련한 하모니카 연주가 조화된 달콤한 선샤인 팝송으로 변신하고 있다. 애인 바이올릿 클라크(Violet Clark)를 위한 그의 닭살 돋는 러브 송인 “Violet”과 픽시스 시절의 변태적이고 파괴적인 사랑 노래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프랭크 블랙은 이 앨범을 통해 얼터너티브의 청년 전사에서 원숙하지만 예민하기도 한 중년 컨트리 싱어로의 홀로서기를 완성해낸 듯하다. “I Burn Today”, “Lone Child”, “Atom In My Heart” 등 다소 무미건조하게 들리는 컨트리 송들이나 “My Life Is In Storage” 같은 진득한 블루스 넘버도 이제 기타 하나 들고 시골 선술집에 앉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편안하다. 무엇보다 이 앨범은 픽시스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픽시스 시절 극단적으로 질러대던 날카로움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소 중성적이었던 보이스 톤은 이제 완전히 착 가라앉은 구성진 저음으로 변해 있다(“Another Velvet Nightmare”의 보컬은 중후하기까지 하다). 특히, 1960년대 전설적인 소울 가수였던 제임스 카(James Carr)의 명곡을 커버한 “Dark End Of The Street”에서는 꽤나 멋진 R&B 창법을 선보이기도 한다.

[Honeycomb]은 캐쏠릭스의 앨범들이 그랬듯이 픽시스를 기억하는 록 팬들과 건초 냄새 물씬 나는 미국적인 음악을 즐기지 않는 리스너들에게는 별 다른 감흥을 전해주지 못할 것이다. 음악감상에 세대라는 변수를 갖다 붙이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 앨범은 어쩔 수 없이 아저씨/아줌마를 위한 음악이다. 그러나 늘어지는 무드의 구린 어덜트 뮤직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혹에 접어든 뚱보 아저씨의 세련된 컨트리 록의 매력은 거부하기 어렵다. 20050807 | 장육 jyook@hitel.net

8/10

* 인어 같은 생김새의 아일랜드 바다의 신비한 생물체

수록곡
1. Selkie Bride
2. I Burn Today
3. Lone Child
4. Another Velvet Nightmare
5. Dark End Of The Street
6. Go Find Your Saint
7. Song Of The Shrimp
8. Strange Goodbye
9. Sunday Sunny Mill Valley Groove Day
10. Honeycomb
11. My Life Is In Storage
12. Atom In My Heart
13. Violet
14. Sing For Joy

관련 글
Frank Black [Frank Black] 리뷰 – vol.5/no.16 [20030816]

관련 영상

“I Burn Today” ([Henry Rollins show] 중)

관련 사이트
Frank Black 공식 팬 사이트
http://www.frankblack.net
Back Porch Records 공식 사이트
http://www.backporchrecor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