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illaz – Demon Days – Virgin, 2005 정갈하고 담백한 웰메이드 푸드의 유쾌함 고릴라즈(Gorillaz)의 1집 앨범 [Gorillaz](2001)를 염두에 두고 [Demon Days](2005)를 들은 사람은 약간 실망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분위기의 힙합으로 전세계적인 스매시 히트 싱글이 된 “Clint Eastwood”와 비교해서 이번 앨범의 첫 싱글인 “Feel Good Inc.”가 그 정도의 인상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과 뮤직 비디오의 분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세련되어졌지만 음악은 “나쁘진 않지만 딱 확 끌리지도 않는군”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앨범 전체를 감상해도 역시 딱히 귀에 확 끌리는 싱글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앨범을 몇 번 듣고 나면 어느새 몇몇 곡을 혼자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그런 종류의 물건이다. 적어도 [Gorillaz]가 ‘누가 들어도 잘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는’ 앨범은 아니었다. 거칠고 엉성한 면모가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면모도 분명히 갖추고 있었다. 브릿팝과 힙합을 자유분방하게 결합한 음악 스타일은 제이미 휴렛(Jamie Hewlett, 1980년대 후반의 유명 만화 [Tank Girl]의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잘 어울렸다. 거기에 ‘가상의 캐릭터들이 만든 밴드’라는 흥미요소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Clint Eastwood”라는 귀를 놀라게 하는 싱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600만장의 판매고로 나타났다. 멤버들도 고백하는 바 [Gorillaz]는 자신들조차 놀랄 정도로 잘 팔린 앨범이었다. 블러(Blur)의 연이은 미국 진출 좌절로 의기소침해 있던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Noodle)에게는 더욱이 ‘기쁘지만 어이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성을 다 해 만든 블러 앨범이 넘지 못한 벽을 고릴라들이 장난치듯이 넘어 버렸으니… 예상을 뛰어넘는 성취는 다음 앨범에 대한 고민을 강제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Demon Days]는 5년만에 나온 정규 앨범이다. 결과적으로 고릴라즈 2집은 고릴라즈라는 밴드의 기본 분위기와 기조를 그대로 가져가되, 음악적으로는 1집을 의식하지 않고 기본으로부터 다시 쌓아올린 앨범이라는 인상이다. 이 앨범에 제2의 “Clint Eastwood”를 수록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없다. 그런 시도가 있다면 전작의 히트 싱글을 패러디하듯이 “Dirty Harry”라는 곡을 수록한 것이 전부일 것이다.* 대신 “Feel Good Inc.”의 들을수록 감칠맛 나는 분위기와 맨체스터 씬을 떠올리게 만드는 “Dare”의 유연하고 말랑한 그루브가 있다. [Demon Days]는 잘 다듬어진 힙합을 중심으로 그 안에 분방한 성향을 정갈하게 융화해 내었다. 창작과 녹음, 믹싱의 전 과정이 안정감 있게 잘 감독된 산물이라고 여겨진다. 관련해서 앨범을 관장하는 영향력의 변동도 느껴진다. [Gorillaz]에서는 대부분의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소리의 질감에서 알반의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5/4” 같은 곡은 아예 블러의 2집 [Modern Life Is Rubbish]에 실려 있었다 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Demon Days]에서는 멜로디와 훅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보컬에서는 알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느껴지지만, 댄저 마우스(Danger Mouse)가 중심이 된 프로듀싱이 모든 아이디어들을 안정감 있게 다듬고 능숙하게 배치하고 있다. 즉 [Demon Days]는 안정적이고 세련된 프로듀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다. ‘로우 파이(lo-fi)한 작가주의의 영혼’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이 점이 마이너스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수행된 프로듀싱이라는 것이 ‘개성이라곤 없고 선구적인 음악적 시도들의 무난한 재탕’이라는 것과 언제나 동일하진 않다. 웰메이드(well-made)하다는 것은 대부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앨범에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생경한 요소는 별로 없다. 즉 에미넴(Eminem) 식의 파워 넘치는 그루브와 공격적인 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심심하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고릴라즈가 자신들만의 개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선정적이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면 즐겁다. 이 앨범은 화끈한 칠리 소스를 가미한 핫도그라기보다 오히려 일식 요리에 가깝게 정갈하고 담백하다. 물론 그래도 1집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은 역시 취향차이일 터이다. 대중의 지지도 나쁘지 않은 듯 7월 27일 현재 “Feel Good Inc.”가 빌보드 싱글차트 25위에, 영국에서는 10위 안에 들어 있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는 14위를 기록하고 있다(*편집자주: 이 글이 올라간 현재 빌보드 앨범차트 8위 랭크). 콜드플레이(Coldplay)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전작의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가볍게 떨쳐냈다고 할 만 하다. 20050730 | 김남훈 kkamakgui@hanmail.com 8/10 P.S. 한국 라이선스 반에는 고릴라즈 캐릭터들이 그려진 뱃지가 들어있다(영국반에는 없다). * 유명 형사 영화 [더티 하리(Dirty Harry)] 시리즈의 주연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이 곡은 데이먼 알반의 자가제작 솔로 앨범 [Democrazy](2003)에 “Need A Gun”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솔로 앨범의 러프한 초벌녹음이 세련된 프로듀싱으로 완성되어 있으므로 이 두 버전을 비교하는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을 것이다. 수록곡 1. Intro 2. Last Living Souls 3. Kids With Guns 4. O Green World 5. Dirty Harry 6. Feel Good Inc. 7. El Manana 8. Every Planet We Reach Is Dead 9. November Has Come 10. All Alone 11. White Light 12. Dare 13. Fire Coming Out Of The Monkey\’s Head 14. Don\’t Get Lost In Heaven 15. Demon Days 관련 글 Gorillaz [Gorillaz] 리뷰 – vol.3/no.10 [20010516] 관련 영상 “Dare” 관련 사이트 Gorillaz 공식 사이트 http://www.gorilla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