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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톡식바이어스플뤠르아이비(Toxicbiasfleurivy)는 사운드를 재료로 미술작품을 생산한다는 목표 아래 조직된 프로젝트 팀이다. 이를 위해 이들이 동원한 것은 에펠탑을 밑에서 찍은 사진 같은 음반 커버와 랩탑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설치미술의 표현양식에 최대한 접근\\\”하면서 \\\”음악적인 디테일\\\”보다는 \\\”압축된 구성을 통한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고 데뷔작인 [Archetype Objet]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나온 결과물은 시각적인 효과보다는 청각적인 디테일이 잘 살아 있는 앰비언트 음반이다. 이것은 예술의 아이러니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음반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은 \\\’문득문득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꼭 집어서 말하라면 [Selected Ambient Works 85∼92](1993)와 [I Care Because You Do](1995) 시기의 에이펙스 트윈이다. \\\”Circle Is Tri-Square\\\”나 \\\”Diuty\\\”의 혼란을 정돈하는 것은 에이펙스와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를 뒤섞은 것처럼 칼칼하게 귀청을 때리는 브레이크비트다. \\\”Fluxus Sexy Quartet\\\”의 주변을 불붙은 고리처럼 둘러싼 ECM 스타일의 재즈 색소폰 루프를 서커스단에 팔려간 시지프스라도 된 것처럼 계속 뛰어넘는 것 또한 이 비트다. 소리의 질감과 배치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도 처음 음반을 들을 때 품었던 호의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Multi Image Atelier\\\”에서 특히 그 감정은 부풀어오른다. 시카고(Chicago) 스타일의 AOR(adult-oriented rock)에서 따온 것 같은 키보드 샘플에 이어 작동중인 타임머신에 달린 시계처럼 잘근잘근 움직이는 비트가 흐르는 가운데 밝고 어두운 무드가 연이어 자리바꿈을 하는 이 곡은 완급 조절에 있어서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품질을 선보인다. 분위기의 만듦새는 흉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윈도 미디어의 컴퓨터 그래픽과 잘 어울릴 것 같은 \\\”Jean Tinguely\\\”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샘플과 노이즈로 짠 그물침대에 누워 캔맥주 뚜껑을 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나는 사운드가 미술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음반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인 비유를 쓰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최근 가끔 사용되는 \\\’무규칙 이종예술\\\’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유는 짧게 말하겠다. 나는 \\\’즉각적으로 전체를 본 다음 천천히 세부를 살피고 다시 전체를 훑는\\\’ 것이 평범한 미술 감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범한 음악 감상은 \\\’즉각적으로 세부를 들은 다음 돌이켜 천천히 전체를 살핀 뒤 세부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범주적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들은 바 없다. 이 음반의 소리가 실제의 설치 미술과 결합했을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미술 작품이 있는 한 그 효과를 \\\’음악을 통해 구현된 미술의 개념\\\’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의 \\\’공간적 구성\\\’을 위해 이들이 쏟은 노력이 고스란히 음악의 \\\’시간적 구성\\\’을 위한 디테일에 대한 노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미술의 개념이 음악으로 치환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범주로 들어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음반의 결과가 아이러니가 아니라고 말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반을 듣기 위해 키네틱 아트(kinetic art) 같은 설치미술의 개념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이 음반은 그 자체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다. 혼란스러울 만큼 혼란스럽게 흩어지지도 않고 밋밋할 만큼 밋밋하게 정돈되지도 않은 이 음반은 지레 \\\’가드\\\’를 올리고 음반을 집어들었을 청자에게 곰살갑게 다가선다. 많은 예술이 그렇게 다가선다. 일단은 말이다. 20050509

수록곡
1. Chance Operation
2. Circle Is Tri-Square
3. Multi Image Atelier
4. Rayogram
5. Fluxus Sexy Quartet (링크)
6. Jean Tinguely (링크)
7. Diuty

관련 사이트
핑퐁사운드 공식 홈페이지
http://pingpongsou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