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세게 꼬집어 볼 생각이지/그녀가 정말 사람이기는 한지 알고 싶거든/그 미소가 사라지는 꼴을 관찰하고 싶고/그녀가 느낄 고통을 보고 싶으니 말야”
―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Happiest Girl”

타인의 고통을 자기 행복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면 고통을 노래하면서 돈을 벌지 못할 이유도 없다. 1990년대의 영미권 대중음악을 주도한 이들이 소통에 대한 욕망은 누구보다 강렬하지만 소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냉소적이었던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였다면 그 중심에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가 있었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안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은 ‘고통에 대한 감당’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인더스트리얼 메틀의 공격성과 파괴적 성향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Happiness in Slavery”와 “Closer”의 비디오는 그 점을 잘 드러낸다. 신성모독과 폭력과 성욕에 대한 기괴한 이미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이미지들은 모두 보슈(Hieronymus Bosch)가 그린 지옥도의 현대적 버전 같은 세트 안에서 유동한다. 사실상 가사라는 측면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지만 레즈너는 자신의 사운드를 이미지로 바꾸는 데 놀라운 감각을 과시했고 ‘내면의 충동에 따른 절규’라는 록의 고전적인 주제에 성공적으로 금속제 갑옷을 입혔다.

최근 레즈너는 전통에 기울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치열한 예술혼과 장인정신을 갖고 음악에 진지하게 접근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이라는 미덕을 잃지 않는 록 스타의 대중적 이상에 가깝게 말이다. [The Fragile](1999)을 기점으로 그의 음악에서는 자연스러움이라는 미덕이 요구하는 ‘실제’의 소리가 중요한 비중을 갖기 시작했다. 6년만에 공개되는 신보에서 그 점은 더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사운드의 충돌과 병치라는 방법론은 신보를 통해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그럼으로써 그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종종 원하던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록 스타의 숙명일 것이다. 20050504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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