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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음악시장과 청자들의 감상패턴에서 싱글이 갖는 중요성 같은 이야기를 길게 쓰는 것은 가출한다는 쪽지를 남겨놓고 할머니 집에 가는 것보다 더 재미없는 일이다. 그냥 몇 가지 변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우선 이런 형태의 글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덕목인 정기적인 업데이트에 대한 약속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곡만을 골라야 할지 제발 듣지 않기를 바라는 곡도 넣어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은 지키려 한다. 밑에 있는 곡들을 192kb나 VBR 포맷으로 인코딩해서 여러분의 MP3 플레이어에 저장할 때 64MB를 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오늘날의 음악감상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견이다.

1. Nine Inch Nails “The Hand That Feeds”
: 사운드 지옥의 열 여덟 번째 문이 열렸다. [The Fragile](1999) 이후 햇수로 7년만에 공개되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열 아홉 번째 후광(halo)인 [With Teeth]가 5월 3일에 발매된다. 신서 팝의 영향 아래 놓여 있던 NIN의 초기 사운드를 모래로 버무린 듯한 이 곡은 전형적인 레즈너 식 후렴구(“Will you bite the hand that feeds you?/Will you stay down on your knees?”)가 선동적으로 울려퍼지는 직선적인 로큰롤이다. 사운드 측면에서 [The Fragile]과 근친 관계에 있지만 다운비트로 시종하던 [The Fragile]의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한 심각함과는 거리를 둔다. 픽시스(Pixies)의 “Planet of Sound”를 연상시키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공개된) “Getting Smaller”와 더불어 곧 나올 음반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는 신보의 첫 싱글.

2. LCD Soundsystem “Yeah (Crass Version)”
: 예 예 예 예예 예예예, 예 예예 예예이예. 이런 식으로 뇌세포를 공격하면 배겨낼 재간이 없다. DFA 출신의 제임스 머피(James Murphy)가 주도하는 LCD 사운드시스템의 데뷔 음반은 아마 음악으로 만들어낸 노숙자 패션(homeless fashion)의 최신 버전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싱글로 발매된 바 있던 “Yeah”는 여전히 이들 최고의 곡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훵키한 베이스와 무표정한 보컬 라인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클럽 디스코의 무한을 향한 광란을 가장 차갑게 조율한 곡 중 하나다. 레프트필드(Leftfield)의 “Song of Life”와 뉴 오더(New Order)의 “Blue Monday”가 어떻게 섞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은 꼭 들어보길 바란다.

3. M.I.A. “Fire Fire”
: 스리랑카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하면 탤빈 씽(Talvin Singh) 같은 음악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M.I.A.의 데뷔 음반 [Arular]가 살을 부비고 있는 곳은 그라임/UK 거라지(grime/UK garage)의 영역이다. ‘하이브리드의 하이브리드’라고 해 버리면 간단하지만 그 이상 설명하라고 하면 몹시 번거로워진다. 거라지 비트를 팀벌랜드(Timbalnd)처럼 믹싱한 뒤 깔끔한 랩과 코러스로 마무리한 이 곡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가 혼란스럽지만 매력적인 곡들로 가득하다. 오늘날의 대중음악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붕어빵을 만드는 비법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붕어빵에 진짜 붕어를 집어넣는 감각에 있다는 평소의 소신을 굳히는 곡.

4. Doves “Black and White Town”
: 내 기억으로는 1990년대 중반부터였지만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언젠가부터 영미권 대중음악의 소리결은 칼칼하고 건조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런 소리결 중 특정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몇몇 밴드의 사운드에 사람들은 ‘(옛날)영화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2002년에 나온 음반들 중 그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반은 도브스의 대박 음반 [The Last Broadcast]였다. 3년만에 공개된 도브스의 신보인 [Some Cities]는 [The Last Broadcast]의 느슨한 축약본 같다. 이 곡 또한 “There Goes the Fear”의 느슨한 축약본이다. 활기찬 드럼과 흐릿한 부기우기 피아노 루프, 퇴마사에게 당하는 영혼의 비명 같은 코러스 효과가 주도하는 이 곡은 이들의 사운드 작법이 나름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들린다. 그 방향은 아직 충분히 매력적이다.

5. The Kills “No Wow”
: 킬스(The Kills)의 데뷔 음반 [Keep On Your Mean Side]를 처음 들었을 때의 일은 “Cat Claw”가 제목처럼 야옹거리는듯 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신보인 [No Wow]를 듣고 있다 보면 어쩐지 그 때의 일을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무시하기도 찬사를 보내기도 어려웠던 데뷔 음반을 낸 밴드에게 서포모어 징크스 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왠지 ‘훌륭하게 극복했다’ 같은 말을 하고 싶은 의무감도 든다. 질질 끌려가다가 문턱에 걸리는 이삿짐 상자가 내는 소리가 반복되는 듯한 드럼머신 비트만으로 4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곡을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음반의 첫 싱글은 캐치한 훅을 가진 “Good Ones”지만 나로서는 이 곡이 음반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이라고 말하고 싶다.

6. Beck “E-Pro”
: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적어도 벡은 그렇다. 벡의 신보 [Guero]의 첫 싱글인 “E-Pro”는 장난질을 시작할 때의 그가 늘 그랬듯 ‘아레나 록 스타일의 드럼이 주도하는 기타에 절인 록(guitar-drenched rock)’이라는 간명한 설명을 난처하게 만드는 곡이다. [Odelay!]를 내놓은 뒤부터 벡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참고해야 할 뮤지션은 벡 말고는 없었고 그런 점에서 벡은 라디오헤드(Radiohead)가 누리는 영예를 웃기는 방식으로 얻어낸 셈이다. 그러나 그 장난질이 이번엔 덜 웃기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뿐일까.

7. The Bravery “An Honest Mistake”
: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와 킬러스(The Killers)가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느물거리는 보컬이 쿨하게 노래하는 뉴웨이브 풍 펑크 록의 시장성은 입증되었다. 그러니 여기에 펄프(Pulp) 풍의 신서사이저 라인을 더 집어넣었다고 해서 누가 불만을 가질 것인가? 2003년에 뉴욕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 브레이버리(The Bravery)의 데뷔 음반은 금주법 시절의 싸구려 증류주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좀 더 예스러운 신서사이저 라인과 좀 더 빈티나는 코러스. 마셔봤냐고? 지독하게 당했던 가짜 쌀막걸리의 추억을 각색해 봤다.

8. New Order “Krafty”
: 그냥 멍하니 듣는 것이 제일 좋은 곡이 있다. 뉴 오더의 신보 [Waiting For The Siren’s Call]의 첫 싱글인 이 곡이 그렇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봤자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뉴 오더와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가 누렸던 영광은 오늘날 랩처(The Rapture)와 프란츠 퍼디난드가 누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곡을 멍하니 듣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들도 멍하니 듣기 바란다. 묘하게 비꼰 둔탁한 비트와 풍부한 울림의 베이스, 세제로 닦아낸 듯한 기타 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보컬과 설렘으로 가득한 멜로디를.

9. Andrew Bird & The Mysterious Production Of Eggs “Fake Palindromes”
: 앤드류 버드와 수수께끼에 싸인 닭(production of eggs)들의 노래를 들어보면서 마무리를 짓자. 집시풍 바이올린의 배배꼬인 선율이 기타 리프를 대신하는 이 활기찬 곡은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와 아케이드 파이어(The Arcade Fire)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소리를 들려준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그쪽 바닥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즉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리인 셈이다. 좋긴 좋은데 묘하게 어긋나 있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른바 ‘감성적 인디 정서’의 한 축을 꾸준히 쥐어 왔던 이들 말이다. 아마 이런 곡도 언젠가는 ‘언제나 늘 있어왔던 것 같은 노래’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 말이 내가 지나친 시간을 대신 읊어 줄 것이다. 2005041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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