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식 | 황망한 사내 | SONY MUSIC KOREA, 2011 우아하고 고상한 사내 레이니 선의 보컬리스트 정차식의 솔로 앨범 [황망한 사내](2011)는 자조적인 남성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벽한 교감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아가 존재한다. 허나, 사내의 모습은 한결 여유롭다. 분열적으로 흐르지않고, 관조적으로 황량한 내면을 살핀다. 반복된 오해와 화해가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탓일 것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만 넘실대는 음반이라면(혹은 위와 같은 표현 외에는 더할 말이 없다면) 결코 좋은 음악이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옛 문학전집을 들쳐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미덕은 다른 지점에 있다. 첫째는 미니멀한 악기 편성만으로 다양한 장르와 분위기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단조풍의 피아노 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튕김 음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이소라가 부르는 왈츠풍의 노래가 연상되는 “습관적 회의”, 스페니쉬 탱고풍의 “음탕한 계집”, 반복된 리듬과 구성진 목소리의 트로트 곡 “내게 오라”, 신디사이저 음을 투박하게 입힌 “유령”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그만의 방식으로 펼쳐진다. 무엇보다 다양한 흥취가 앨범 전체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풍성하게 흐른다. 처연한 음색과 음울한 분위기의 가사는 전체 톤을 잡아준다. 둘째는, 관념적인 언어와 튀는 음색이 주는 ‘말의 중량감’에도 불구하고 멜로디가 노랫말에 묻히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여백 속에서 간결한 리프의 반복/점층을 통해 멜로디를 보다 선연히 드러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우아하고, 소박하지만 고상한 사내의 손맛이다. 정차식은 ‘고루한 말의 성찬’으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에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더함으로써 음반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유의 고음과 저음의 목소리를 중첩시키는 것 외에도, 트로트, 왈츠, 트립합, 슬로코어 등의 분위기를 자기만의 방법론을 통해 보여준다. 장르의 전형적인 전개구조를 따르되, 악기나 음향효과 등의 요소 및 배치를 조금씩 달리 한다(그리고 단순화한다). 그를 얘기할 때 항상 회자되는 창법과 화법보다는 음악적 스타일에 더욱 눈길이 간다. 분명 이전보다 진일보한 지점이다. | 글 최성욱 prefree99@naver.com 덧. 백현진의 음악이 홍상수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면, 정차식의 음악은 박찬욱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나만 그런가? ratings: 4/5 수록곡 1. 용서 2. 오해요 3. 촛불 4. 머리춤 5. 내게 오라 6. 음탕한 계집 7. 유령 8. 습관적 회의 9. 마중 10. 구원하소서 11. 붉은 꽃 12. 완벽한 당신 13. 불면의 노래 14. 괴물 15. 그사내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