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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 – The Great Destroyer – Sub Pop, 2005

 

 

장막을 걷고

2004년에 발매된 로우(Low)의 결성 10주년 기념 음반인 [A Lifetime of Temporary Relief: 10 Years of B-Sides & Rarities]는 DVD를 포함해 미발표곡과 커버곡 등이 4장의 디스크에 빼곡이 담겨 있어 로우의 팬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새로운 시작을 앞둔 하나의 야심찬 마침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로우의 새 앨범 [The Great Destroyer]는 그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정규 앨범이라는 사실 외에도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앨범이다. 먼저, [Secret Name](1999)부터 둥지를 틀었던 크랭키(Kranky)와 결별하고 서브 팝(Sub Pop)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로우는 결성 당시 록 씬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상업화되어 가던 그런지(grunge)에 대한 안티 노선을 표방하며 등장했던 밴드이다. 음악적으로는 헤비 메틀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과도한 기타 노이즈와 공격적인 리프로 점철된 록 사운드를 배격하고 최소한의 리듬과 단편적인 선율, 느린 비트를 성기게 직조하는 슬로코어(slowcore) 스타일로 인디 록 씬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은 점차 그런지의 흔적(혹은 애증)을 드러냈고, 마침내 그런지의 본산이었던 서브 팝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The Great Destroyer]의 사운드가 그런지 록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이제 로우가 슬로코어 스타일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이와 반대되는 다양한 방법론들과 타협하고 조합하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 앨범의 프로듀싱을 로우의 전작들을 제작했던 마크 크래머(Mark Kramer)나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가 아닌 머큐리 레브(Mercury Rev)의 멤버이자 플레이링 립스(Flaming Lips)의 [The Soft Bulletin](1999)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데이비드 프리드만(David Fridmann)이 맡았다는 점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즉 그는 팝적 선율과 중첩된 기타 노이즈, 공간감 넘치고 심포닉한 실험적 음향을 버무려내는 데 탁월한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확하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사운드가 대단히 거칠고 빨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Things We Lost in the Fire](2001)에 수록된 “Dinosaur Act”에 거친 디스토션 기타를 삽입한 바 있으며 전작 [Trust](2002)에서도 다소 로킹한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본작에서는 작정한 듯 노골적인 방향선회를 감행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앨범 제목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즉 느리고 성긴 다운비트와 미니멀한 연주가 주류를 이루었던 전작들에 비해 거친 디스토션을 전면화한 트랙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고 속도와 연주의 밀도도 한층 높아져 있다. 특히, 미미 파커(Mimi Parker)의 중저음 드럼 스트러밍과 리버브가 강하게 걸린 지저분한 기타 톤이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Monkey”에서 육중하고 로킹한 기타 리프가 부각되는 “Everybody’s Song”으로 이어지는 전반부는 로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훅(hook)’이란 단어마저 떠올리게 한다. 또 “Just Stand Back”의 쾌활한 무드, “Broadway (So Many People)”의 후반부를 압도하는 속도감 있는 8비트 기타 스트로크, 비관적이고 무심한 가사에 비해 달콤한 멜로디와 거라지 록을 연상시키는 생톤의 기타 리프가 등장하는 “Walk Into the Sea”가 엔딩 트랙이라는 점도 의외로 생각된다.

이렇듯 속도와 피치를 높이고 공격적인 노이즈를 내세웠지만, 앨런 스파호크(Alan Sparhawk)와 미미 파커의 풍성한 보컬 하모니는 퇴색되지 않았는데, 오르간 반주와 드론 노이즈를 배경으로 영적인 하모니를 조성하는 “Cue The Strings”는 로우다운 미감을 발하는 인상적인 트랙이다. 또 어쿠스틱 기타 반주만으로 진행되는 앨런의 솔로 곡 “Death of a Salesman”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품이지만 비장한 가사를 담고 있다. “…나는 내 모든 노래를 잊었어 / … / 그리고 분노하며 내 기타를 태워버렸지 / 하지만 불길은 곧 잦아들었네 / 당신의 하얀 벨벳 같은 가슴속에서 / 그리고 이제야 안전하다는 걸 알았네”. 로우의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가사는 이제 달관의 경지에 다가선 듯 하다. 앨범 제목이 등장하는 “Walk Into the Sea”에서 스파호크는 “…그리고 시간은 단지 굶주림일 뿐 / 그것은 그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끌어가지 / … / 그래, 시간은 거대한 파괴자(great destroyer)야 / 모든 아이들을 사생아로 남겨두지 / 하지만 마침내 그것이 우리를 엄습할 때 / 나는 우리 함께 떠밀려 가기만을 바라겠지”라고 노래한다. 노래를 잊어버린 채 연인의 가슴속에 안기겠다는, 시간의 흐름에 부표처럼 몸을 맡기겠다는 이들의 답답한 도피주의는 한편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앨범에 대해 여러 가지 시선과 복잡한 평가가 혼재되기는 하지만 추려서 말한다면 로우적이지 않다는 불만은 확실한 것 같다. 또한 타협과 조합주의를 통한 변화의 시도가 맞다면 너무 많이 나아갔다. 단아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보컬 하모니를 잡아먹을 듯이 난사되는 “When I Go Deaf”의 후반부 기타 솔로나 스페이스 록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Pissing”의 과도한 피드 백 노이즈는 그저 앙상한 소음으로만 들리는 명백한 패착이다. 마치 장막 뒤에서 숨막힐 듯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뛰쳐나와 열창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처럼, 생생하지만 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느낌 말이다. 20050220 | 장육 jyook@hitel.net

6/10

수록곡
1. Monkey
2. California
3. Everybody’s Song
4. Silver Rider
5. Just Stand Back
6. On The Edge Of
7. Cue The Strings
8. Step
9. When I Go Deaf
10. Broadway (So Many People)
11. Pissing
12. Death of a Salesman
13. Walk Into the Sea

관련 글
Low [Things We Lost in the Fire] 리뷰 – vol.3/no.5 [20010301]
Low [Trust] 리뷰 – vol.4/no.23 [20021201]

관련 사이트
Low 공식 사이트
http://www.chairkickers.com
Sub Pop Records의 [The Great Destroyer] 페이지
: “Monkey”, “California”의 음원과 “Death of a Salesman” 뮤직비디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