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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ott Smith – Elliott Smith – Kill Rock Stars, 1995

 

 

추락하는 것은 아름답다

별도의 앨범 제목(타이틀)이 없다는 사실은 아티스트의 자기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 자신감이 과시적인 것이냐, 내밀한 것이냐, 다른 어떤 것이냐는 차이야 있겠지만 그런 차이조차도 음반의 주인공의 본연의 모습이나 내면의 진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무색한 것이다. 여기서 굳이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이나 레드 제플린의 ‘4집’을 거론하는 것은 사족이겠지만, 별도의 타이틀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대답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셀프 타이틀 앨범’이란 가장 벌거벗은 상태를 드러낸다.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Elliott Smith]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그 자신을 가리킨다. 이후의 ‘메이저 앨범’들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자기와는 무관한 인위적 장식을 가해야 하는 상태의 산물이라면, 그리고 그 이전의 앨범들이 자신의 깊숙한 곳의 성찰 이전의 상태의 산물이라면 이 앨범은 엘리엇 스미스라는 인간 자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단지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혼자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부른다는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곡을 만들고 부를 때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음악 스타일은? ‘포크’라고 부르면 의사소통에 장애는 없을 것이다. 물론 ‘포크’도, ‘싱어송라이터’도 말도 과거의 특정 시대와 연관되기 때문에 꺼림칙한 면은 있다. 오히려 ‘원맨 인디 밴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밴드’의 음향이 나오는 트랙은 거의 없다. 트랙은 드럼 비트가 이끄는 “Christian Brothers”, “Coming Up Roses”, “St. Ides Heaven” 정도밖에 없고, 일렉트릭 기타도 “Single Fire” 한 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즉, 어쿠스틱 기타가 이끌고 아코디온이나 하모니카같은 악기가 추가적으로 장식해 주는 정도의 음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롱함이라든가 청아함이라든가 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관습적 미학과는 거리가 있다(물론 기타 소리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피킹을 사용하지 않고 핑거링으로 일관하지만, 단일 음표를 뜯는 식보다는 여러 줄을 동시에 스트러밍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줄 전체를 스트러밍하기보다는 이런저런 부위들로 강조점을 오가면서 풍성한 뉘앙스를 가진 리듬을 만들어 낸다. 드문드문 단일 음표를 슬쩍 끼워넣거나 텐션음이 들어간 코드워크도 두드러진다. 직업적 연주인의 기교적이고 능숙한 연주는 아니지만 다른 누가 연주한다고 해도 이런 맛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절한 패닝(panning)을 가하여 어쿠스틱 기타음을 배치한 것도 풍부한 뉘앙스를 더해 준다. 더구나 기타 사운드의 진행은 보컬의 노래와 일체가 되어 움직인다. 즉, ‘노래 따로, 반주 따로’ 식은 아니고 이것 이외에 다른 편곡을 상상하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첫 트랙 “Needle in the Hay”는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규정하는 ‘필살’의 트랙으로 부족함이 없다. 짧게 끊어 치는 기타의 스트러밍이 심상치 않더니 곡 제목을 가사로 삼아 절박하고 불안하게 반복적으로 외쳐 대는 후렴구를 듣다가 ‘마른풀 속의 바늘’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지다가 끝나버리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의 반복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렇지만 첫 트랙이 끝내주는 곡으로 장식되어서 이후의 곡들은 죽어버리는 징크스와는 달리 두 번째 트랙인 “Christian Brothers”는 긴장의 강도를 더욱 높여서 팔세토로 “Nightmares Become Me, It’s so Fucking Clear”라고 외칠 때는 신경쇠약증도 전염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후는 다소 “Clementine”은 앞의 곡들보다는 부드럽고 이완되지만,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징하게 미안해 클레멘타인(dreadful sorry Clementine)”이라고 반전시키는 가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후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면, 무대 한쪽에서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 사람을 놓아두고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눌 때의 기분도 들 것이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가면 묘한 노스탤지어가 더해 지면서 다시 한번 귀를 집중하게 된다. 묘한 것은 노스탤지어는 강하면서도 복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Alphabet Town”은 하모니카의 선율이 가세해서인지 ‘방랑하는 블루스맨’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고, “Good to Go”는 인트로가 “The House of the Rising Sun”와 비슷해서인지 진짜 구전민요를 듣는 것 같고, “The White Lady Loves You More”는 한줄 트레몰로 때문인지 레오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현현처럼 들린다. 마지막 트랙 “The Biggest Lie”는 관습적 코드 진행과 주법에 기초하고 있어서 1960년대 포크송의 고전이라고 우겨도 속아 넘어갈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크레딧 카드’가 가사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속았다는 것을 느끼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 앨범은 [굿 윌 헌팅]의 사운드트랙으로 엘리엇 스미쓰를 접한 뒤 [XO]와 [Either/Or]를 거치는 아티스트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일 것이다. 그건 아마도 1990년대가 종언으로 치닫게 되는 어떤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 시점은 음악을 듣는재미가 이전만 못한 시점이자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CD를 사서 들을 여력이 사라지던 시점이었고 그래서 CD 레코더를 장만하여 복제 CD를 구워대거나 각종 P2P 서비스로 mp3를 하드 디스크에 꽉꽉 채우는 개인 프로젝트가 시작될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런 음악소비의 변화가 행복감보다는 공허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 대다수의 공감이라면, 이 앨범은 CD가 아직 찬란하게 빛나던 물건이던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물론 음반의 표지나 수록된 사운드가 찬란하다거나 화려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수입 CD의 묘한 아우라에 사로잡혀 집어들었을 공산이 크다.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반항이라기에는 예술적이고, 저항이라기에는 무구하다. 희미하게 기억해 보면, 추락하는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20041108 | 신현준 homey81@empal.com

9/10

수록곡
1. Needle in the Hay
2. Christian Brothers
3. Clementine
4. Southern Belle
5. Single File
6. Coming up Roses
7. Satellite
8. Alphabet Town
9. St. Ides Heaven
10. Good to Go
11. The White Lady Loves You More
12. The Biggest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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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le in the Hay”(영화 [Royal Tenenbaums] 中)

관련 사이트
엘리엇 스미스 홈페이지
http://www.elliottsmit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