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ade Fire – Funeral – Merge, 2004 때때로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캐나다 퀘벡 출신 6인조 밴드인 아케이드 파이어(The Arcade Fire)의 데뷔 음반 [Funeral]은 피어리 퍼네이시스(Fiery Furnaces)의 [The Blueberry Boat](2004),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의 [Sung Tongs](2004)와 더불어 2004년 하반기 북미 인디 록 씬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다. [The Blueberry Boat]가 ‘하얗게 불타올라 재가 될 정도의’ 대담한 음악적 모험으로 인해 찬반양론에 휩싸이고 [Sung Tongs]가 ‘실험적 팝(experimental pop)’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한 뼘 더 넓혔다면, [Funeral]은 지난 7∼8여 년 간 흘러온 북미 인디 록의 경향들을 신선하게 재배치한 음반이다. 즉 위의 세 음반은 세 가지 얼굴이다. 막 나가는 얼굴, 재치 있는 얼굴, 야심만만한 안경잡이의 얼굴. 신인밴드의 데뷔작답지 않은 음반 제목과 ‘초현실적인’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지에 적혀 있는 밴드 소개글을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호텔과 집에서 음반을 녹음하는 동안 무섭도록 추웠던 겨울이 찾아왔고, 멤버들 중 두 명은 부부가 되었으며, 멤버들의 친척들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상황들은 음반의 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Neighborhood” 연작이 고립, 죽음, 슬픔, 권태, 탄생 등의 묵시록적 상상력 속에 매몰된 것이 우연은 아닌 것이다. 눈에 파묻힌 마을에서 연인들은 ‘터널을 뚫어 너의 창가로 가겠다’며 중얼거리지만 알고 있던 이름을 모두 잊어버리는 바람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Neighborhood #1”), 모험을 떠난 형은 흡혈귀에게 물린 채 돌아오며(“Neighborhood #2”),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맨다(“Neighborhood #3”). 사람들은 차 뒷좌석에 쭈그린 채 눕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지만, 시간은 끔찍하게도 느리게 흐른다(“In The Backseat”, “Neighborhood #4”). 빛이 사라져버린 시간 속을(“Une Annee Sans Lumiere”). 이 음울한 가사와 함께 가는 것은 놀랍도록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다. 그리고 “Neighborhood #1 (Tunnel)”은 어느 모로 보나 올해의 싱글로 선정될 자격이 충분하다. 반투명의 장막을 드리운 듯 ‘앰비언트(ambient)’한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서사적(epic)’이라 불리는 단계를 차분히 밟아가는 이 곡은 1970년대의 보위(David Bowie)와 토킹 헤즈(Talking Heads)를 불러낸 뒤 이것들을 ‘퉁퉁거리는(stomping)’ 베이스, 두텁게 갈무리한 기타, 비틀거리는 듯한 실로폰과 오르간 소리로 감싸안는다. 합창을 유도하듯 방방 뛰는 “Neighborhood #2 (Laika)”, “Rebellion (Lies)”와 몰아붙이듯 쏘아대는 “Neighborhood #3 (Power Out)”, 안온하지만 팽팽한 발라드 “Neighborhood #4 (7 Kettles)”와 “Haiti”, 플레밍 립스(The Flaming Lips) 풍의 장대한 오케스트라/기타 노이즈 뭉치가 솟아오르는 “Wake Up”과 “In The Backseat”까지, 음반에는 버릴 곡이 별로 없다. 갖고 있는 것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종류의 소리와 노래들이다. 아마도 이 음반을 듣는 사람들은 동시대와 그 이전 시기의 수많은 뮤지션들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약간 기묘한 일이지만, 나는 동시대의 뮤지션들 중 호프 오브 더 스테이츠(Hope Of The States)와 얼리스(The Earlies)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그들의 목록은 음반을 듣고 난 뒤 영화 크레딧처럼 떠오른다. 듣는 동안 크레딧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모든 뛰어난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Funeral]은 거인들의 어깨를 밟고 그 위에서 기기묘묘한 재주를 넘는다. 동시에 모든 뛰어난 데뷔작들이 그러하듯, 이 음반 역시 어깨에서 미끄러질 가능성 또한 크다. 수많은 밴드들이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음반을 듣다 보면 작게나마 기적을 바라게 된다. 킥오프를 정하려고 던졌는데 그냥 서 버린 동전과 같은 기적 말이다. 2004122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1. Neighborhood # 1 (Tunnels) 2. Neighborhood # 2 (Laika) 3. Une Annee Sans Lumiere 4. Neighborhood # 3 (Power Out) 5. Neighborhood #4 (7 Kettles) 6. Crown of Love 7. Wake Up 8. Haiti 9. Rebellion (Lies) 10. In the Backseat 관련 사이트 The Arcade Fire 공식 사이트 http://www.arcadefi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