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Sea Power – The Decline Of British Sea Power – Rough Trade Record/알레스뮤직, 2003/2004 훌륭한 카오스 영국이 대영제국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에게 최강의 함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 당시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퇴시킨 뒤부터 몇 세기동안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영국인들은 대영제국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마도 그것이 그 대단한 영국인다운 태도 근간의 어느 부분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예의바르고 유머러스하고 사려깊고 조용하고 귀족적인,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기먹는 자들’의 야만성과 원시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간직하고 있는 곳. 영국은 그런 나라다, 사람들은 가끔 잊어버리지만. 그래서 어쩌면 2003년에 등장한 브리티쉬 시 파워에 대한 당시 언론들의 극찬은 당연할지 모른다. 또 어쩌면 그들은 그 이름으로부터 제국주의자들의 거침없음과 순수주의자들의 노스텔지어를 뒤섞어 놓은 향취를 감지했을지도 모른다(역설로 읽히기도 하는 저 음반 제목을 보라). 특히 웅장하기까지 한 남성 합창으로 시작되어 거침없는 기타 사운드로 이어지는 첫 곡 “Men Together Happy”와 짧지만 두텁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Apologies to Insect Life”, “Favours in the Beetroots Fields”를 연달아 듣는다면 (가사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운드에 압도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Something Wicked”의 낭랑한 사운드에 즈음하면 이들에게는 그러한 거침없는 사운드 이면에 팝 멜로디의 달짝지근함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Remember Me”와 “Fear of Drowning”, “Lonely”, “Carrion” 등의 거부할 수 없는 멜랑콜리와 훅으로 확인된다. 당연하게도 프란츠 페르디낭(Franz Ferdinand)을 비롯 국적은 다르지만 이들과 함께 언급되던 인터폴(Interpol)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가장 중요한 트랙은 열번째 곡 “Lately”다. 무려 13분 동안 이어지는 이 아름답고 처참하고 그리운, 각각의 개인들에게 어떤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는 브리티쉬 시 파워의 음악적 근거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웅장하게 울려퍼지며 점점 외부로 확장되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광활한 대지를, 마치 공중촬영으로 보여주는 대륙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록 음악이 록 음악을 넘어선 무엇(혹은 예술)이던 순간으로 바야흐로 진입하려 할 때의 광휘. 록 음악 순수주의자들이 좋아할 얘기겠지만, 이들의 사운드가 닿아있는 지점이 사실 그러하다. 동시에 이러한 노스텔지어가 얼마나 자의적이며 한편으론 얼마나 자조적이기까지한가라는 각성도. 이러한 감상은 비슷한 감수성을 이어받는 마지막 트랙 “Wooden Horse”까지 이어진다. 사실 순수함에의 열망이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타락을 의미한다. 21세기에 등장한 대부분의 인상적인 록 밴드가 지향하고 있는 사운드가 순수한 열정(쾌락)을 담은 가사와 단순하고 짧은 기타 프레이즈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산업 시스템과 밴드 공동체, 씨디 플레이어와 공연장(또한 스타디움과 클럽 공연장), 전기 기타와 신서사이저, 사이버 스페이스와 리얼 스페이스, 혹은 내부와 외부, 그 모든 것들의 간극으로부터 ‘음악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이 발생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새로운 어떤 것은 기절초풍할 만큼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환기시킨다. 제법 거창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브리티쉬 시 파워의 음반은, 혹은 몇몇 트랙들은 그러한 모든 것의 이합집산적인 카오스를 반영하는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물론 이들이 정말 대단한 밴드인지 아닌지는 이미 확인되었거나 조금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그리고 그러한 판단이란 지극히 자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음반이 간만에 찾을 수 있을까말까한 괜찮은 음반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1년 늦게 도착했어도 말이다. 20041214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1. Men Together Today 2. Apologies To Insect Life 3. Favours In The Beetroot Fields 4. Something Wicked 5. Remember Me 6. Fear Of Drowning 7. The Lonely 8. Carrion 9. Blackout 10. Lately 11. A Wooden Horse 관련 사이트 British Sea Power 공식 사이트 http://www.britishseapower.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