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1063320-0624-01-devendra데벤드라 반하트

2002년 초에 시작한 이 부틀렉 소개 코너도 어느 덧 3년이 다 되어 10회 째를 맞게 되었다. 이 시리즈가 얼마나 관심을 끌고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느덧 [weiv]의 ‘뮤직 보드’가 독자들이 여기저기서 갖고 온 음원과 영상들을 공유하는 장으로 탈바꿈한 걸 보면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음악적 경험을 공유하고픈 욕구는 나만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 올해도 변함없이 필자의 주관으로 점철된 올해의 공연 10선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10. Devendra Banhart, “This Is The Way”, Morning Becomes Eclectic, KCRW Radio, 5/5

수수께끼에 싸인 정체불명의 싱어-송라이터 잔덱(Jandek)의 20년 전쯤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해주는 털투성이 젊은이.

9. Deerhoof, “Milk Man”, Drunken Unicorn, Atlanta GA, 4/19

‘미루쿠 만'(ミルクマン)이라고 운을 떼는 사토미(Satomi)의 목소리는 더욱 더 앳되게 들린다. 태평양을 건넌 코갸루(コギャル) 문화의 변형인가, 가냘픈 목소리의 일본계 여성 보컬이 등장하는 밴드는 디어후프 외에도 그동안 [weiv]에 소개되었던 블론드 레드헤드(Blonde Redhead), 이쿠(IQU), 이논(Enon) 등을 비롯, 최근에는 아예 밴드 이름부터 일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소비 섹수(Asobi Seksu)가 줄기차게 그 맥을 잇고 있다.

8. Giardini Di Miro, “The Swimming Season”, Bloom, Milan, Italy, 1/24

음질은 좀 떨어지지만 이들 특유의 비장미(悲壯美)가 잘 살아있는 라이브.

7. Beth Orton & M Ward, “Comfort Of Strangers”, Live At The Wireless, Triple J Radio, Australia, 5/10

늘 야릇한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베쓰 오튼의 목소리가 웬일로 편안하게 들리는 것은 노래 제목이 암시해주듯 엠 와드의 안정감있는 뒷받침 덕택일는지.

6. Kraftwerk, “The Robots”, 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Indio CA, 5/1
보너스: “Radioactivity”(30초 동영상)

로봇은 죽지 않는다… 다만 녹슬어갈 뿐이다? 그러나 돌아온 4인조 독일제 로봇들은 녹은커녕 그 어느때보다도 더 삐까번쩍해진 듯. 그래서 라디오헤드, 벡, 픽시스 등 코어첼라 페스티벌의 화려한 출연진 틈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유난히 돋보인다.

5. Battles, “Tras”, Earl, Atlanta GA, 3/5

헬멧(Helmet), 돈 카발레로(Don Caballero), 링크스(Lynx) 등 각기 쟁쟁한 밴드들에서 실전으로 단련된(battle-tested) 연주인들의 정밀하면서 박력넘치는 사운드.

핀백: 롭 크로우(Rob Crow)와 아미스테드 버웰 스미스(Armistead Burwell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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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inback, “Offline P.K.”, Black Cat, Washington DC, 4/12
보너스: “Grey” (15초 동영상)

핀백의 연주를 들으면 언제나 참 아기자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음악을 이처럼 듣기 쉽게 연주하는 능력은 다른 데서 좀처럼 찾기 쉽지 않다. 올해 나온 [Summer In Abaddon]도 수작이지만, 이들의 진수를 들으려면 2001년작 [Blue Screen Life]를 권한다.

3. The Arcade Fire, The Entire Set, TT The Bears, Cambridge MA, 11/12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아케이드 파이어는 캐나다 몬트리올이 새로이 떠오르는 북미 인디 록의 중심지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주변의 광적인 환호를 보면 ‘좋은 음악인 건 알겠는데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까지 있나’ 하고 뒤통수를 긁적이게 되지만, 상세한 평과 더불어 공연 세트를 통째로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이 열성 팬의 노고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3위에 올려주기로 했다.

2. Acid Mothers Temple, “Dark Star Blues”, Wexner Center, Columbus OH, 5/25

카와바타 마코토(河端一: 기타), 히가시 히로시(東洋之: 기타, 신쓰), 츠야마 아츠시(津山篤: 베이스, 보컬), 코이즈미 하지메(小泉一: 드럼). 지구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벽력같은 소리를 뿜어내는 애시드 마더즈 템플 소울 콜렉티브(酸母寺魂團?)의 4인조 기동대. 공연 도중 줄을 두 번이나 끊어먹고도 성이 차지 않아 막판에는 아예 기타를 발로 짓이기는 카와바타의 광적인 ‘연주’는 가히 숨넘어갈 지경에 이르고.. 끊어진 기타줄을 새로 가는 동안 막간을 때우기 위해 즉흥으로 연출된 츠야마의 일인다역 개그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장내의 폭소를 자아내고…

결론은 공연을 직접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도리밖에. 제리 가르시아 없는 그레이트풀 데드가 아직도 공연을 도는 아메리카는 잼 밴드들의 본산이지만, ‘UFO’를 타고 외계로부터 쳐들어온 이들이 그 꼭대기에 털썩 올라앉은 꼴이다. 그러므로 카와바타의 또 다른 프로젝트명 ‘Mothers of Invasion’은 단순한 프랭크 자파 패러디에 그치는 게 아니다.

1. The Magnetic Fields, “Papa Was A Rodeo”, Weigel Hall, Columbus OH, 6/30

스티븐 메릿(Stephin Merritt)의 낮디낮은 목소리는 우울함을 일으키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프로잭(Prozac:항우울제)을 먹고 오늘 밤 내내 처음 보는 사람 누구한테나 웃음을 지어 볼까'(“I Don’t Wanna Get Over You”)라는 노랫말을 보면 자기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납작한 모자를 쓴 땅딸막한 사내가 무대 위로 걸어나와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는 높은 걸상에 걸터앉아 장난감 기타처럼 생긴 우쿨렐레(Ukulele)를 뜯기 시작할 때는 ‘정말 이 아저씨가 그 우울남이 맞나’ 싶었지만, 그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Smile: No One Cares How You Feel”이라는 첫 노래 제목을 소개하면서부터 의심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리고 ‘네가 경멸하는 모든 이들도 (결국은) 다 죽을 테니 그만 웃으렴’이란 마지막 구절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우울함과 위트가 한데 비비꼬인 분위기에 이미 푹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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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gnetic theater: 걸상 위에 서서 호소하는 스티븐 메릿, 고개 돌려 외면하는 클로디아 곤슨

비교적 덜 알려진 두 밴드 멤버 샘 데이볼(Sam Davol: 첼로)과 존 우(John Woo: 기타)는 한 마디 말없이 묵묵하게 연주에 전념한 반면, 메릿과 클로디아 곤슨(Claudia Gonson: 피아노, 보컬)은 곡 사이마다 시종일관 재담을 주고받으며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척척 호흡이 맞는 이 두 남녀는 “Yeah, Oh Yeah”에서 스피커, 피아노와 걸상을 무대장치로 삼아 한편의 코믹 멜로드라마를 연기해서 객석을 아예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공연 전체를 통틀어 역시 가장 마그네틱 필즈다웠던 순간은 정규 세트의 마지막 곡, “Papa Was A Rodeo”가 아니었나 한다. 기지(奇智)에 찬 구절들이 이 노래를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닌 대부분의 청중들로 하여금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 목소리는 듣는 이들의 감정에 밤안개마냥 낮고 짙게 깔려온다. 우울함의 끝, 우울했던 한 해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20041209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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