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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i Mind Tricks – Violent By Design (Deluxe Edition) – Superregular/Babygrande, 2000/2004

 

 

폭력적 폭력

록이나 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힙합 시장에서 리이슈는 아직 상업적으로 중요한 아이템은 아니다. 오히려 힙합에서 리이슈는 ‘옛 히트 음반’들의 화려한 재포장(repackage)보다는 ‘잊혀진 클래식 발굴’의 이미지가 더 강해 보이는데, 울트라마그네틱 엠씨스(Ultramagnetic MC’s)의 [Critical Beatdown](1988/2004)과 같은 ‘전설의 힙합 클래식’이 올해 재발매된 사건이 그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물론 나스(Nas)의 [Illmatic](1994/2004) 10주년 기념음반처럼 ‘좋긴 한데 뭔가 좀 어색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위협적으로 총을 휘두르고 있는 이 음반,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의 [Violent By Design]은 불과 4년 전에 발매된 음반이다. 소리도 특별히 새로 손을 본 흔적은 없다. 그럼에도 굳이 리이슈 카탈로그에 이 음반을 넣으려 하는 것은 이 음반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울식에서 mp3로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1996년 [Amber Prove] EP를 데뷔작으로 내놓은 이듬해, 제목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정규 데뷔 음반 [Psycho-Social, Chemical, Biological and Electro-Magnetic Manipulation of Human Consciousness](1997)를 발매할 때부터, 필라델피아 출신의 이 힙합 듀오는 주목할만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스타우프(Stoupe The Enemy of Mankind)가 만들어내는 어둡고 몽롱하며 불길한(atmosphere) 사운드와 비니 파즈(Vinnie Paz, a.k.a Ikon The Verval Hologram)의 공격적인 엠씨잉은 단숨에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 음반에만 참여한 새로운 멤버 저스 알라(Jus Allah)와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스타 게스트를 대동하여 만든 두 번째 음반 [Violent By Design]은 데뷔 음반에서 확립한 그들의 스타일을 정교하게 발전시킨다.

[Violent By Design]의 가장 큰 특징은 어둡고 축축한, 거의 최면에 가까운 무드이다. 이는 전적으로 스타우프의 공로이다. 영화, 다큐멘터리, 스포츠 중계 등에서 따온 목소리와 라운지(“Retaliation”)에서부터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Trinity”)까지 긁어온 현악과 관악 샘플들은 두터운 비트와 적절히 섞이면서(혹은 떠돌면서) 새로운 생명과 훅을 얻는다. 대충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 이 음반의 비트에 대한 이런 설명은 우 탱 클랜(Wu Tang Clan)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1993)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Visions Of Gandhi](2003)에서 ‘대변신’을 감행하기 전까지 스타우프의 비트 메이킹은 르자(Rza)와 흔히 비교되기도 했으니까. 다만 르자가 빚어내는 ‘날것(raw)’의 느낌이 강한 비트보다 좀 더 ‘세련되게(sophisticated)’ 배치된 스타우프의 사운드는 그를 그저 르자의 ‘또다른 자아(alter-ego)’로 치부하려는 판단을 가로막는다. DVD 대신 인스트루먼틀 CD가 같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아니면 둘 다 끼워서 세 장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소리들은 평온하게 들리는 순간에서조차도(“Retaliation”, “I Against I”, 바하마디아(Bahamadia)가 참여한 “Exertions Remix”)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악몽 속에서 본 심야 TV 영화 같다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Death March”, “Genghis Khan”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격렬한’ 곡이 별로 없음에도 다 듣고 난 뒤 ‘빡센’ 경험을 한 것처럼 느끼는 이유도 이 ‘무의식을 건드리는 듯한’ 사운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음반의 중반부에 위치한 “Heavenly Divine”과 엠씨잉이 인스트루먼틀을 보조하는 형태에 가까운 “Sacrifice”는 스타우프의 비트 메이킹이 가장 만족스럽게 구현된 트랙이다.

이렇게 깔아놓은 사운드 위에서 비니와 저스의 날카로운 엠씨잉은 고대 기독교 세계부터 현 미국 정부까지 이르는 기나긴 시간 동안 곳곳에 만연한 폭력을 폭력적으로 고발한다. 사실 너무 넓은 범위를 한꺼번에 다루려는 엠씨들의 야심과 ‘좌충우돌’하는 비니의 가사로 인해 (그의 가사에는 폭력에 대한 비판과 폭력에 대한 집착이 쌍극을 이루고 있다) 비판의 초점이 종종 흐려진다는 생각도 들지만 음반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가사를 충분히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다가온다. 커버와 사운드, 곡 제목만으로도. 어쨌든 우리는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고, 폭력에는 사실 말이 별로 필요치 않은 것이다.

아마도 이 음반은 한 평자의 말대로 “언더그라운드치고는 너무 상업적이지만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상업적이지는 않은” 음반일 것이다. 이 말을 ‘상업적’으로 바꿔 보면 ‘상업적 힙합의 달콤함은 지겹지만 골수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씁쓸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음반이라는 이야기도 될 것 같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지만, 실제로 음반이 얼마 못 가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런 ‘회색분자’들은 어느 곳이나 드물 테니까. 그리고 이 음반의 ‘어정쩡한’ 성공 이후, 이들은 ‘언더그라운드’보다는 ‘상업적’에 방점을 찍고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듯 하다. 다음 음반이었던 [Visions Of Gandhi]의 ‘대략 황망한’ 결과는 아마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2004121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CD: Violent By Design
1. Intro
2. Retaliation
3. Contra (feat. Killasha)
4. Speech Cobras (feat. Mr. Lif)
5. Breath of God Interlude
6. Death March (feat. Virtuoso and Esoteric)
7. Words from Mr. Len Part One
8. I Against I (feat. Planet)
9. Exertions Remix (feat. Virtuoso, Esoteric, and Bahamadia)
10. The Prophecy Interlude
11. Heavenly Divine
12. Sacrifice
13. Permanent Midnight Interlude
14. The Deer Hunter (feat. Chief Kamachi)
15. Blood Reign (feat. Diamondback, Lous Logic, and B.A. Barakus)
16. Words from Mr. Len Part Two
17. Genghis Khan (feat. Tragedy Khadafi)
18. Trinity (feat. Louis Logic and L-Fudge)
19. The Executioners Dream (feat. J-Treds)
20. Muerte
21. Heavenly Design Remix
22. Army of the Pharaohs: War Ensamble (feat. Esoteric and Virtuoso)
23. Untitled (feat. Jus Allah)
24. Retaliation Remix
25. Blood Runs Cold (feat. Sean Price aka Ruck of Heltah Skeltah)
Bonus DVD
1. Visions of Gandhi Scrapbook
2. I Who Have Nothing (Music Video)

관련 사이트
Jedi Mind Tricks 공식 홈페이지
http://www.jedi-mind-trc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