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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c Street Preachers – Lifeblood – Sony, 2004

 

 

Old Before I Die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신보에는 [Know Your Enemy](2001)보다는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1998)의 생혈(lifeblood)이 흐르고 있다. 혹은 이 음반은 “Motorcycle Emptiness”의 다소 활력없는 확장판이다. 찬바람 효과음과 더불어 털썩거리는 비트를 날려대는 “A Song for Departure”의 비장한 기운을 떠올려보자. 이는 방황하는 자의 무정부적 설렘보다는 출감한 자의 힘없는 다짐에 더 가깝게 들린다. 뭉크의 어떤 그림과 같은 서늘한 청회색의 기운 말이다.

[Know Your Enemy]에서 웨일스 출신의 이 베테랑 밴드는 강력하지만 절룩거리는 음반을 만들었다. 그들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음반인 [Lifeblood]는 균형잡힌 발걸음을 내딛는 대신 떠나간 자리에 깊은 발자욱을 남기지 않는다. 곡들은 아름답고 사운드는 섬세하며 훅은 명료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곡들에 영롱한 에코와 U2 풍 딜레이를 과하게 덧씌우면서 자신들의 노래를 아름답게 들려주려 노력한다. 그것이 매닉스의 좋은 곡들에 담겨 있던 긴장감을 앗아간다.

그럼에도 첫 싱글 “The Love of Richard Nixon”은 제목, 가사, 곡조 등 모든 면에서 매닉스만이 만들 수 있는 곡이다. 누가 리처드 닉슨과 리처드 3세를 이런 방식으로 세련되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의 목소리에서 예전같은 힘과 냉소를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아쉬워할 수는 없다. 다소 맥이 빠진 연주를 토니 비스콘티(Toni Visconti)가 매만진 매끈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감싸안고 있다고 해서 이 곡의 매력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1985”, “To Repel Ghosts”, 기타 라인이 인상적인 “Glasnost”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좋은 곡들은 때때로 늘어지는 음반의 중간중간에 또박또박 방점을 찍는다.

적어도 듣는 동안만큼은 우아한 시간을 보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이 AOR 음반은 밴드가 거리의 전도사(street preachers)는 될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미친(manic)짓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4 Real’의 광기가 그리운 사람들은 [The Holy Bible](1994)을 다시 꺼내 들으면 될 일이다. 그런 정서를 그리워할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음반의 소리에 이들의 영감이 이제 고갈되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은 없다. 단지 더 이상의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그들보다는 훨씬 일찍 철이 들어버린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와 마찬가지로, 매닉스 역시 ‘Old before I die’를 살갑게 흥얼거린다. 20041123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6/10

수록곡
1. 1985
2. The Love of Richard Nixon
3. Empty Soul
4. A Song for Departure
5. I Live to Fall Asleep
6. To Repel Ghosts
7. Emily
8. Glasnost
9. Always/Never
10. Solitude Sometimes Is
11. Fragments
12. Cardiff Afte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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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c Street Preachers [Know Your Enemy] 리뷰 – vol.3/no.8 [20010416]

관련 사이트
Manic Street Preachers 공식 홈페이지
http://www.manics.co.uk